참자아를 찾는 교육 (2007/7/23)
©
Suk Hoon Han
[원고
발췌 2]
N은
지금까지의 [교육의
목적에 대한] 논의에
크게 이의를 달고 싶은 마음은 안 들었다. 예의 J의 비판적 자세는 새로울
게 없었다. 그러나 현직 교사이며 이상주의자인 Y의 시각에 대해서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다.
“Y, 너는 평소에
민선생님하고 교육의 본연이 어떻고, 학생의 진정한 자아실현이 어떻고
하는 등등의 얘기를 많이 나눠왔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교육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인 것 같네. 뭐랄까, 너의 이상주의자적 자세에 스스로 회의를
갖게 된 거니?”
N의 질문에 Y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내가 교육에 대해서
비판적인 건 맞아. 이상이건 뭐건 간에, 냉엄한 현실은 제대로 봐야하지
않겠어? 지금 학교 사정은 정말 안 좋아. 언론에선 학교가 붕괴했다고
난리고, 그게 다 무능한 선생들 책임이라고 욕하지, 높은 데 어르신네들은
제7차 교육과정입네, 창의성과 개성의 발현입네 하며 온갖 미사려구는
다 동원해서 정책을 던져놓지만 한 반에 여전히 40명 가까운 아이들이
득실대지, 그 아이들 엄마들은 죄다 제 새끼만 예쁘고 소중하다며 일류대
보내는 데에만 혈안이 돼있고 인성교육 따위엔 코웃음도 안쳐주지, 선생들은
선생들대로 현실에 맥빠져 하며 적당히 버티고 보신할 생각이나 하지...
이런 학교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채이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현실은
참 밉더라. 내 꿈, 이상 같은 건 아무 상관도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아. 하지만 꿈마저도 없다면 그 미운 현실을 버텨낼 힘도 없을
거야. 싫은 삶을 그냥 지속한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아직은
이상주의자 Y, 죽지 않았어.”
N은 친한 벗 Y가 이렇듯 힘겹게
고민하고 애쓰며 교사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몰랐다. 갑자기 친구가
자신보다 훨씬 커다란 어른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자신과 많은 것을
똑같이 하며 자라온 그 단짝 친구가 갑자기 자신보다 훨씬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이 돼있는 것 같은 느낌, 벗이 자신보다 우월하게 보이는
느낌, 그것은 순간적으로 벗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유발시켰다. 그러나
N은 그 자그마한 질투의 감정을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다. 실은, 질투보다는,
Y에게 더 질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런 질문들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직관적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랬구나, 아이디얼리스트
Y가 못마땅한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있었구나.”
N은 맥주잔을
쳐들어 Y의 잔에 살짝 부딪쳤다. N을 추종하듯 J도 자신의 잔을 가져다
댔다. 셋은 건배를 했고, N은 질문을 했다.
“학교가 통과의례
장치라 하더라도, 그저 베이비 시터나 하고 있을 뿐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너는 학교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겠다는 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난 그게 궁금해.”
.....
[Y의
대답]:
“민선생님 말씀이, 비록 드물긴 하지만, 학교에서, 또 선생님으로부터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도움을 받는 학생들이 꼭 있답니다.”
Y의
차분한 어조 속에 배어있는 단호함에 N과 J는 멈칫했다.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J가 되물었다.
“‘진정한 자신’이
뭐죠?”
Y가 답했다.
“자기실현된 자신이죠.”
Y의
답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N도 물었다.
“자기실현된 자신이라면,
에, 그러니까, 내가 실현된 내가 진정한 나란 말이야?”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한 내가 실현돼야 진정한 나란 말이야.”
Y의
답은 갈수록 더 어려워졌다.
“아이구, 골이야.”
N은 어지럽다는
시늉을 하고, J는 약간 곤혹한 듯한 표정으로 또 질문을 했다.
“암튼,
그 진정한 나를 찾는 작업을 학교가 도와주는 그런 드문 경우도 있다는
말이지요?”
Y는 밝게 답했다.
“맞아요, 역시 J씨는
현명하군요.”
이날 밤의 토론회는 조금 더 이어졌다. 대화의
내용은 술자리 초기와 같이 이론적이고 비판적인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나’란 과연 무엇일까에 관한 일종의 철학적인 대화가 발생했다. 그
대화 속에서 N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대화 도중, 죽은 B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B는 학교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했는데, N이 이제 생각해보니, B가 찾던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던 것이다. B가 N을 통해서 찾고자
했던 그것 또한 ‘진정한 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
B는 과연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있었던
걸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하지만 삶에서 무언가를 모색하는
모든 이들이 ‘나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있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아니니... N의 마음속에서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이 B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피어올랐다. ‘진정한
나’라. ‘진짜 나’라. 진짜 나를 실현하는 교육이라. B가 과연
그런 생각을 했었을까? N은 스물일곱 먹도록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 없던 ‘자아실현’이라는 화두의 골치 아픔에 몸을 떨었다.
‘에이,
뭐가 이리 골치 아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