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철학 (2007/8/20)
©
Suk Hoon Han
[원고
발췌 6]
[오교수의
질문에]
N은 잠시 간디의 사상을 떠올려봤다.
“에..... 그러니까 방금 말씀하신 간디의 사상은..... 몸과 마음과 영혼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였죠? 몸과 마음의 균형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데, 뭐,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신체도 건강해야 사람이 잘 산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영혼과의 균형이 뭘 지는 잘 모르겠네요. 영혼이 있긴 있나요?”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지?”
“종교가 있다면 혹 모르겠지만, 그런 걸 사람이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요?”
“사람의 감각기관만으로는 알 수가 없겠지, 아마도.”
“감각기관 말고, 순전히 두뇌로 생각해서는 알 수가 있을까요?”
“글세..... 그렇게 믿었던 이들도 있지만, 순수한 사고작용을 통해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 결론을 하나의 ‘앎’이라 할 수 있을까?”
“제 말이 그 말씀이에요, 결국 우린 영혼이 있나 없나를 알 수가 없는 게 아닐까요?”
“그걸 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앎의 경로가 있다고들 하지, 초월적 존재에게서 계시를 받는다던가, 아니면 이 세상의 껍질을 벗기고 볼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이 생긴다던가 하는 등의.”
“전 그런 거 안 믿어요.”
“흐음, 그렇다면 종교는 아편이라고 한 마르크스를 믿나?”
“믿기는요, 전 그냥 불가지론(不可知論)자일 뿐예요. 알 수 없는 걸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정직한 거니까요.”
“그렇고 말고, 허나 자네가 안 믿는 수많은 종교가들이 죄다 사기꾼이라고 보는 것도 일방적인 시각 아닌가?”
“사기꾼이라는 건 아니구요, 그냥 저는 모른다 이런 말이예요.”
“알았어, 정직한 건 좋아. 하지만 모르는 상태가 최종 종착지여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하나의 믿음일 뿐이야.”
오교수의 이 말을 들은 순간, N은 불가지론을 넘어서는 상태에 대해서는 스스로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 그럼, 교수님께선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아세요?”
“하하하, 난 있다는 쪽에 걸겠어.”
“정말요?”
N은 정말로 놀랐다. 지성의 첨단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오교수가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그녀의 놀란 눈동자를 미소로써만 응대하고는, 오교수는 개인교수 수업의 본론으로 되돌아갔다.
“Believe it or not (믿거나 말거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니까 간디가 말하는 영혼이라는 용어, 그 개념은 이성이나 과학적 사고에 의해 입증될 수 있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믿음체계에 속한다고 말해야겠지? 방금 N이 한 게 뭐야? 그 믿음체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아니었어? 즉, 믿지 못한다는 거지? 의심하는 거였지?”
N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교수가 약간 목소리 톤을 높여 말했다.
“바로 그게 철학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란 말이야!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는 것! 우리의 의심은 ‘영혼’이라는 수상쩍은 개념에 적용돼야 해. 철학을 한다는 것은, 간디의 사상을 교리처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걸 의심해보는 걸 말해. 교리를 강요하는 indoctrination 즉, ‘교화(敎化)’는 교육이 아니야. 교육은 세상을 보다 많이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어야 할 텐데, 교화는 세상에 대해서 눈과 마음을 닫게 만들어버리거든. 과연 영혼이란 게 뭔지, 또 우리가 일상적으로 잘 알 수 없는 영혼과의 관계를 어떻게 교육이라는 실천적 활동에서 설정할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야. ‘간디’라는 위대한 인물의 명성에 짓눌려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말고.”
경청하고 있는 N에게 잠시 오교수의 강의가 계속됐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심은 우리 자신의 의견과 시각에도 적용돼야 하지 않겠어? 우리가 완벽한 인식의 주인일 리는 없잖아, 안 그래? 우리는 늘 실수하고, 착오를 일으키고, 많은 경우에 타성과 습관에 젖어 있고, 또 선입견과 편견도 갖고 있고, 감정에 따라 색다른 성질이 나타나곤 하는 인간일 수밖에 없어.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완벽하게 바라볼 수가 있겠어. 따라서 우리의 눈앞에 드리워진 수많은 겹의 커튼들을 가능한 한 많이 걷어버려야 해. 일단 차가운 이성을 도구삼아서. 그 커튼들이란 전통, 권위, 관습, 인습, 여론, 선입관, 일시적 감정 등이지. 그 커튼들을 걷어내는 일을 철학이 도와주지. 앞으로 나하고는 철학의 이런 기능을 자주 활용해보게 될 거야. 바꿔 말하자면, 나와 함께 공부하는 과정은 전통, 권위, 관습, 여론, 선입관 등을 깨부수는 작업이 될 거야.”
N은 다소 우려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오교수에게 질문했다.
“의심해서 부정하고, 깨부숴버리고,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하죠?”
“의심, 질문, 재정립의 과정을 거치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겠지. 인류가 살아온 방식을 통째로 내다버리면 우린 더 이상 생존도 못하지 않겠어? 재정립 과정 후에 남아 있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본질적인 일을 다시 시작해야지. 만약에 우리가 이전에는 구태에 젖어서 애들을 수용소에 감금해두는 데만 열중했다면, 이제는 그런 구태를 벗어던지고 애들을 실제로 가르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야. 당연히 이 과정에서 해체와 폐기처분이 일어나겠지.”
“해체하고 폐기해서 남는 게 별로 없다면, 우린 어디에다 뭘 가지고 학교를 짓죠?”
“아예 학교 터부터 우리 손으로 닦아야겠지. 겁먹어서야 쓰나, 젊은 친구가.”
“뭔가 보고 따라할 게 없다면 겁날 것 같아요.”
“그런 자신의 타성을 의심해봐, 한 번. 세상을, 자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들을 의심스럽고,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한 것으로 다시 바라보는 자세가 바로 철학하는 자세야. 나 자신을 항상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는 어떤 이를 상상해봐. 그 사람에게 성장이라든가, 발전이라든가, 이런 게 있으리라고 봐? 나는 지금, 자기 자신의 밑바닥부터 새롭게 점검해보고, 그래서 교육이란 것도 그 기초부터 새롭게 점검해보는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야. 세계 최고의 학교를 꾸려갈 사람이 그 정도의 기개는 있어야지.”
‘기개라고? 내가 뭐 전쟁터 나가는 장수도 아니고.....’
N은 오교수가 조금 ‘오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자신이 맡게 될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 또한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