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의례 (2007/8/30)
©
Suk Hoon Han
[원고
발췌 7]
N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긴, [학교 설립]계획 같은 거, 아무리 멋들어지게 만들어놔도, 학교가 결국 하는 일은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제 친구가 그러던데요.”
조금 움츠려든 듯 보이는 N에게 오교수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통과의례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나는 요즘 학교가 통과의례를 제대로 못해내는 게 커다란 문제 거리라고 생각하는데.”
“예? ..... 공부 잘하는 능력에 따라 아이들을 솎아내는 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통과의례란 원래 가혹한 거야, 가혹해야 하고. 단, 자네 말대로 학업능력만을 기준으로 애들을 솎아내는 게 문제라서 그렇지. 애시당초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통과의례에선 말야, 우성 유전자를 솎아내는 과정이 가혹하게 진행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부모 손을 최초로 벗어나서 성인으로 발돋움하게 되지.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공동체의 전통과 가치관과 보전해야 할 정신 등을 전수받게 되고. 신화학의 대가인 죠셉 캠벨은 이러한 전수 과정이 특히 공동체의 공통된 신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봤어. 문제는 요즘 시대에는 이런 신화 자체가 없다는 데 있지. 따라서 우린 통과의례를 제대로 겪지도 못하고 그냥 그저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긴 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도 뭘 하며 살지를 모르는 거야. 그건 바로, 신화의 이해와 같은 교육과정을 통해서 공동체 속의 합당한 자신의 자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지. 공동체의 신화 이해를 통해서 성인식을 통과하는 것은 편협한 개인이나 가족만의 이익 추구 차원을 뛰어넘어, 보다 드넓은 차원의 자기발현을 꿈꿀 수 있는 모험심 가득 찬 성인을 선별해준다고 할 수 있어.”
“교수님, 신화의 이해를 통해 성인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이죠?”
“모든 문화에는 고유의 신화가 있어, 인간과 우주의 시초에 관한. 그런 고유의 신화는 또 보편적이기도 하지, 유사한 구조가 다양한 문명권에서 목격되니까. 신화의 보편성이란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보여주는 거야. 즉,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얼 하며 살다가 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오래 된 지혜들이 신화 속에 녹아있다고 할 수 있지. 신화는 인간의 삶의 길을 결코 획일화된 단 하나의 길로 제시하지 않아, 작금의 획일화된 교육체제와는 다르게. 신화는, 인간들 개개인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나름의 개성과 재능을 도구삼아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 둘 다를 위해서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어. 그래서 신화를 통해 성인식을 제대로 치른 이라면, 자신이 뭘 하며 살아야 할지를 뚜렷이 인식할 수가 있게 되지. 헌데, 내가 보기엔, 요즘 한국 사람들 중에 그런 성인은 드문 것 같아. 대개는 인생에서 뭘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겉모습만 어른인 사람들로 보여.”
오교수의 말에 N은 내심 놀랐다. 뭘 하며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이는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N 자신은 통과의례를 겪지 못한 것일까? N은 치열한 입시경쟁이라는 통과의례를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겪기는 했다. 문제는 한국의 이 통과의례가 치열하게 경쟁적이기만 하지, 통과의례 원래의 의의는 상실했다는 데 있다 하겠다. 즉, 한국의 입시경쟁이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자리매김하는 일종의 성인식 과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자리매김의 목적이 캠벨이 봤던 것처럼 공동체의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재능을 자신과 사회를 위하여 이타적으로 발휘하는 데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 목적이란 자신의 지능을 이기적으로 발휘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생존을 확보하는 데 있다 하겠다. 어쩌면 이런 이기적인 자기보호 성향의 밑바닥에는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가 드러내 보이는 전체적인 이기적 성향에 대한 개인적인 두려움이 깔려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회의 통과의례는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덕분에 N은 성인식을 성공적으로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뭘 하며 살아야 할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SKY’에 입학을 했어도, 하늘 아래 자신의 마땅한 자리가 어디일지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N은 자신마저도 이 사회의 교육체제의 희생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