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사 (2007/9/10)
©
S. D. Hwang
[원고
발췌 8]
“자네가
교육자라고 상상해봐. 교육자로서 자네가 교육철학 공부를 한다고 치자.
그 공부가 자네가 교육 관련 일을 해나가는 데 무슨 도움을 줄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N은 여전히, 왜곡된 통과의례 장치인 한국 교육의 희생양이 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기분에서 불쑥 이렇게 대답했다.
“교육문제 땜에 더 골치 썩게 해주겠죠.”
그녀의 찡그린 표정이 우스웠는지, 오교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래, 자네 말이 맞아. 교육철학 공부 같은 걸 하면 우린 더 골치가 아프게 돼. 왜냐하면, 철학적 눈으로 교육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은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당연시하지 않고, 의심을 갖고 다시 본다는 것을 의미하거든. 자,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바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골치 아픈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는 말이야, 항상 그래왔듯이 전문가나 권위자가 해주는 말만 수동적으로 듣고 앉아 있는 대신에.”
N은 여전히 골치 아픈 듯한 표정이고, 오교수는 계속 재미있어 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골 아픈 생각을 한다는 건,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스스로 주인이 된다는 걸 말하지. 남이 대신 해주는 생각을 그냥 따른다면 그걸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어? 아무리 골치가 아파도 내 힘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게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야. 자, 삶의 주인이 되는 자세가 교육자에게 필요할까, 안 필요할까?”
N은 오교수가 자신을 너무 얕잡아보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교육자라고 자처하는 이라면 당연히 삶의 주인이 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지, 삶의 노예가 돼서야 쓰겠는가. 그런데, 튀어나오는 대로 대답을 하려다가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나는 교직과정 들을 때 그런 자세를 갖고 있었나? 나는 내 힘으로 골치 아프게 교육에 관해 생각했었나?’ 자신이 그러하지 않았음을 N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교직이 인기 직종이어서 교직과정을 이수했을 뿐이었다. N은 특히 교사들의 이른 퇴근과 긴 방학 등과 같은 생활의 여유가 탐났었다.
“그런 자세..... 교육자에게 필요하겠죠. 자기 힘으로 생각한다는 것, 헌데 쉬운 일은 아니겠네요.”
“그래, 필요하겠지? 특히 교육자에게 더 필요한 이유가 있어. 교육자는 사람을 상대로 일하거든. 사람은 예측불허의 존재야. 따라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 교사는 무수한 예측불허의 돌발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해. 그 모든 대처방안을 미리 배울 도리는 없어. 그때 그때 제 힘으로 대처할 밖에. 그래서 그때 그때 제 힘으로 생각해야만 해. 아무리 골치가 아파도. 그런데 그러지 못한다면,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제 멋대로 당면 문제에 반응하기만 한다면, 그럼 어떻게 될까?”
N은 자신이 겪었던 여러 교사들이 떠올랐다.
“학생의 문제가 무시되겠죠.”
“그래, 교육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무시되고, 홀대받고, 억압되고, 그저 묻혀버리고 말겠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때 N의 마음속에는 섬뜩한 한 줄기 생각이 치솟았다. 죽은 B가 자신에게 도움을 원했을 때, 자신은 B의 문제에 대해 골치 아프게 생각해보기나 했던가? 그렇지 않았다. 오교수 말대로, ‘아무 생각 없이 제 멋대로’ 반응했을 뿐이었다, 고3이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만약에 그때 B의 문제에 더 귀 기울이고 진짜 선생처럼 깊이 생각해봤더라도 B가 그렇게 됐을 것인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기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하나의 학문적 분야에 대한 객관적인 논의의 시간이 N에게는 뼈아픈 자기반성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N의 어두운 표정에 오교수가 의아해졌다.
“N, 무슨 문제가 있니?”
“아니에요, 교수님. 교육자는 철학하는 자세로 자기 일에 임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요, 그게 너무도 당연해서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N은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B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가슴 속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달간 커다란 삶의 변화를 겪으며 잊고 지냈었건만, 그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N은 가슴 한 귀퉁이에 구체적인 통증을 느꼈다. 아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