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 (2007/1/7)
©
Suk Hoon Han
2007년의
입구에 서서 등 뒤로 남겨 둔 지난 한 해를 여전히 돌아보고 있습니다.
희망 찬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헌 해'의 정리가 미진함을 느낀
탓입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본다 해서 딱히 제대로 정리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한 번 더 뒤돌아봅니다.
성과
패, 그리고 과와 실의
꼼꼼한 대차대조표가 작성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잠시 시간을 흘러보내고
있다 보니, 그렇게 잠시 과거를 흘러보내고 있다 보니,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맴돕니다. 정말 고마운 또 한 해를 가질 수 있었구나, 나름의
어려움과 아픔도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즐거움과 기쁨도 함께 해주었던 한 해. 2006년
한 해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구나...
올 한 해 또한 그러할
것임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새해에도 어려움과 아픔과 함께 즐거움과
기쁨도 나를 찾아줄 것입니다. 그 모두를 나는 반겨야 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동안, 특별히 성취해낸 것도 없고,
특별히 커진 것도 없지만, 후회할 것 아무 것도 없고, 남이건 나 자신이건
간에 누군가를 탓할 일도 하나도 없습니다. 전보다 조금 더 신중해진
것 같고,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 것 같고, 아니면 조금 더 겁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실은 그런 것 보다는 조금 더 용감해지고 싶었는데...
허나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이 나이 먹어가는 것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일진대,
그에 대하여 불만을 품는 것은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용기가 필요한데... 내가 늙어가며 비록 더 신중하고 겁이
많아진다 해서, 반드시 용기를 잃어가는 것은 아니리라고 믿어봅니다.
신중함이 언제나 내 안에 있듯이, 용기도 그렇게 언제나 내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항상 그렇게 있음을 알면, 두려워 할 것도 없겠지요,
용기가 필요할 때가 되면 자연스레 밖으로 흘러나와 줄 테니까.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만용이나 객기를 곧잘 부려봤었습니다. 이제 나에게 용기라는
것은, 껍데기 '나'를 철저히 버리기 위하여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의 깊이와 우주의 넓이에 대해 점점
더 겁을 먹게 된다고 하여, 꼭 그런 용기가 오그라들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 한 해도 성실히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조금 더 삶의 미세한 파동을 잘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래서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며, 주위의 사물에 대해 겁먹은 듯이 섬세하게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반응하고 있을 나 자신에게 덮여
있을 쓸데없는 껍질들을 과감하게 벗겨낼 용기 또한 잃지 않을 것입니다.
주변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며 조금씩 더 신중해져가는 나 자신을 살펴보면 마치
현명함이 자라나는 듯 합니다. 그러나 현명함과 함께 역겨운 껍질들도
두텁게 쌓여갑니다. 모순되고 상반됩니다만, 언제나 그러합니다. 가능하면
그 현명함들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역겨운 껍질들을 잘라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역겨운 껍질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의 사랑을 온몸 가득
받고 있는 신성하고도 고귀한 존재입니다.
독백은 언제나 멍청합니다.
늘 '구체적인 것'들에 관해 쓰려고 노력하다가 이렇게 추상적인 것에
관해 쓰려니 어렵습니다. 새해에도 내 한 몸 귀히 여기고, '나'라는
인간 하나 소중히 여기어, 자신의 더럽고 어두운 껍질들 벗겨내고, 저
하나라도 잘 할 수 있도록, 이 모든 힘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애시당초에
'세상'이나 남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 하나나 잘
하면 됩니다. 정말입니다. 당신은 그러하지 않은가요? 당신 하나나 잘
하면 되지 않은가요? 아니면 마시구요. 나는 그러합니다만. 지독하게도
그러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