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기 (200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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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 Hoon Han
하루는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뉴스를 읽었다:
눈물로
찢어버린 대학 합격증
경기도 성남시 야탑고 3학년 조화진(18)양의
손가락은 물집과 화상(火傷) 자국투성이다. 성남의 한 고깃집에서 날마다
8㎏이 넘는 뜨거운 화로와 불판을 나르다가 생긴 상처다. 조양은 이
식당에서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50만원을 번다. 이
돈으로 10평짜리 반지하방 월세(5만원)를 내고 생활비로 나머지를 쓴다.
몸매를 꾸미고 싶은 나이지만 변변한 옷 한 벌, 화장품 하나 사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다 있는 휴대폰도 없다. 3년 전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로 생계는 줄곧 조양의 몫이었다. 하지만 조양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아 학교에서 얻은 별명이 ‘지화자’였다.
하지만 조양은 지난
6일 서럽게 울었다. 어렵게 공부해 충남 선문대 일어일본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370만원을 내지 못해 합격이 취소된 것이다. 그날 아침 조양의
담임선생님은 이 대학에 전화해 “등록 마감을 연기해 달라”고 사정했다.
선생님 옆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교의 대답을 기다리던 조양은
결국 “안 된다”는 통보를 듣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지난달
23일 반지하방으로 대학 합격 통지서와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
이미 조양은 자신이 대학에 못 갈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조양에게
동생 아름(16)이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엔 패스트푸드점에서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때묻은 만원 지폐 50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등록금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였다.
조양은 대학 합격증과
등록금 고지서를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그리고 동생을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제 조양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일본어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다던 꿈을 접었다. “우선 음식점에서 불판을 열심히 날라야죠.
저는 이제 예비 대학생이 아니랍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조양의 눈은 아직도 젖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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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7.2.8
쯔즛,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나. 고깃집 불판만 반 년쯤 닦았던 친구한테
들어서 아는데, 그게 사내가 하기에도 어려운 일이라던데... 잘 됐더라면
좋았을 것을, 안됐다. 하지만 어쩌겠니, 세상엔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못가는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닌 걸. 너무 낙담 말고 꿋꿋이 살다보면
좋은 길이 열릴 거야.
나는 이 뉴스에 대한 나의 자세를 이렇게
결론 짓고, 인터넷 브라우저 버튼을 눌러 다른 뉴스로 옮겨 갔다. 그리고
그 소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의 인터넷 뉴스에 어제 소개된 그 소녀에 대한 후속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호기심에 읽어봤다:
'찢어버린
합격증' 사연에 온정 밀물
등록금이 없어 대학 합격증을
찢어버린 조화진(경기도 성남 야탑고 3년·18)양의 사연〈본지
2월 8일 A8면 ‘반딧불’〉을 접하고 조양을 돕겠다는 독지가(篤志家)들의
온정이 이어졌다. 8일 한국관광대학, 영동대학교는 조양이 입학할 경우
입학금을 포함한 등록금 전액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왔다. 조양이 등록을
포기했던
선문대측도 “등록기간은 끝났지만 조양을 구제할 방법이 없는지 교육인적자원부에
공문을 발송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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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본지에는
아침부터 조양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분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50대 남자는 “내가 세 딸을 키우는데 아직 대학
다니는 막내딸이 생각났다”며 “내 딸을 닮은 화진이에게 조그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반도체회사 직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고만
소개한 분들 그리고 익명을 부탁한 저명 법조인도 “꼭 돕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조양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급식을 공급하는 신무현씨는
교장선생님을 통해 현금 50만원을 조양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기사가 게재된 조선닷컴 홈페이지에 250여건에 달하는 댓글로 조양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조양은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관심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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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7.2.9
'세상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내가 그들을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잖는가,' 따위의 반응이나 하며 금전적 지원은커녕 마음 한
조각도 안 내어준 나같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친히 연락을 취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제공해준 인간들도 있다. 그들을 보니 나 자신이 부끄럽다. 나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맛보게 해주는 그 사람들이 참 고맙다.
사람은,
특히 수행자는, 무엇보다도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지녀야 한다. 타인을
불쌍히 여기어 타인의 불행에 눈물 지을 줄 모르는 이는 깨달음에 이를
자격이 없다. 내 마음에는 사랑이 부족하다. 내 마음에는 타인과 나의
하나됨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하다. 사랑의 마음 없이 하는 공부는 죄다
헛 공부에 불과하다.
내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 중에도 어려운
처지에서 수학중인 학생들의 수가 적지 않고, 간혹 자신을 막 굴려서
학비를 조달하는 낌새가 역력해 보이는 여학생들도 있다. 어린 여학생이
그런 '티'를 보이는 것은 나를 슬프게 한다. 딸들 키우는 애비여서인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에게 나는 자신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을 지극히 소중히 다루어 줄 것을 부탁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말하자면 나의 법(法) 보시라고나 하겠다. 나의 보시가 어떤 성과를
일구었는지는 내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다음 학기에도, 또 그 다음
학기에도, 이런 법 보시라도 계속해야 하겠다. 조금 덜 부끄럽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