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마음, 또는 정신 (2007/3/11)
 

© Suk Hoon Han                                                                                                                                                                                  
 
 

나는 원체 유물론자였다. 그것이 나의 이성적 역량에 비추어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믿었었다. 유물론자로서 사회과학과 역사학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던 나는 종교를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보았고, 그런 내 눈에는 종교에 빠져있는 이들이 좀 안돼보였었다. 나는 독실한 신자를 '환자'라고 불렀었다. 그랬던 내가 유심론자가 돼버렸다. 그 변절의 과정은 여기저기에 적어둔 바 있지만, 그 과정이야 말로 '수렁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사건이었다. 유심론자인 나는 마음의 힘과 신비에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마음을 설명하려는 현대 과학의 성과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과학이 보여주는 마음은 유물론적 관점에서나 볼 수 있는 마음일 뿐이어서, 나의 지적 계발에 주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얼마 전에도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에 인간 두뇌에 관한 연구 성과들을 요약해놓은 기사가 있어 열심히 읽었는데, 그다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없었다. 다만, 그 특집 기사에 대한 몇몇 사람들의 반응이 나에게는 더 교육적이었다. 리차드 메츠라는 독자는 이런 글을 남겼다:

뇌와 인간의 마음(정신)에 관한 새로운 발견들은 과학적으로는 견고할지 모르나 철학적으로는 잘못이 있다. 과학자들은 장미를 쪼개보기를 좋아해서, 장미의 원자 및 원자 이하의 입자들에 이르기까지 쪼개보려 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의식을 단순히 뇌 안의 자극으로만 여긴다. 이것이 견고한 과학이라 하여도, 이는 철학, 역사, 신학 등의 진리와 의미에 이르는 여타 경로들을 부정해버린다. 전체는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크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와 다르다.

통찰력 있는 글이다. 장미를 안다는 것은 장미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들을 파악하는 것일까, 또는 장미의 향기와 모습을 느끼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일까? 전자와 후자가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장미의 미립자를 이해하려는 과학적 노력이 장미를 느끼려는 예술적 행위와 엄연히 구분되는 현재의 우리의 인식 스타일에 문제는 없는가? 나는 과학을 조금도 부정하지 않지만, 과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 - 토마스 쿤식의 '패러다임'이 - 지금과 항상 똑같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냉철히 떨어진 객관적 관찰자(dispassionate observer)의 미덕이라는 것은 양날을 가진 칼일지도 모르겠다 - 열정을 떼어낸(dis - passion) 과학적 해부만으로는 열정을 가지고 알 수 있는 장미의 본질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마음, 또는 인간 정신을 아무리 세밀하게 분해하여 파악한다 하여도, 그 분해된 부분들이 전체를 이루어 작동하는 방식을 자동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여타 경로'들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팀 오카너라는 목사는 해답이 제공되지 않은 가장 어려운 질문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하나의 생각, 발상, 영감, 또는 의지가 뇌에 나타나기 이전에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집단 의식 속에 있는데, 그 집단 의식을 우리의 세계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하느님, 여호와, 알라, 원천, 우주 등등의.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영혼이 살고 있다.

미국의 개신교 성직자로 보이는 이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는 매우 개방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는데, 어쨌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마음의 원천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건 간에, 그 원천이 우리의 유한한 신체 기관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원불멸의 영혼과 우리의 마음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과학자의 입장에서 스캇 헤이그라는 의사는 인간 육체의 테두리 안에 거하지 않는 신비로운 마음의 발현에 관해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일화를 통하여 고백하고 있다. 자신이 담당했던 뇌사상태의 한 환자는 뇌 전체가 하나의 종양 덩어리로 변해있어서 일체의 정보처리 기능이 마비되었고, 따라서 언제 숨이 끊길지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한 마디로 뇌가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한 가족의 가장이었던 그 환자는 숨을 거두기 몇 십분 전에 갑자기 의식이 돌아와서, 병석에서 일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5분 여동안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식구들의 등을 토닥여주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안심시켜준 후에 떠났다는 것이다. 명백히 의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뇌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정신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헤이그 박사는, 아버지의 정신이 가족들을 위안해주기 위하여 고장난 두뇌를 꿰뚫고 몸을 움직였다고 믿는다. 그는 육체의 테두리를 넘어서 존재하는 불멸의 영혼을 부정하지 못한다.

헤이그 박사가 체험한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종교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우리의 마음은 신과 연결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와 신은 분리돼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무수한 인간적인 약점과 오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말이다. 그 신성하고도 고귀한 나를 그에 걸맞는 방식으로 대하고자 애쓰는 것이 나의 수행이다. 물론, 나 이외의 모든 타인들도 나와 똑같이 신성하고도 고귀하고, 따라서 그러한 그들에게 걸맞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 역시 나의 수행이다. 최근들어 동·서양 철학 공부하는 분들과 마음에 관한 유교 경전을 읽기로 했다. 지적인 공부가 수행에 도움을 주어 내 마음의 보다 큰 주인이 되고자 한다. 나는 유심론이라는 진리의 맛을 보았기에, 마음에 관한 공부를 잘 할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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