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친절 (2007/4/23)
©
Suk Hoon Han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는 원래 선량했던 아버지가 어린 자식에게 잔혹한
매질을 해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아버지는 실직한 것이었다. 그가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그렇게 그대로 어린 자식에게로 전해졌던 것이다. 나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초기에 일자리를 잡고 사회적으로 적응하느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와서 어린 자식에게 버럭
화를 냈었다. 세상 사람들의 불친절을 스스로 여과시키지 못한 채, 그것을
힘없는 어린 딸에게까지 전가시켰던 것이다.
그 시절, 깊이 반성하고,
깊이 후회하고, 타인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하는
불친절이 그 당사자 한 사람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안
식구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적으로
나의 비난을 받은 이가 집에 돌아가서 그 화풀이를 처자식에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처자식은 영문도 모른 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불친절을 저지른다. 개구리떼에게 던지는 돌멩이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악동들이 예상할 수 없듯이.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가 나를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해서 분노가 치밀어서 그랬었다. 나의
험담 때문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그가 하던 일은 잘 안됐고, 그는 사업을
접었다. 혹시 그의 생계에 크나큰 지장이 초래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길래, 비열하게도 나는 그의 부당 행위만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로 했다. 그러나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 비록 그의
불친절이 나의 불친절 - 아니, '불친절' 정도를 능가하는 악행 - 을
초래했다고 할 수는 있으나, 어쨌든 나의 불친절이라는 파괴적인 돌멩이가
그의 식구들에게도 피해를 입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숱한 죄악들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도 그런 수많은
불친절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나라면 선생으로서 그런 청년에게
따스하게 다가갔었겠는가? 대학교 캠퍼스에는 밝고 어여쁜 학생들도
수두룩한데, 그런 내성적 외톨이에게 눈길이라도 한 번 제대로 줬을까?
(아아, 바로 그처럼 내성적 외골수 외국인이었던 나에게 따스한 미소와
친절을 베풀어주셨던 미국 대학의 여러 은사님들을 생각하니...)
어쩌면,
우리의 불친절이 축적되어 가다가 한 번에 폭발한 것이 이번 버지니아
공대의 참사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것이 폭발하여 분출되는 부분은
우리들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불안한 한 개인이다. 나의 불친절은
그 폭발에 대해서 아마도 1/60억 만큼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아무 죄도 짓지 않고 깨끗이 살고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지 말 일이다.
겸허해질 일이다. 세상에서 제2의 조승희를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라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도가 있다면, 그것은 타인들에게
친절과 애정을 베풀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잘나지는 것이다. 내가 못나서
남들에게 불친절과 냉담만을 전할 때, 나는 제2의 조승희의 창조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는 것이지, 그 반대는 결코 아니다.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착하게 살아보기로 한다. 음식 배달시켜 먹고 나서, 그릇의
음식 찌꺼기와 국물 등을 따라 버리고, 물로 한 번 헹궈서 내놓은다.
그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핀잔을 주지만, 나는 그를 핀잔준다: 저 그릇 수거해가는 배달 청년이
더러운 그릇을 챙기며 '에이 씨발' 소리 한 번 안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일 아니겠냐며. 말은 번드르르하게 잘한다. 운전하다 위험하게
끼어드는 배달 오토바이에다 욕이나 해대는 주제에.
그래도
향상과 개선을 믿으며 살기로 한다, 나와 세상 모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