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욕망

에고의 욕망 (2008/5/17)

동서를 막론하고 작가라는 이들은 첫 책을 출판하느라 노심초사했던 경험을 흔히들 갖고 있는 듯 하다. 자기 마음대로 '출판'해내는 인터넷 홈페이지 웹퍼블리싱에 비하면, 종이에 활자가 찍혀 나오고 ISBN 번호가 등록되는 책을 한 권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다. 나도 그런 과정을 겪으며 많은 것을 새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어버이날에 큰 딸이 내게 준 카드에는 애비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베스트셀러'라. 허허.

이미 두 번째 책의 원고 집필을 시작했다. 큰 딸과 함께 작업해 갈 계획이다. 나는 글을 쓰고, 아이는 삽화를 그리고 - 딸이 온갖 미술대회에서 받아온 상장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굴러다닌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정도를 독자로 생각하고 쓰고 있기 때문에 딸의 피드백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주로 '교회 안 가면 지옥 간다'는 극렬 전도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고 혼란에 빠진 어린이들이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여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에 관한 내용을 담게 될 예정이다. 딸내미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자신이 유명인사가 될 꿈을 꾸고 있는가 보다. 나는 두 딸들을 앞에 두고, 책이란 건 많이 팔아서 돈 많이 벌려고 쓰는 게 아니라는 고리타분한 말을 해줬다. 그러자 영악한 둘째가 대뜸 묻는다.

"그럼, 뭐 하러 책을 써?"

"그야... 아빠 생각을 세상 사람들하고 나누려고 쓰는 거지..."

"피이!"

도덕 선생 같은 애비의 말은 초등 2학년 짜리에게도 씨알도 안 멕힌다.

사실은, 나는 내 책을 많이 팔아먹고 싶지 않은가? 돈과 세속의 영예를 꿈꾸지 않는가? 내 에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싶지 않은가?

Well, well, well.....

얼마 전, 이 싸이트에도 소개돼 있는 게리 주커브라는 저술가겸 영적 지도자의 홈페이지를 오랜만에 찾아가 봤다. 싸이트 업데이트에 쓸 만 한 좋은 글이 없을까 찾아갔던 것인데, 예전에는 내 웹싸이트처럼 아마츄어 냄새가 팍팍나는 곳이었건만, 지금은 완전히 리모델링해서 찬란하게 번쩍이는 모습으로 변모했 있었다. '영성' 계통의 구루들이 책 많이 팔고 수련 프로그램 많이 만들어서 재정상태가 좋아지면, 유행과도 같이 홈페이지를 화려하게 리모델링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해오긴 했지만, 주커브 선생의 홈페이지의 변모는 특히 그 편차가 심했다. 예전의 그의 홈페이지는 칙칙하고 단순해서 중세의 수도승과 같은 냄새를 풍겼었다. 헌데 아래의 사진에 잘 나타나 있듯이, 지금의 홈페이지는 밝고, 화려하고, 번쩍거린다. 오프라 윈프리도 나와 있고, 예쁜 아줌마랑 신방도 꾸몄나보다. (이 아주머니는 간호사 출신이라는데, '신과 나눈 이야기'를 쓴 월쉬 아저씨도 간호사 출신의 예쁜 아주머니를 다섯 번째인가 부인으로 맞았더구먼 - 그러고 또 헤어졌댔던 것 같던데.)

존경하는 구루인 주커브 선생의 새로운 홈페이지의 화려한 겉모습을 보고 있는 내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왜, 괜히 심통인가? 안빈낙도하는 구도자적 모습이 아니어서? 너무 화려하고, 빛나고, 또 너무 행복해 보여서? 고행의 길을 가는 수도자의 금욕주의자적 모습이 아니어서? 너무 '성공'했고, 명성을 떨쳤고, 모든 것을 다 가져서? 영적인 스승이라기 보다는 세속적인 사업가처럼 보여서? 또는, 실은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아직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

고리타분할지는 몰라도, '내 생각을 세상과 나누고 싶어서' 책을 쓴다는 내 말은 진심이다. 내 딸에게 감히 그런 것을 거짓으로 말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 책이 멋지게 출판되어 많이 팔리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내가 주커브 선생의 홈페이지에 대해 심통을 부린 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해 심통을 부린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궁극적으로는 중생제도라는 과분한 소명을 채워가는 행보의 일환으로 책을 쓴다고 말을 하여도 - 스스로 그것이 거짓되다고 믿지 않으나 -, 그럼에도 내가 소명의 길에서 세속적 성공과 얄팍한 에고의 만족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이러한 이중성, 또는 양면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돈 많이 버는 개신교 목회자들을 비난하는 것을 평소에 자제한다. 값비싼 정장으로 몸을 휘감고 최고급 승용차 뒷 좌석에 앉아 번쩍이는 성경책 펼쳐놓고 다니는 잘나가는 목사의 모습을 봤을 때 나는 표면적으로는 역겨움을 느꼈으나, 거의 포착하지도 못할 정도로 순간적으로나마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미세하게 느꼈던 그 부러움이라는 나의 감정의 그림자를 공연히 목회자들에게 투사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워, 나는 그들의 금전적 성공을 비난하는 것을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위한 씨를 뿌리고 싶다는 것에도 양면성이 있는데, 그 밝은 면은 자비심, 사랑, 보시인 반면에 그 어두운 면은 에고의 이기적 욕망이다. 이 두 가지 면의 동거에 대해 오랜 시간 껄끄럽게 여겨왔으나, 작년에 철학자 김형효 선생께서 쓴 하이데거 해설서를 읽고, 결국 김형효 선생과 만나 삶과 철학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 뒤, 서서히 그 껄끄러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도덕적 선명함에 대한 희구 자체가 에고의 소유욕에서 뻗어나온 바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김형효 선생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국내 최상급의 원로 철학자로, 불교의 유식학적 지평에 입각해서 난해하기로 이름난 하이데거를 명쾌하게 해설해주는 뛰어난 학자이지만, 평생 하나의 굴레를 안고 살아왔다 한다. 하이데거가 나찌라는 당대 권력에 대한 부역 시비에 시달렸던 것과 같이, 김형효 선생도 박정희 정권을 지지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던 과거를 안고 있다. 물론 히틀러에 대한 부역과 박정권에 대한 부역을 동일 범주로 묶어서 비난할 수는 없다 - 전자의 악의 정도라는 것은, 후자의 그것이 상황 논리에 의해 변호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 비할 때 거의 '절대악'의 경지에 근접한다 할 수 있으므로. 또한 선생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에 대한 당시의 옹호는 철학자적 양심에 터한 부끄러움 없는 행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효 선생은 바로 자신의 그러한 '전력'으로 인해 '선명한 정의'라는 개념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할 입지가 좁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얄팍한 예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단세포적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의 위험을 몸소 겪고 성찰한 선생이었기에, 이제 세상을 향하여 선과 악을 칼로 무 자르듯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외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의 에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엊그제 교육철학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에게 강변했듯이, 나의 어두운 면을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데 낭비될 정신의 에너지를 나의 자아 전체의 건강한 활동 쪽에 쓰이도록 돌려주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다. 겉으로 도덕적으로 보이기 위해 속이 곯는 것보다는, 덜 도덕적으로 보이더라도 건강하게 사는 편이 나는 더 좋다.

다만, 나의 초심이 신께서 내게 주신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었음을 결코 망각하지 않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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