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사람 (2008/5/5)
©
Sukhoon Han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말을 내게 한다.
내가 그들에게, 나는 사는 게 재미있다는 응답을 하면 잘 믿지를
못한다. 삶이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마저 의심하고 있는 그들이
측은하다. 삶이 때로 괴롭고 힘들 수는 있어도, 내게 삶은 분명히 재미있거늘.
청명한
5월의 오전에 길을 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세상의 그
누구를 부러워하는가? 어릴 적엔 내 또래의 당시의 우상이었던 브루스
리를 부러워 했다. 대학생 때에는 박학다식한 교수님을 부러워 했다.
내가 싫어하는 이가 누군지를 앎으로써 나를 잘 알 수 있듯이, 내가
부러워하는 이가 누군지를 알면 또 나를 잘 알 수 있다. 사춘기의 나는
절대적인 육체의 힘이나 카리스마, 이런 것들을 부러워 했던 것이고,
청년기의 나는 지적인 허영이 강했던 것일 터이다. 허나 지금은 브루스
리도 교수님도 부러워 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누구를 부러워 할까?
돈이
무지하게 많은 재벌 회장님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다. 돈이 내게 어떤
능력을 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지만, 그들의 영향력과
금력이 부럽지 않다. 권력자를 부러워해 본 적도 없다. 권력이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드는지 알고 있지만, 그런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도 없다. '신앙'에 천착하고 살지만 성직자를 부러워 하지도 않는다
- 특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신의 뜻을 대행할 권위를 지녔음을 인정하지도
않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성직을 깨칠 필요가
있다고 믿는 내 입장으로서는... 비슷한 맥락에서 '교주'나 성자를 부러워
하지도 않는다: 전자야 워낙 사회에 암적인 존재인 경우도 많지만, 굳이
후자의 삶을 모델로 삼지도 않기에 - 평범하게 소주 마시고 웃고
떠들며 살고 싶기에. 결국, 이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부러워 하는
이가 세상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선생이다. 실은, 오랜 선생 경력 끝에 선생들의 선생이 된
사람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지만, 눈빛이 여전히 반짝이고
소명에 충실한 한 선생이다. 유명하지도 않고, 학계나 교육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권위자도 아니다. 단, 교육에 대한 그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를 듣는 것이 내게는 감동적이다. 교육을 통해 신성을 드러내려는
그의 뜻을 엿보는 것이 내게는 행복이다. 나는 바로 그 사람을 부러워해오고
있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자신의 삶을 자신에게 부과된 소명에 바친
이에게서 퍼져나오는 거부할 수 없는 힘, 나는 그 힘을 부러워해오고
있었다.
내가 진실로 유일하게 부러워하는 이가 누구인지 포착하게
되니 나의 삶의 행보의 방향을 잡는 것이 한결 더 수월하다. 그 길이
진정한 나의 소명임을 재확인하니 그 길로 가는 발걸음이 더욱 행복하다.
나의 삶은 고난을 겪을 수는 있어도, 결코 재미없지는 않다. 실은,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며 또 하루의 재미있는 날을 주심에 신께 감사드린다.
이 재미를 어떻게 타인들과, 특히 나와 가까운 친지들과 나눌 수 있을지,
그 구체적 방법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스스로 재미있다고 너무 떠드는
것도 밥맛 없는 일이지 않는가 - 타인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도
하니까.
휴일인 오늘은 집안의 아동 도서들 중, 역사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들을 6학년 용과 2학년 용으로 분류하여 6학년 딸과 2학년
딸에게 각각 안겨주고, 걔들을 거실에 앉혀놓고 세계사 수업을
했다. 칠판에 마커로 지도를 그리고 백과사전의 사진을 함께 펼쳐보며,
선사시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수메르, 유대교, 그리스 신화까지
진도를 나아가는 데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첫째 딸이 사회 과목에
너무 약하다 하여 애비로서 전공 실력을 발휘해본 것이다. 애들도 재미있게
공부했고 나도 보람있었다 - 적어도 학원비는 벌었으니까; 그보다는,
내 새끼들이지만 '어린이 날' 전 날 아이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재미있게 살았다.
아무튼,
지금 내가 부러워 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점검해보는 것이 꽤 유용한
자아성찰의 방법일 수 있다는 말을 적어두고 싶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부러운 감이 들었던 구체적 인물들에 관해 자신을 대입하여 생각해보고,
역할 시뮬레이션 같은 것을 상상을 통해 해봄으로써 내가 어떤 인물의
삶을 실제로 가장 부러워해왔는가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최후에 남게 된 가장 부러워하는 이의 삶을 나의 발전을 위한
모델로 삼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 편이, 나와는 개성이 매우 다른 불특정 타인들이
가장 숭상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돈, 권력, 명예 같은 것을 별 생각없이
추구하는 것보다는 훨씬 초점이 맞춰진 삶의 행보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게 찾은 부러워 하는 이의 삶을 본보기로 삼고 산다는 것을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 허나 이 귀중한 인생 여정
속에서 언젠가라도 그 현실을 바꾸기를 소망한다면 이 정도의 점검
단계는 당연히 거쳐야 할 것이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야 재미있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