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용서할 의무 (2008/10/21)

<'인터넷의 지혜' 보충>

이번 주에 '인터넷의 지혜' 쎅션에 새로 개설한 '오프라 윈프리' 싸이트에는 네드 할로웰 박사의 용서하기에 관한 글을 번역해서 올렸습니다. 할로웰 박사의 주장을 제 식으로 풀어써 보자면, '참된 나를 끄집어 내보아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난 나에게 용서란 바로 그것을 해볼, 즉 평소에는 세상풍진에 찌들어서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내 안에 숨어있는 더 크고, 더 숭고하고, 더 참된 나를 끄집어내볼 절호의 찬스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참된 자기 실현을 위한 기회의 장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면, 용서는 바로 그 참된 자기를 실현할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수용할 수 없는 이에게는 용서의 프래그머티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용서를 안하고 사는 것은 사실 괴로운 일이고, 그 원수같은 인간에게 증오심과 복수심을 품고 사는 데에는 많은 정신적 에너지가 소요됩니다. 그 인간으로부터 해를 당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여생을 그 인간을 열렬히 생각해주며 - 정신적 에너지를 쓰며 -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에너지의 낭비를 멈추는 것이 현명하겠습니다. 어쩌면 용서는 증오나 복수심을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의 최상의 힘을 쏟아부어 한 번 용서를 감행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증오와 복수심에 계속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그 잉여 에너지를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곳에 더 사용할 수가 있게 됩니다. 산술처럼 단순한 이러한 논지를 본 싸이트에 소개된 '부의 법칙'이라는 책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용서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책인데, 그건 좀 과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원칙적으로 매우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 자신은 용서를 자기 실현의 기회로 보거나, 또는 용서에 프래그매틱한 이점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신께 빚진 것이 있어서 용서를 중시합니다. 물론 용서를 중시한다 해서 제가 모든 이들을 용서할 수 있는 성자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만, 그래도 용서가 가능한 존재로서의 나를 기억하며 산다고는 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신께 빚졌다는 믿음을 품고 삽니다. 바로 신께서 저를 용서해주었기에 제가 신께 빚을 졌다는 말입니다. 신께서 용서해주신 저의 죄과는 참된 나 자신을 망각하고, 참된 나를 부정하고 살아온 과거였습니다. 과거의 나를 용서해주었다는 말은 과거의 나에 얽매어 있지 말고 그 이상으로 커져보라고 부추겨주고, 권유하고, 응원하고, 가르쳐주었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속박의 사슬을 풀어주었다는 말입니다. 신께서 그렇게 나를 용서해주었는데 나는 다른 이들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도 그런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여전히 삶속에서 용서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니까요. 그러나 다시 한 번, 용서하기 위한 힘을 내봅니다. 그럴 때마다 삶을 헤쳐나갈 더 큰 힘이 솟아오르곤 합니다. 실용적이죠.

저를 고통스럽게 해주는 기독교 경전 구절을 이곳에 적어놓습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네 빚을 갚아라'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 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 마태오 복음 18: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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