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얘기 (2008/10/16)
©
Suk Hoon Han
에고의
동물인 인간, 그중에서도 수양이 덜 된 나같은 부류들이 글을 쓰겠다며
끄적거리다 보면 그 글속에 제 자랑이 태반은 된다. 그나마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기에 푼수 짓 자제하려 노력은 하지만, 어쩌다 보면 바로 요런 문장들
같은 겸손해보이는 글이 슬그머니 등장하는 한편, 감추고만
있기에는 너무도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참지 못하고 까발린 알량한 에고가 널 뛰는 글도 고개를 디밀게 되는 바, 결국 상이한
이 두 가지 글들 사이에 간극만 더 벌어져서, 급기야 글쓰는 인간의 한심한
내적 균열상만 더 광고하게 되기 십상이다.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푼수 짓을 하게 된다. 내 잘 났다는 얘기를 쓰겠다는 말이다.
또 다시.
내가 무엇이 그리 잘났는가 하면, 누가 남 얘기를 하는
것이 부정적인 묘사일 경우에 결코 그 얘기를 완전히 믿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 별 것도 아닌, 타인을 믿어주지 못하는 성향
따위가 뭐 그리 잘난 것이냐고 측은해 할 이들도 있겠지만, 나의
자부심은 매우 타당하다. 왜냐하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제3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험담을 세상에
퍼뜨리는 데 동참하는 것을 너무도 빈번히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악평을 중계하는 인물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을 만한 인물인데!"
"그
정보의 쏘스가 얼마나 믿을 만 한데!"
"아니 그럼,
그 사람이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그
인간 그럴 줄 내 알았다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내가
제3자에 관해서 누군가로부터 들은 정보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는 순간, 나는 이미 그 정보 제공자와 함께 같은 배를 타고 있고,
동일한 사회심리적 이권을 수호하게 된다. 그가 제공해준 정보를
신뢰할 만한 것이라며 또 다른 이에게 전하고 있는 나 자신의 정보 평가
능력이 의심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에고의 문제다. 에고
때문에 정보의 진위 여부의 엄정한 확인보다는 그 정보를 참이라고
평가한 나의 판단력이 존중받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돼버린다.
어디
이런 일이 살다보면 한 두 번 일어나나? 아마 모든 이들이 이같은
미확인 정보에 에고의 이권을 덧씌워 확산시키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 자신도. 하지만 내가 푼수같이 나 잘났다고
외치는 이유는, 내가 부지불식간에 나도 모르게 이런 작업에 동참할 경우 이외에,
알면서 이런 정보의 흐름을 용인하고 의문 없이 그 흐름에 따르는 일은
없다고 믿기(또는 착각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
내게 와서 제3자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나는 불친절하게도 늘
이렇게 반응한다.
"당신 눈으로 봤소?"
이런
내 물음에 대해,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 주장한다면,
그 주장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내 앞의 이 인간을 아예 믿지 않는
것이 돼버리므로 일단 믿어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직접 봤냐는
내 물음에 그렇다는 대답을 듣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사람들은 이미 누군가에게서
한 차례 중계를 거쳐 변형된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내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 너무도 빈번하게도.
나는 이같은 '남이 한 얘기'의
피해자가 돼본 일이 꽤 많다. 즉, 소문에 의해 죽일 놈이 돼버린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조직이나 특정 사회
속에서 나에 대한 악의적 소문이 돈다는 사실을 포착하게 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왜 나는 그런 평이나 받는 인간이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나는 도 닦은 선인도 아니지만 그런 소문을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그 소문만 듣고 나를 흘겨보고,
손가락질 하고, 비난하고, 배척한다. 그러면 나는, 나의 변론은 한 마디도
들은 적 없이 오직 소문에만 근거해 나를 배척하는 그들 모두를 배척한다. '소문 따위로 인해
나같이 괜찮은 인간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 버린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They don't deserve me(나와 사귈 자격이
없어).'
한마디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일지 모르겠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그들의 시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어떤 의무감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오만하고, 또 불친절하게 살아간다. 누군가 내게 와서 제3자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전하면 나는 묻는다.
"당신 눈으로
직접 봤소?"
직접 봤다고 대답하지 못하면, 나는 당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답해준다. 나의 이런 불친절함에 내게 모처럼 다가와서
말을 걸었던 이들은 섭섭해 한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누군가의 악평에
동참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내가 왜 근거도 없이 한 사람을 손가락질
하는 죄악에 동참해야 하는가?
실제로는 잘나지도 못하고 부끄러울
따름인 인간인 나이지만, 이같은 나의 차거운 태도를 일관성 있게 지켜온
것에 대해서는 잘난 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장기적 결과가 나는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내가 타인들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퍼뜨리지 않을 것으로 믿어주기 때문일 것이리라.
'~카더라'는 풍문이 사람을 죽인다.
말이 사람을 죽인다. 말의 엄중한 힘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런 도덕적 교훈의 문제는, 그게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언행이 아닐 경우에 우리의 성정을 억압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최근에 탐독한 스위스의 한 저명한 분석심리학자도
- 무의식적 억압의 폐해에 대해 예민할 수밖에 없는 -, 억압을
감수하면서까지 도덕적 가르침을 견지할 지혜로운 방법을 익힐
것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면의 신성의 자유로운 발현을 막는
도덕적 장치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도덕적
장치들을 제거할 수는 없다. 신성과 도덕성 사이의 조화를 기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자그마한 도덕적 장치를 고장내버리지
않기 위해 나름의 수련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점을 자랑하겠다. 나는
남에 대한 악평을 퍼뜨리지 않는다. 나는 타인에 대한 심판을 거부한다.
물론,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자랑하며 잘난 척 할 수 있는 부분은
이게 거의 다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좋은 걸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있어도, 좋은 걸 아주 쬐금밖에 못 갖고 있는 이들은 지레
콤플렉스에 빠져, 그걸 남들에게 자랑하지 못해 안달인 법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