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들 (2008/2/3)
©
Sukhoon Han
엊그제
밤에
'MBC 백분토론'을 보느라 잠잘 시각을 놓쳐 너무 늦게 잤다. 성직자
과세 문제가 토론의 주제였는데, 수구파와 개혁파로 나뉘어 토론을 했다.
현재 한국 개신교단에 심각한 문제는 없다는 주장만 거의 되풀이
한 수구파 측에는 논리와 입증자료 모두가 결여된 반면, 개신교단이
치명적인 위기에 빠져있다는 개혁파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치밀했고 풍부한
근거에 기초해 있었다. 내 관전평은, 한 마디로 '게임'이 안됐다. 전자는
궤변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억지와 감정적 왜곡, 그리고 '색깔론'적인 극우
보수의 주장만 되풀이함으로써, 개신교계와는 상식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나의 선입견을 더욱 공고히 해줬다. 수구 개신교 쪽의
주장에 '논리'라는 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엘리트주의적
연민이 전제돼야만 한다: '세상에는 돈, 권력, 학력으로 구축된 위계질서가
있고, 그 위계는 신의 대행자인 교회가 인정하는 것이니, 위계 속에서
열등한 이들은 자신의 미천한 본분을 깨닫고 묵묵히 따르면 다 좋은
게 좋게 돌아갈 것이며, 그 질서를 바꾸려 했다가는 오히려 열등한
이들이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보수 개신교 교단의 지성의 부도
상태와 공황에 가까운 집착욕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모습이었다.
내
예상을 깨뜨린 것은 개혁파 패널 쪽이었다. '종교법인법
제정추정 시민연대'
대표인 고은광순이란 분의 명철함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교회개혁실천연대의 대표인 박득훈
목사란 양반은 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성직자'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나타내며, 역사적으로 제도 교회(카톨릭)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개신교의 초심을 되살려, 만인이 '성직'을 수행하는 성직자임을('성직자여야
함을'이 아니라) 강조하였고, 교회가 결코 성역일 수 없다고 일갈하는
것이었다. 박목사의 예리한 지성과 명쾌한 논리, 그리고 그러한 뛰어난 '달란트'의 원천인 예수님 말씀에 대한 그의
충심을 목격한 나는,
그 자리에서 박목사의 팬이 되고 말았다. 저런 인재를 뒀으니 개신교가
복이 있는가 보다. 수십 년 안에 아주 쪼그라들 걸로 예상하고 있었더니만,
비록 소수라도 박목사 같은 분들이 있으니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박목사와 같은 분은 소수일
뿐이다. 돈과 권력 앞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분의 용기가
대단히 존경스럽지만, 한국의 기복주의적이고 금전숭배주의적인 기독교의
우상을 타파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돈줄에 붙어있는 이권은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엄청난 이권의 절대적인 타락은 절대적인 자연현상이다.) 유독 한국의 기독교만 왜 이렇게
특이한 모습 - 대형 기업화, 사세확장영업전념, 이성배제, 배타성, 우월주의
- 을 하고 있을까? 왜 독단에 빠져 사회의 지탄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에 대해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와 같은 수준높은
교양서적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될 수 있겠다(오교수께선
위의 '시민연대'의 고문이기도 함). 오교수의
혜안에 미치지 못하는 나같은 평범한 수행자의 해석을 하나 더해보자면,
우리나라의 이른바
'주입식' 교육에도 그 부분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자기 힘으로, 자기
눈으로 주체적으로 세상과 삶을 보고, 헤쳐가는 능력을 우리의 교육이
제대로 길러주지 못했다는 점도 한국의 종교 신자들의 집단주의적 기복성과
우상숭배 경향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본다는 말이다.
조상신에
제사하거나 불상에 절하는 우상숭배를 그토록 극렬히 혐오하는 바로
그 개신교에게 우상숭배 혐의를 지우는 것이 이상한가? 예수상이든, 십자가든,
아니면 스타 목사든, 앞에 세워놓고 그 대상을 향하여 돈많이 벌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한, 기독교도들도 우상을 섬기고 있을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것이 성모상이든, 불상이든, 단군상이
됐든 간에.) 왜냐하면
십자가의 진리가 아니라, 스스로 믿고 싶은 마몬(물욕의 신)을 섬기고 있을 뿐이니까. 나는 우상화된 예수가 진짜 예수라 보지 않는다. 진짜
예수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살아 계실 것이다. 내 이웃 안의
예수를 보지 못하고, 내 안의 예수를 경배하지 못하는 기독교도들은
우상숭배적 기독교도에 불과하다고 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신자들도
많겠지만 - 잘 눈에 안 띄어서 그렇지.
헌데 어쩌면 우리의 교육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체적인 시각, 또는 철학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을 너무 쉽게 상실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경우가 대형교회의 '미쓤니다' 예배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 신생교단, 또는 이른바 '사이비' 교단에서도 여실히 예시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백분토론에 나온 수구파의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 하도 답답해서,
이 토론에 대해 인터넷에는 어떤 반응이 나왔나 보러 다니다가, 요사이엔 가보지 않았던 명상
계통 싸이트들을 오랜만에 찾아가
봤다. 한 곳의 존경할 만한 명상 싸이트의 게시판에를
가보니, 한동안 잘 나가던 신흥교단이 붕괴 위기에 처해있다는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그곳은 불교에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교주 한 명이 신도들에게 부처가 됐다고 '인가'를 해주는
독특한 인사고과제도로 유명한 사이비 교단으로, 그 창의적인 발상에
호기심이 일어 과거에 몇 번 홈페이지에 가서 글을 읽어보고는, 집단적
최면상태에 빠진 곳이라 여겨서 즐겨찾기에서 삭제했던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당무계한 교설을 일삼던 그 교주가 돈과 여색을 - 아니, 실은 오로지 돈과
여색만을 - 얼마나 탐했던가
하는 것이 내부 고발자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있었다. 썬데이서울(황색언론잡지)이
따로 없다. 이런
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난 예전엔 이해가 잘 안갔다. 그
교단의 게시판에 인가받은 부처님들이 올린 글들을 보면,
그 수많은 부처님들이 하나같이 아는 것도 많고 똑똑도 하던데,
불교건, 신지학이건, 노장이건 나보다 훨씬 박학다식하게
잘 아는 그 똑똑한 수행자들이 왜 저런 뻔하게 사이비성이 드러나
보이는 교주의
농간에 놀아나는지 이해가 잘 안갔다. 그것은 그들의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미혹된 그들의 심리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었다.
그러나 갈수록, 그들의 지성이라는 것 역시 치명적 오류를 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도 들게 됐다. 즉, 아는 지식은
굉장히 많은데, 그걸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눈과 귀와 온몸으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삶속에서 겪어보기도 전에 - 경험을 통해 터득하기도 전에
- 너무 쉽게 주입식으로 머리에 입력시켜 버리고는, 그걸로 결론이 났다고
믿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심리'와 '지성'이
뒤섞여 있겠지만.)
그런 '결론'에 쉽게 이르도록 도와주는
이들이 '구루'일 테지만,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정녕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정이 꼭 고행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제 힘으로 뚫고가야만
하기에 쉬울 리가 없다는 말이다. 학원 강사가 산뜻하게 정리하고 설명해준
내용이 진정한 나의 지식이 안되는 반면에, 머리 터지게 고생하며 스스로 익힌
내용은 진짜 내 지식이 돼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란 말이다.
쉽게 가르쳐주는 강사에 자신의 학습을 의존할 때, 강사는 이미 우상이
돼버린다. 자득(自得)을 종용하는 진정한 구루와 우상화된 사이비 교주는 어찌 볼 때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지만, 교주에
의탁하는 이들은 너무 쉬운 해결책, 단 한 방에 해결해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기적 같은 것을, 너무 비이성적으로 갈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갈구하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절실한
갈구가 때로는 '계시'를 주고, 때로는 우상을 안겨주는 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전자와 후자의 길을 가르는가? 깊이 묵상해봐야 할 화두다.
일전에
내게 메일을 보낸 한 분은, 내 싸이트의 글들이 너무 도덕주의적이고
지겨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고 평하며, 뭔가 시원스럽게 뚫어줄 글을
써보라는 주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이분의 평에 대해 믿거나 말거나
나는 조금도 반감을 못 느꼈으며, 다만 나는 '도덕주의'는 싫어한다는 정도로
답을 했었고, 이분과는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 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게 없다. 아무리 기도하고 명상하고, 공부하고
그래봐도, 한 방에 뭔가 시원하게 날려줄 그런 해결책 같은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 한 방은 죽으면 체험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주어진 현상의 모습을 지겹더라도 감사하며,
주어지는 모든 경험 속에 숨어있는 축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수행하며 사는 것밖에는, 내가 아는 방법이란 없다.
물론, 어떤
수행자는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큰 깨달음에 다다랐을
수도 있겠다 - 물론 나의 신비 체험도 나로선 대단히 큰 깨달음을 줬지만,
그건 '내 힘으로' 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어쨌든 간에 그렇게
깨달음을 얻는 건 그 사람 몫이고,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 내 길이
그와 같은 돈오의 길일 수도, 아니면, 오강남 교수님 책인 '예수의 기도'에
나오는 꾸준하고 신실한 구도자의 길일지, 그건 내가 결론내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세상살이 참 힘들고, 고통스럽고, 그리고 끝없이 내 발목을 잡아 주저앉히고야
마는 이 끈질긴 아상(我相)으로부터 제발 좀 해방되어 편해지고 싶어서, 많은 구도자들이
한 방에 어떤 깨달음을 줄 비법을 간구하는 것, 나도 아주 잘 이해한다.
그러나 난 그런
비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비법을 찾았다고 믿는 이들을 보고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칼 맑스가 비판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비법이 있다면야
나도 허겁지겁 주워 삼키려 들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내 마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끝없이 수행할 뿐이다. 萬行.
고담준론과 교언영색에 유혹되지 않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남들을 귀히 섬기며 살라는 예수님, 부처님의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묵묵히 실천하는 것 말고는, 난 다른 길은 모르겠다.
때론 그 길은 밝지도, 아름답지도, 즐겁지도, 편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도상에서 자위할 요량으로 글도 써보곤 한다. 그런 내 글이 지겨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난 지겹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살겠다.
우상에 미혹되는 일은 우매한
기복심리에서도, 절실한 구도심리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다. 게다가
두 가지 심리가 뒤섞여 있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제3자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닐 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