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배우의 죽음 (2008/10/2)

톱스타 최진실이 자살했다. 쇼크다. 그녀가 젊었을 땐 나도 일종의 팬이었었다. 이렇듯 덧없이 스러지는 인생 앞에 허무감이 엄습한다. 자식이 둘이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랬을까? 미스테리다. 대체 인생이란 게 무언지.... 인간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 한 가지가 죽음이다.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 너와 나가 다르지 않은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숙연해지게 되는 법. 그러나 인터넷 뉴스 페이지에는 나로선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악플'의 잔치가 벌어진 듯 하다. 기록해서 기억하고자 하는 역사가적 성향이 적지 않은 편이라, 그중 돋보이는 것들을 여기에 보관해두고자 한다:

·자살도미노..과연 다음 차레는 누구일까? 다음편이 기다려지네

·어디 가나 여자들이 문제구먼!|

·연예인들이 악성루머로 자살한다면 살아남을 연예인들 몇명이나 있겠는가 사생활 관리 잘못한것이나 죽은것도 모두 본인 책임이다 제발 네티즌들 때문에 죽었다는 소리 그만좀 하자

·굴뚝에서 기냥 연기나는 것 봤냐??? 너들 같으면 억울한데 죽겠냐???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좀 이상하긴 하다.

·전라도것들 때문에.진실이죽었다.껭겡이들아.진실이살려내라
- re: 된장발라 안주할넘,,

·촞불좀비 가수 윤도현부터 빨리 자살했으면...

·최진실이 저거....언제부터 누구를 상대로 사채놀이 했을까나.....고것이 궁금하네....

·연예기자들한테 물어봐라.....사채놀이하는 연예인들 공공연하게 있다....그 중에 최진실이가 당첨된거고.....양심은 있는지...자살까지...

·최진실이가 안재환을 상대로 바지사장을 내세워서 사채놀이를 한것이지....그래도 양심은 있는지...차마 본인이 혼자 나서서 돈갚으라는 말은 못해서 바지사장을 내세웠겠지....꼬리 9개 달린 백여우가 죽었으니...참 속이 후련하다.....

·깽갱이들이.집단자살하면.울나라.지상천국됀다....사이비교신도들은.집단자살잘하던데ㅋㅋㅋ

·아이들이 드뎌 제대로 성을 찾게되어 다행입니다. 그러길래 기집이 악랄하게 아빠 성까지 갈아치우면 지 목숨 지가 단축헌데이. 조성민씨 아이들 훌륭하게 잘 키우세요. 홧팅 !!!

·어리석은 사람들아!! 당신들의 눈에는 겉모양만이 보알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섹ㅖ에 눈이 뜬 사ㅣ람들에게는 그 이면이 보이지!! 조씨를 최씨로 바꾼 행위는 절대 용서할수 없는 대죄이다

·아버지에게 불효한 죄, 남편에게 야박하게 한 죄, 붊ㅆ망한 사람들에게 돈 한 푼 안 쓴 죄, ...인생은 뿌린대로 거두느니라

·유행이냐 열심히 사는 어려운 사람도 많은데 공인이란것들이 하는짓이 차라리 한번에 가라

·정말 좋은 엄마다. 그많은 재산 고스란히 남기고 갔네

·대한민국에 쓰레기 같은 연예인들이 자취를 감출 그날을 위하여 건배!|

·뵈기 싫은 이영자를 또 보는 구만. 자해를 하고 싶으면 집에서 아무도 몰래 해라. 왜 사람들 많은 곳에서 자해를 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쇼를 해대냐? 최진실의 죽음을 슬퍼하고 좋은 곳에 가라고 기원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최진실과의 헤어짐을 과장광고하므로써 대중들의 관심을 끌려는 얄팍한 상술로 보인다. 남의 죽음을 마지막까지 연예인적 상술로 이용하지 말랏! 이영자 꼴보기 싫다.

·선희야 그러길래 니 주제에 맞게 명수가 대쉬할때 그냥 받아주면 이런일이 안 생겼잔니~~~|

나는 이 우주에 인과응보의 이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 악플러들을 애도한다. 최진실의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진실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나는 "~카더라"라는 말은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어쩌면 최진실은 정말로 악플 때문에 정신적 생존력의 임계치를 넘겨버려서 자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 앞에 이같은 악플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몇몇 네티즌들의 경악도 참고삼아 기록해둔다:

·왜 일부 한국인은 때로 몰려들어 한 사람 헐뜯고 유언비어 퍼트리고 그 사람을 죽음의 길까지 몰아가는지... .정말 가슴 아픕니다

·자살한 사람도 무섭고 악플다는 사람들도 무섭고 다 무서운 세상 -- 원인은 모르겠지만 무슨 원인인지 밝혀져도 무섭고 우울증도 무섭고 다 무섭다 ㅠㅠ 인간들이 잘났다고 떠들어대고 잘난척하지만 속은 다 무서운 동물이다

·새겨들으세요. 한마디할테니..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요즘 성격장애정신병이 너무 많이 생겨서 옛날처럼 인정이니 측은지심이니 없습니다. 소위 양심이 없고 감정이 없는 짐승인간들이 많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니 야후 댓글에도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 짐승들이 댓글을 다는 것이죠. 사람이 죽었는데 비난하고 비웃고... 이런 인간들을 가리켜 금수 지렁이 만도 못한 .. 다시 말하면 인간이 아닌 감정이 없는 정신병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 주위에 감정이 괴팍한 정신병자가 없는지 살펴서 사귀십시요.

나는 바로 윗글을 쓴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정신병자들'이 날뛰고 있다고 보기보다는, 인터넷 판에서 싸이코패스들이 활약하고 있다고 본다. 요즘 집필하고 있는 소설에 싸이코패스를 등장시켰기 때문에 한참 싸이코패스에 대한 전문서적들을 탐독해오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의 싸이코패스 전문 연구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싸이코패스들은 동정심이 없고, 타인의 감정, 특히 아픔이나 슬픔 등을 공감하는 능력 자체가 없으며, 오직 자신의 생존과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모든 타인을 이용하고 때로는 해치기도 하는 변종 인간들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양심이 없고, 수퍼에고(초자아) 자체가 결핍된 존재들이며, 더 심하게는 이들에게 아예 '마음이 없다'거나, '영혼이 없다'는 표현을 쓰는 연구자들도 있다. 문제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자면, 이들이 전체 인구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대단히 큰 비율이다. 물론 이런 싸이코패스들 거의 대부분은 살인마로 변신하지 않고 사회 속에 숨어서 평범한 겉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거리낌 없이 타인을 해칠 '본성'을 항상 지닌 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 인터넷 댓글 문화 속에서 싸이코패스들이 암약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됐다.

싸이코패스들은 변종 인간들이고, 그들을 정상적인 인간성(즉 측은지심과 사양지심 같은 걸 가진)을 보유하도록 치유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들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들의 횡포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좀더 똑똑해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한 마디로, 나는 싸이코패스들에 대해서는 포기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밖의 측은지심이 결핍된 인간들이다. 싸이코패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싸이코패스처럼 행동하는 인간들도 아주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 악플러들이 전부 싸이코패스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므로. 그들은 측은지심을 수용하고 작동시킬 수 있는 용량, 또는 성능을 보유하고 태어난 인간들이다. 어쩌다 그들은 그 용량과 성능을, 즉 그들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그 부분들을 상실하고 만 것일까?

물론 '내 탓이오'는 언제나 옳은 답이다. 기성세대인 내가 포함된 이 사회가 그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철학자 김형효는 한국인의 '공동 업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융의 집단무의식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한국인에게는 집단무의식 차원에서 큰 상처가, 트로마(trauma)가 있다는 말이다.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기 이전에는 법이고 도덕이고 규율이고 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이다. 무의식 차원의 치유를 구하기 위해 무의식의 안정을, 의식의 침잠을, 마음의 고요를, 참자아의 발현을 이 철학자는 주문한다. 물론, 나는 이 견해에 동의한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다. 더 확실한 원인 규명과 더불어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상은 워낙에 약육강식의 살벌한 전장이었고, 언제나 악귀같은 싸이코패스와 잔혹한 모리배들은 상존했다. 기본적으로 이런 현실 인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분적인 성선설(性善說)을 견지하고, 이같은 인간 본성의 선함 - 윤리적이거나 그저 착하기만 한 그런 게 아닌, 신성(神性)에 근접한 개념으로써 - 에 대한 나의 믿음은 학문을 통한 지성적 작업의 결론이 아니라 신께서 일방적으로 내게 주신 계시에 터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의 끔찍한 악인들 대부분은 - 전부라고는 하지 않겠다 - 회개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사회에 싸이코패스 인구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동시에 회개 잠재성이 있는 비(非)싸이코패스인 악인의 인구도 꽤 될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세월이 갈수록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후자의 비율이 늘어만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것은 끝없이 들려오는 학교내 폭력, 왕따, 성폭행에 대한 소식들에 근거하고 있다. 나는 우리의 어린 세대 중 이같이 냉혹한 인성파괴 행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 중 일부는 어쩌면 싸이코패스일 테고, 따라서 그들은 '포기'한다 치지만, 충분히 인간성을 함양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악한이 돼 버린 아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비애에 젖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의 주된 원인 중에 교육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성을 키워주기는커녕 파괴해버리는 교육의 폐해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지는 모르나 엄청난 파괴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악플 따위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꽃다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끊었다. 인성이 파괴당한 이 불쌍한 '악인'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교육을 뜯어고치는 것이 그중 합리적인 대응방식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책이라도 써서 작은 목소리라도 내기 시작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책을 출판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그것도 다 신께서 나를 이끌어주시는 신비한 방식의 일부이고, 이해할 수 없는 여정의 일부이겠지만.

최진실의 명복을 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살아 숨쉬고 있을 동안 최선을 다하자. 인간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 한 가지가 죽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서 확실한 또 한 가지가 생명일 것이다. 죽음만큼이나 생명도 존귀하다. 살아 있는 동안 생명을 찬미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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