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2008/5/31)
©
Sukhoon Han
바로
이번 달 초의 수행일상에다, 내가 세상에서 부러워 하는 유일한 종류의
사람에 관해 끄적였었다. 한 달 지나서 다시 읽어봐도 그 말은 진심이다.
나는 위대한 스승 밖에는 부러워 하는 이가 없다. 그러나 내 생활이
항상 썩 만족스럽거나, 내가 뜻했던 바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즈음 같은 때에는.
무릎을 상해 등산도 못 가고 자전거도 제대로
못 타며 살게 된 것은 다소 낙담스러운 일이었다. 야심차게 탈고해서
출판사에 갖다준 원고가 한 달 넘게 그냥 묵혀지고 있는 것도 조금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2년 여 동안 딸에게 영어 청취를 가르쳐 왔건만, 얼마
전에 시작한 문법 공부를 제대로 따라와주지 않는 딸에게 실망하여 앞으로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로 한 것은 매우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계획했던 대로 수입이 불어나주지를 않아, 앞으로 내가 사설학원에
돈벌이를 나가기로 한 것은 예상치 않았던 탈선으로, 현재 내 알량한
기개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주에는 한 대학의 수장으로 계신, 내게는 은인과 같은 분께서,
당신의 대학으로 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내게 해오셨다. 그분께
다시 한 번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여
가기가 어렵다고 답해드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난 5년간 '영성과
교육'의 관계에 대한 수행과 공부에만 전념해보겠다는 구실 아래 제멋대로
책 읽고 잡글이나 써온 탓에, 학문적 업적이 전무하다. 그래서 나처럼
학위받은 사람들 다 가는 대학도 못 가고, 돈 벌이가 어려워져서 이제
학원에 지식이나 팔러 나가게 됐다.
그러나 후회 따위는 조금도
없다. 나는 싱싱하게 살아 펄떡이는 '삶을 위한 지식'을 찾아 나섰고,
진정한 '나'를 펼쳐 나가는 그 황홀한 자유에 매혹되어 그간
큰 평화와 만족을 맛볼 수 있었다. 다만 충분히 성실하지 못했어서
경제적 삶의 보장이라는 성과를 손에 쥐지 못했을 뿐이다. 불성실을
반성은 하지만, 그 길로 나섰던 것을 이제와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Because, "I did it my way."
앞으로
일할 학원에 가서 바쁘게 일에 열중하고 있는 강사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처자식 먹이고 입히기 위해, 자기 자신은 제쳐두고
고된 일을 감내하는 모든 '가장'들은 존경받을 만 하다. 그네들을 존경하는
자세로 나는 성실하게 돈을 벌 것이다. 돈을 벌고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나의 소명의 길을 갈 것이다. 그때에는 이전보다 훨씬 철이 들고,
겸허하고, 이해심도 넓어져서, 돈벌이라는 유위(有爲)를 초월한 진정한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교육자로서, 수행자로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지금의 '탈선'도 매우 귀한 수행의 여정임을 모르지 않지만.
세상에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달란트를 깨달아 평생 자신의 최상을 펼치며 세상에
공헌하는 삶을 사는 복받은 사람들이 극소수 존재한다. 나는 그런 극소수에
속하지 못한다. 어쩌면 너무 늦게, 중년이 다돼서 소명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처럼 평범한 인물이라도, 늦게라도 그 소명을
알아차려 그 길로 용감히 나아가는 편이 그러지 않는 편에 비해 훨씬
훌륭한 선택이라는 것을 내 삶을 통해 입증하고 싶다. 이것은 단순한
에고의 욕심이 아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잘 살고, 내 가족들이 잘 살고,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많은 봉사를 하는 모습을 적어도 나를 선생으로
여겨준 수많은 학생들에게 입증하고 싶다.
헌데 당분간은 그
입증의 시기를 조금 미뤄야 하게 됐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고
있는 내 여동생네 집에 딸들을 데리고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일단은 그
여비를 벌어야만 한다. 돈 벌 수 있게 해주심에 신께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