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2008/11/4)
©
Suk Hoon Han
생계를
위해 번역 일하며 왕래한 거래처들 중에서 돈 문제로 나와
마찰이 생긴 곳이 있었다. 당시에 내 사정이 궁핍했었는데, 노임을 체불
당하여 신경이 곤두서 있던 탓에 체불의 책임자가 아닌 거래처
직원에게 날선 항의를 제기했다. 그런데 아마도 유순한 성격의
소유자였을 그는 그 자리에선 제대로 내게 대꾸하지 못하고 물러갔지만
이후에 반감을 품어, '뒷구멍으로' 내게 손해를 끼칠 '장난'을
쳤다. 결과적으로 나는 악착같이 돈을 받아냈지만, 그 거래처와
나와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회생활 하다보면 그쪽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생겼다. 그럴 때면 그들과 나는 서로 면전에서
웃는 표정으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지나치기는 하지만, 나의 미소 띈
입 속에서는 '남의 돈이나 떼먹는 놈들'이라는 말이 맴돈다. 또,
그들 마음속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도 마치 그들의 미소
짓는 얼굴 뒤에는 나에 대해 '지독하게 제 돈 챙기는 놈'이라는 적개심이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단정지어버린다. 한마디로, 마주치면 기분이 찝찝해지는
상대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마치 하이에나들의 조우와 같다.
아니, 그쪽은 그렇지 않은데 나 혼자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그렇게
단정지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후회스럽다. 더 현명하게 대응할 방법은
없었을까? ..... 아마 있었겠지만, 그리 할 역량이 내게는 없었다.
이와는
판이한 관계를 맺게 된 한 단체가 있다. 나는 이 단체의 사무실에
간혹 들러야 할 일이 있는데, 한 번은 사정이 매우 딱한 그곳 직원
이야기를 듣고, 얼마 안되지만 일종의 성금을 익명으로 건넨 적이 있었다.
헌데 당시에 성금을 접수한 직원이 금전 제공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해야
한다 하여 별 생각없이 내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는 내
이름을 적은 그 직원과 이상하게도 자주 마주치게 됐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전과 달리 나를 대단히 정중하면서도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아마 자신의 직장 동료에게 성금을 전한 일 때문에 그런가보다 짐작했다.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서, 지난 오륙 년간, 성금을 접수한 그 직원과
더불어 그 단체의 여러 다른 직원들과 마주치거나 소소한 일로
왕래할 때마다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외적으로 정중하면서도
친근하다고 느껴왔다. 어쩌면 그 접수 직원이 내가 성금을 냈다는 소문을
동료들에게 퍼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그랬는지
확인한 바는 없지만, 어찌 됐든 간에 나는 그 단체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호감어린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어쩌면
그 직원들이 나에 대해 호감을 품고 있다고 그저 나 혼자 공상하고 있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그들 마음속에 들어가보지도 않고서 어떻게 그들의
미소 뒤에 나에 대한 호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들의 미소를 호감의 미소로 믿고,
그래서 나 또한 정감어린 미소로 화답하게 되고, 그래서 내 기분은 좋아진다.
그들과의
조우는 앞서 말한 거래처와의 조우와는 딴판이다. 내가 착한 일을
해서 복을 받았다는 초딩 수준의 주장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현재의
내 삶의 질은, 그것이 좋건 나쁘건 간에 내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 작은 관찰을 적어두고자 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