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책임 (2008/10/7)
©
Suk Hoon Han
때때로
전 학기에 가르쳤던 학생과 캠퍼스에서 마주치거나, 아니면 이메일을
통해서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선생님 강의를 듣고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학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교직과정
담당
선생으로서 나는 어떤 기분이 들어야 할까? 뿌듯한 보람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웬걸, 나는 나의 학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덜컥 겁이
난다. 속으로 이런 탄식마저 흘러나온다: 'Oh, my God, what have I
done to him!' '대체 내가 쟤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도대체
어떻게 내가 젊은 그들의 순수한 영혼에 모종의 영향을 끼치고야
만 것일까 두려움이 앞선다. 나는 지나치게 겁쟁이일까? 세상에는 노골적으로,
고의로 '의식화'와 '교화(교리 주입)'를 감행할 정도로 자신의
신념에 대해 자신감이 차고 넘치는 '선생'들도 적지 않건만, 그에
비해 나는 너무 자신감이 결여된 겁쟁이 선생에 불과한 것일까? 이념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또 지성 너머의 믿음 또는 영성의 차원에서도 어느 쪽으로
치우침 없이 가능하면 내 고집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교과 내용을 전달하려 노력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이상
내 '지향성'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겁쟁이인 나는 내가 그런 영향의 원천, 또는 적극적 매개체 역할을 하며
살아왔음에 대해 두려움이 앞선다.
나의 두려움은 내 믿음과
내 인식에 대해 자신감이 덜하기 때문은 아니다. 영적 차원에 대한 내
믿음과 인식은 근본주의적 광신자들 못지 않게 딴딴하다. (짐작컨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직도 해탈과는 거리가 먼 어리석은 중생에
불과할 테고.) 하지만 내가 백퍼센트 이상 믿는 가치라 하여 그것을
타인에게 권할 뻔뻔함은 미처 지니고 있지 못하다. (나는 애초에 지도자가
될 소양은 전무한 인간인가 보다.) 나는 내 어린 학생들이 내 영향으로
인해
어떤 지향성을 획득하게 될 때, 또는 그들 내면의 어떤 지향성을 드러내게
될 때, 그로 인해 그들이 겪게 될 고난과 역경의 길이 지레 두려워 진다.
물론 고난과 역경은 인간 삶의 불가피한 성분이어서, 그것들을 회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 학생들이 고난과
역경의 길로 한 발자국 내딛는다는 것이 두렵다. 그들은 필히 시험받을
것이고, 배신당할 것이고, 그리고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진실한 선생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과정을 필연코 수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학생들의
참된 자기를 밝혀주는 데서 큰 보람을 맛본다고 한다. 과연
나는 교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그 자그마한 보람을 하나의 보상으로 여겨서 그
길로 나아가라고 말해줄 수 있겠는가? 참된 선생이 겪을 역경에 비해서
그 보람은 너무 보잘 것 없지 않은가? 실은 그런 보람에 대한 기대감마저도
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선생질 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자위할 건덕지는
하나 있다. 한 학생이 교사가 되기로 결심해서 실제로 교사가 됐을
경우, 그래서 그 길을 수십 년 걸어갔을 경우, 아무리 천로역정의 과정을
겪더라도 그는 여전히 먹고 살만큼 월급을 받고, 연금도 확보하고, 안정된
신분을 누리며 큰 경제적 곤궁함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때 그 인간 말 듣고 선생이 된 것'에 대해 심하게 억울해하지는 않을
것이리라 추측해본다. 교직이 안정된 직장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어부인
제자에게 생업을 팽개치고 자신을 쫓아오라고 명했던 예수님은 얼마나
뻔뻔한 '선생'이었을까? 그렇게 쫓아온 사도의 앞날에 현실적 영광은
눈에 씻어도 없고, 역경과 박해와 끔찍한 순교의 길만이 예약돼있었던
것을.
학생이 이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존재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선생의 책무, 그것이 예수님이 사도들에 대해서 가졌던
책임감이었을 게다. 물론 예수님은 자신의 선생으로서의 책무를 뻔뻔하게
완수하였기에 이천 년이 지나서도 우러름의 대상이다. 선생의 책무
그 자체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나는 참으로 한심한 선생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의 완벽함에 처절히 대조되는 나의 두려움을, 그러나
인간적이지 않느냐고 구차하게 항변해보겠다.
두렵고, 겁은 나지만,
그래도 나는 자신의 선생으로서의 적성을 발견한 젊은이들에게 선생의
길이라는 가시밭길로 용감히 나아가라고 권할 것이다. 세상에 진실로
가치있는 일들 치고 가시밭길 아닌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 번 태어나서
진실로 가치있는 일 한 번 제대로 안해보고 가는 건 또 얼마나 억울한
일생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