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 그들의 믿음 (2008/9/18)
©
Sukhoon Han
나는
약 십년 전에 '신앙인'이 됐고,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때
내가 신앙인이 된 것은 - 물론 기성 종교들이 규정하는 신앙과는
큰 거리가 있지만 - 나흘 간의 초월 체험 때문이었다. 그 체험 덕분에
나는 세상에 뵈는 게 없는 무대뽀 광신도가 돼서 귀국 후에도 내
마음대로 살며 세상의 길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그 결과 지금은 이렇게
사회경제적으로 찌그러져서 가족 부양하느라 허덕이면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초심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기이한 인간이 돼버렸다 하겠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 아무튼 십년 전 귀국했을 때, 나는 어떤
한 사람에게 나의 초월 체험에 관해 꼭 얘기를 해주고 싶었었다. 그는
세상이 인정하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기에, 비록 나는 크리스찬이
아니어도 그가 '신'과의 만남을 잘 이해해줄 것으로 믿었었다. 어떤
가치있는 코멘트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나의 신비 체험에
대한 진지한 고백을 다 듣고 난 그의 반응에 나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나의 체험을 부정한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종교와는 거리가 먼 여러 주변 친지들도 내 체험담을 듣고 충격을 받았었건만,
그토록 신실한 종교인인 그가 내 체험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반응에 의거하면 논리적으로 나는 다음의
둘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미쳤거나.
나는 아무 말 않고 그를 떠났으며, 그 이후로도 그와는 신앙에 대해
한 마디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가 왜 내 인생을
뒤바꿔 버린 엄청난 체험 그 자체를 부정했는지, 나로선 잘 알
수도 없고 또 알려는 생각도 없다. 단, 그의 종교적 태도를 나의 그것에
비추어 볼 때, 그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예를 들어 이번 주 '책의 지혜'에 올린 정용섭
목사의 비평에서
지적된 몇몇 목사들의 경우와 같이, 그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굉장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늘 미소짓고 친절한 크리스찬인
그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육두문자 수준에 이르는 지독한 욕을 퍼붓는
것을 목격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신의 공평한 숨결을 쐬어 생명을
받은 엄연한 영적인 존재이자 나와 똑같은 종(種), 인간인 동성애자들에게
편견에 가득 찬 저주를 퍼붓는 개신교도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과연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들의 신앙이 잘못됐다고 판정하게 된다.
허나
그것은 그들의 경우에도 똑같을 것이다. 그들도 나의 신앙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굳게 믿을 것임에 틀림없다. 기독교 교리도 받아들이지 않고,
제멋대로 혼자서 신을 만났었다고 뻥이나 치고, 사회에 대해서는 왼쪽으로
기운 삐딱한 시각이나 갖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라며 동성애자들 편이나
드는 나같은 인간의 신앙은 그들 눈에는 완전히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이 자신의 도그마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체험과 그 체험에 터한 신앙과
그 신앙에 의거한 결론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을. 양자가 각각 자신의
케이스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이상, 양자 사이에 타협은 있을
수 없다. 둘중의 하나가 옳고, 다른 하나는 그를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옳고 그들이 그르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들이 옳고 내가 그르다고 믿는다.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도대체 누가 신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
건가?
이런 의문은 원시 기독교의 성장에 관한 책들을 읽을 때나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관한 역사책을 읽을 때에도 곧잘 일어난다.
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는 각각의 종파들 중에 과연
누가 옳고, 누가 신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종파적이거나 당파적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신앙에
대한 답' 따위는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인가? 내가 동성애에
대한 내 입장이 신의 사랑의 반영이라고 주장하겠듯이, '그들'도 그들의
동성애에 대한 처단 의지가 신의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겠는가. 둘은
언제나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쩌면, 천상의
신적인 인식의 경지에서 내려다볼 때에는 둘다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나 하고 있을 뿐일까? 내 입장을 한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고,
내가 만난 신에 대한 움직이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는 나이기는 하지만,
나도 '그들'도 다 쓸데없는 시시비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믿는 바대로 나의
길을 갈 도리밖에 없다.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며 분리지향적인 '그들'이
확실히 그른 반면에 나의 믿음이 확실히 옳다는 원래의 의견을 꼭 움켜쥔
채. 그리고 아마도 나는 장기적으로 '그들'의 계몽을 꾀할 것이다.
결국 논의는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 나는 나고, 그들은 그들일
뿐이다. 혹, 양자 간에 변증법적 상호작용은 가능할까? 그들 +
나 = '새로운 그 누군가'로 말이다.
다 부질없는 추상적 잡소리일
뿐이다. 답이 안나오니 별 수 없이 '구체적 사랑' 쪽으로나 되돌아가야겠다.
딸들한테 뽀뽀해주고, 학생들 위한 수업자료 만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