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2009/1/19)
 

© Suk Hoon Han                                                                                                                                                                                   
 
 

1.

호주 수도 캔버라의 국립미술관 기념품점에서 남양군도 원주민의 수공예품에 내 시선이 멈췄다. 여성 신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천수관음의 분위기를 은근히 닮은 그 물건을 본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외마디는 '아니마'였다. 2년 여 동안 융을 읽으며 꾸준히 염두에 담아온 내 내면의 여성성이자, 내 내면의 신성의 안내자, 아니마. 심리적 현상인 그 아니마가 마치 물체로 결정화돼있는 것과도 같은 그 원시 조형물을, 나는 소유하고 싶어졌다.

나는 대체 왜 아니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도 아니마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줄 것을 기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 그런 기원 같은 건 필요하지도, 적합하지도 않다고 의식적으로 믿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아니마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달라고 기원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아니마가 신성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해줄지 어쩔지, 내 마음속에 불확실성이 숨어있기 때문인가 보다. 즉, 내 안의 여성성과의 화해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신과의 의사소통에 대한 나의 자신감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왜 내 마음은 불확실성을 품고 있고, 자신감은 결여돼있는 것일까?

나는 불충한 종인가?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매일 아침, 신에 대한 순종을 고백하며 하루를 시작해온지 십년에 이렀거늘. 허나, 나의 신을 향한 충심에 대한 의식적인 자만이 무색하게도, 우상을 구하는 행위는 나라는 숭배자의 확실성의 결여를 보여준다. 숭배자의 믿음의 약함을 보여준다. 우상은 신에 대한 충절의 상징이 아니라, 그 반대의 증거다. 자신의 일상을 벗어난 초일상-초자연적인 어떤 물체를 시각적으로 접해야 '믿음'이 동한다면, 그런 믿음은 환각의 옹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또 하루는, 멜버른 근교의 기념품 상가에서 온 식구가 상점 구경에 여념이 없을 때, 엥간해선 쇼핑에 흥미가 일지 않는 나는 혼자 배회하다가 'Oracle'(신탁)이라는 이름의 상점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일단 상호가 내 흥미를 돋웠다. 실로, 그 가게에서는 전 세계의 온갖 다양한 종교의 상징물들을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쇼윈도우에서 그리스 신들과 기독교 신상 뿐만 아니라 동양적 신성의 상징물을 발견한 나는 주저없이 그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번 호주 여행 동안에 하나의 기념품을, 신성의 상징물 하나를 물질적으로 찾고 있었다는 것을.

수많은 전세계 신성의 상징물들을 한참 동안 돌아본 나는 머리를 저으며 그 상점을 나와버렸다. '이건 '샐러드 바'다. 이 수많은 잡신들 중의 하나를 내가 고르는 거다. 이것들 중의 특정한 한 상징물을 '내가,' '내' 취향에 따라 고르는 것과, 나의 보편적 신성에 대한 헌신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인가?'

그러한 쇼핑은 종교학적이거나 인류학적 취향을 만족시켜줄지는 모르나, 영적인 모색에 도움을 줄 바는 없을 듯 했다. 내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종교적 다원주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교의 이미지들이 그야말로 다원주의적으로 전시돼있는 그 '오라클' 속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신성을 물질로 결정화하여 소유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저능한 욕구를 감지했다.

질문: 나는 이번 호주 여행 동안에 어떤 기념품을 궁극적으로 구하기를 원하는가?

융이 지난 세기 전반에 행했던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여행에 비할 때, 나의 여행은 영적인 탐구의 전반적인 결핍을 증거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으며, 무엇을 느꼈는가?


2.

기독교 신도들은 말한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다는 고백이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자신이 크리스찬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겠다.

십 년 전에 내게 오셨던 그분은, 신은, 분명히 기독교적 매개체를 활용하도록 나를 유도하셨던 것 같은데, 그렇다 해서 자신이 예수라고 내게 가르쳐주었다든가 한 일은 없었다 - 내가 그 가능성에 관해서 추측만 했을 뿐. 나는 그가 신이고, 절대자이고, 완전한 사랑임을 굳게 믿지만, 아니 그때 그렇게 '느꼈지만,' 그렇다 해서 그의 '이름'이 '예수'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 아무런 믿음도 없었을 때, 못 믿는 신을 믿는다고 할 도리는 도저히 없었던 것처럼. 그럼에도 나는 기독교 경전을 매개로 그분과 소통했고, 또 그 후에도 기독교도들과 접신의 체험에 관해 소통했으며, 일정 기간 기독교적 종교문화에 소속됐고, '바오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기에, 나는 그분이 예수님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What's in a name? 이름이 뭐가 됐든 무슨 문제인가?

이것이 옳은 대응일까?


3.

캔버라 미술관 기념품점의 '아니마' 상을 나는 사지 않았다. 부피와 가격 등이 부담스러워서였다. 내심 사고는 싶었으나, 그리하지 않았다. 그대신 둘째 딸 나나와 함께 공유하기로 약속하고는, 다른 미술관의 기념품 가게에서 특이한 암석 한 셋트를 샀다. '아니마' 상과 비할 때, 대단히 자연과학 지향적인 기념품이었다.

그리고는 귀국을 며칠 앞둔 휴일 오후, 인파로 북적이는 멜버른의 해변에 나갔다가 호주 달러 수백 불이 들어 있는 지갑을 도둑맞았다. 무일푼이 된 나는 결국 그 어떤 신상(神像)도 사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긁거나 동생 돈을 빌릴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더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이 우상을 탐내지 말라는 신의 메시지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아전인수격 억지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간에, 그 '오라클'에 들렀던 둘째 딸이 아빠 것으로 한 개 집어왔다며 '메시지'가 담긴 쪽지 하나를 건네줬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매우 귀에 익은 경구가 씌어 있었다:

'There is a gift to be found in every experience. It is the experience that makes the moment, not the moment that makes the experience. [모든 경험에는 발견해야 할 선물이 담겨 있다. 한 순간을 만드는 것은 그 경험이고, 그 순간이 경험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간에 나는 수십 만원을 날려버린 순간에 우상에 대한 소유욕을 씻어내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에 어떤 선물이 담겨 있는지는 영적인 혜안으로 살필 일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번의 긴 여정을 통해서 우상 하나를 손에 넣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우상을 찾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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