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죽음 (2009/5/24) ▶◀
 

© Suk Hoon Han                                                                                                                                                                              
 
 

나이를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죽음의 소식인 것 같다. 특히 자살은 언제나 충격으로 다가온다. 최근들어 사회적 파장이 큰, 충격적 자살이 잦다. 최진실이 그러했고, 장자연이 그러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러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삼십 년 전 고등학생 시절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됐다. 그 당시 '박대통령 유고'라는 커다란 헤드라인이 찍힌 호외를 충격으로 받아들었던 일이 생생히 기억난다. 좋건 나쁘건, 국가 지도자의 갑작스런 죽음이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그제는 개인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날이었다. 오후에는 수십억대 사업이 망해버려 실의에 빠진 옛 제자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위로를 해줬고, 밤에는 35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와 회포를 푸느라 과음을 해버렸다. 평소와 달리 처자식들이 아침에 다 외출하고 난 토요일 아침, 혼자 일어나 해장 라면을 끓여 먹으며 무심코 켠 텔레비전에 떠있는 '노 전 대통령 사망'이라는 자막을 보고, 노태우씨가 마침내 갔는 줄 알았다.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임을 알았을 때 정말로 놀랐다. 전에 최진실 자살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보다도 더. 삼십 년 뒤, 내가 80을 바라보게 될 때에도 어제의 충격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는 온 국민이 충격 속에 보낸 하루가 아니었을까 싶다. 보수건 진보건, 우익이건 좌익이건, 그의 지지자이건 그의 공격자이건 간에. 떠나간 이의 말씀마따나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지 않겠는가. 나는 노사모도 아니고,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주었고 그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했었다. 그때 이 싸이트 표지에 올려뒀던 짧은 메모가 남아있어 그것으로써 당시를 회고해본다:

2002/12/22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19일의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보고는 참 기뻤습니다. 우리 나라는 정말 재미있는 곳입니다. 산속으로 자꾸 기어들어가는 저같은 은자(隱者)도 꼬드겨서 함께 놀자고 하니까요. 19일 밤에 새 대통령 되실 분을 텔레비젼에서 보고, 그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저같은 인간의 기도마저도 필요할 만큼 큰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지고 있는 분인 것 같아서요. 저같은 정치 무관심자 조차도 한 표를 던져준 분이니 만큼.


인생무상이라.... 7년 전에 거리에서 대선 승리 연설을 하던 당시에, 이처럼 비참한 미래를 일말이라도 예측했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에 엄청나게 많은 욕을 먹었다. 나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 지지자라고 여겼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그의 중도적 정책들에 대체로 찬성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욕했던 기억이 없다. 내심 그를 좋아했었는가 보다. 그것을 이제야 알겠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이길 수 없는가? 바로 그의 적들의 룰에 따라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적들의 룰은 무엇인가? 바로, 돈과 부패와 광기의 권력.

기득권층이 어쩌다 빼앗긴 자신들의 손실 분을 회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는 세계의 역사에 차고 넘친다. 있는 놈들이 더 무섭다는 말은 매우 타당하다. 나 자신이 기득권층에 가까운 사회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살아온 인간이어서 이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수구 세력의 보복으로 중병을 앓을 것이다. 아니, 이미 앓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의 황당한 역주행을 선보이고 있는 MB 정권의 오만에 기가 막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날벼락처럼 맞게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네이버 조문 페이지에 가서 추도의 글 한 줄 올리고 보니, 방금 올린 내 글을 찾을 수가 없다. 1초에 추도문이 50편 씩은 올라오는 것 같다. 수많은 이들이 애통해 하고 있구나...

이제 어디에서 이 땅을 위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황망해 하고 있다가, 휴일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은 딸내미를 바라본다. 저 아이들 때문에 희망을 찾아야만 한다.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바보 노무현 대통령님!

한국의 정치인으로서 가져서는 안될 양심과 사랑을 가진 분이셨고, 그 때문에 이런 결말을 택하시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아무도 원망 말라하신 유지를 받들겠습니다마는, 님께서 힘들게 피워올리셨던 이 땅의 희망의 불꽃 또한 후대에 전하겠습니다.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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