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너머

욕망 너머에 (2010/10/18)

지난 주 수행일상 말미에 이렇게 써놨다:

'보다 높은 나, 욕심 위의 나, 어둠을 끌어 안은 나에 대한 상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했으니 그럼 어디 그 상상을 한 번 해볼까? '욕심 위의 나'는 물욕을 뛰어넘은 나겠다. 글세... 내게 물욕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기 위한 욕심은 있으나, 그것은 물욕 그 자체라기보다는 '가장'의 책임감의 표출이다. 또한 나 자신을 위한 물욕은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내 수중의 모든 것이 낡아빠진 것들이다. 5년 된 안경, 15년 된 썬글라스, 10년 된 구두, 20년 된 코트... 등등.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탐이 나지 않는다. 낡은 집도, 중년에 이른 차도 있는 그대로 다 좋다. 탐이 나는 물건이 있다면 내가 일하는 효율성과 관련된 컴퓨터 정도다―아, 아이패드는 조금 탐이 난다. 이즈음엔 책 욕심도 사라졌다. 자, 그럼 물욕은 뛰어넘은 걸까? 글세... 함부로 호언장담하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애욕은 어떨까? 이건 아직 자신이 없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이 세상 누구로부터도 애정을 기대하거나 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글로 끄적거렸으나, 딸내미가 나를 끌어안고 내 볼에 입맞추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사랑받는다는 건, 참 좋은 것이로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워낙에 내가 상상해온 "욕심 위의 나"의 경지는 작고한 성철 종정이 딸을 내쳤던 예와 같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정도를 귀감으로 삼았었으나, 글세.....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 편이 나은 것일까?

내 상상력의 한계에 이르는 그같은 고승의 경지는 인간적으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으니, 그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실용적인 경지를 한 번 상상해보기로 한다. "보다 높은 나, 욕심 위의 나, 어둠을 끌어 안은 나"를 현실 수준에 맞춰서 상상해보기로 한다. 그런 나는 나의 외면에서 그 어떤 위안과 치유와 평화의 근원도 찾지 않는 나일 것이다. 그런 나는 모든 위안과 치유와 평화의 근원을 오로지 나의 내면에서 찾는 나일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그래서 스스로 평화로울 수 있는 자는 타인의 애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우리 모두는 실은 이미 다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자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한 가지 길은 '내면의 화해'다.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과 화해에 이르러야 자신을 위안과 치유와 평화의 원천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리 돼야 타자의 애정에 의지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 화해에는 여러 가지의 수행 방법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현실 적용성이 높은 방법은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다. 과거와의 화해는 크게 3단계로 나눠서 진행시킬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의 최근의 과거사와의 화해다. 이게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최근의 몇 년간 자신이 저지른―또는 당한― 부정적인 행각들을 재조명하고, 다시 이해하고, 그래서 그 속박을 풀어주고, 궁극적으로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 부정적인 자신의 모습에 미소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이루어질 때 신세타령이나 넋두리를 받아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둘째는 자신의 먼 과거와의 화해로, 주로 아동기나 사춘기, 청소년기의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첫째보다 더 어려운 게 이 둘째 단계다. 소년, 소녀였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해주는 작업을 감행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고, 또 그리 하는 이들 중에서 성공하는 이도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이 단계를 적어도 5년 이상 '쎄게' 겪었고, 그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그 단계의 잔여 과업을 수행하곤 한다. 이 단계의 화해를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자꾸 과거로의 퇴행 여행을 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의 영혼이 4차원 이상의 실존을 깨닫는다면 언제나 시간의 축―또는 평면?― 위에서의 이동이 가능할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는 지금 이 순간 과거로 퇴행하여 지금 이 순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가 3차원에 머물고 있으므로 그런 수정 작업은 대개 상상으로써나 가능하겠다. 그래서 상상으로 자신의 아동기로 되돌아가 이를테면 그 때 입은 상처를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과거의 또 하나의 속박을 떨쳐버리고 나면,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외로움을 어루만져줄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셋째는 자신의 기억해낼 수 없는 과거와의 화해다. 즉, 유아기, 두서너 살 때의 자신과의 화해다. 이건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운 화해 과업일 것 같다. 의식적으로 어찌 해볼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최고의 심리 분석가와 장기간 퇴행 최면 요법이라든가 꿈 분석 등을 지속할 때 조금씩이나마 이해와 화해의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이렇듯 지극히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 번째 단계의 화해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무지막지하게 신께 기도하고, 청하고, 가르쳐 달라고 조를 뿐이지만, 포기하지는 않는다. 덧붙여 유아 이전의 전생에로까지 퇴행하는 케이스들도 있다 하나, 알 수 없는, 또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이는 패쓰.

자신의 과거와 화해함으로써 우리는 온전한 자기의 복원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 내가 더욱 더 온전함을 복원시킬수록 '나'는 믿을 만 하고 의지할 만 한 '자기'가 돼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타자의 애정은 필요치 않게 된다. 다만 나의 사랑을 타인들에게 줄 뿐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자유의 경지일 것이다. 나는 그 경지를 꿈꾼다. 매일, 매일.

드림즈 컴 트루. Right?

꿈만 꾸다가 끝나지 않는다면,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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