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2

늑대(2) (2010/7/26)

최근에 매스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집권 여당 국회의원의 여성 비하 및 성희롱 발언은 표면상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는 이 젊은 남성 의원의 발언이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렇게 현실을 잘 알려주는 발언을 한 남성 의원을 왜 이 사회는 질타하는가? 어차피 다들 예쁜 여자를 좋아해왔으면서, 모든 여성을 외모라는 잣대로만 재단해왔으면서, 새삼스레 웬 위선인가? 우리 사회가 언제 정치 지도자에게서 우리를 우리 이상(以上)으로 이끌어줄 고귀함을 기대했던 적이라도 있었던가? 정치가들이란 본래 우리 사회 속에서도 참된 자기실현의 지향성이 가장 낮은 수준의 집단 아니었던가?

그건 그렇긴 한데, 비록 이번 '국회의원 여대생 성희롱 파문'으로 인해 상처입은 여성도 꽤 있겠으나, 나는 이 사건이 한국의 성인을 위한 가치있는 교육적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는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갖고 있다. 일단 최소한, 한국의 성인 남성들로서는 평소에 자신들이 견지해온 여성관이 내적으로 모순됐다는 점을 자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컨대, 맞선 보고 돌아온 친구에게 상대 여성에 대한 감상을 물었을 때 "성격은 좋더라"는 답이 나오면 '아, 안 예뻤구나, 그러므로 황이구나' 라고 결론내린다든지, 텔레비전 쇼 프로에 평범한 외모의 여자 가수가 나오면 "쟨 노래가 되는 앤가 보다"라고 평을 하는 등, 평소에는 습관적으로 여성을 외모라는 기준으로써만 평가해온 나같은 천박한 남성들이 느닷없이 지들의 여성관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해준, 지들과 똑같이 천박한 정치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양상을 보고 있노라면, 나같은 한심한 이 땅의 남성들이 '실제로 이러하다'는 '묘사'와 '그러나 이러해야만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은 예쁘고 봐야 된다'라는 현실 묘사와 '여성을 외모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당위 사이의 갈등 말이다.

나이 먹고 뻔뻔해진 나는, 그러나 갈등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련다: "갈등할 거 없다. 원래 그런 거다. 우리가 예쁜 여자 밝히는 건 조물주가 우리를 그렇게 프로그래밍했기 때문이다―건강한 유전자를 지닌 2세 생산의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생물학적 정보 수집 차원에서 남성이 본능적으로 여성 외양의 조화성(美)에 집착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단, 우리가 평생 생물학적 수준에만 머물러 있을 때 스스로를 천박하게 여기도록 문화화된 존재라고 보는 것도 타당하다면―즉, 남자도 동물 수준을 뛰어넘는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시각(視覺)이라는 대단히 강력하면서도 중요하지만 부분적일 수밖에 없는 센서의 탐지 영역을 뛰어넘어서, 즉 생물학적 수준을 뛰어넘어서, 예컨대 내 앞의 구체적인 한 여성의 '정신적' 영역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게 수집함이 옳지 않겠는가."

요컨대, 한 여성과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눠보지 않고 그저 그녀의 얼굴만 바라봐가지고는 그 여성의 온전한 가치를 알 수가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남자가 여자 외모를 밝히는 건 자연이라고 하자. 남자가 여자의 외모만 밝히는 건 미성숙이자 미발달이다. 미성숙하고 미발달된 남성이 여성과 성숙하고도 건강한 관계를 이루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남성은 관계에서 매번 실패한다.

아래의 그림은 나의 둘째 딸이 그린 것이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사랑스러운 동물의 꿈을 통해 자신의 꿈에 대한 느낌을 표현해본 하나의 예이다. 소년이 그러하듯이, 세상의 소녀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소중한 꿈을 가꾸며 성장하여 여인이 된다. 이런 느낌과 이런 꿈을 품고 자라나는 세상의 여성들을 오로지 외모라는 기준만으로 재단하여 인식하는 남자의 삶의 정신적 궁핍함이 안쓰럽다. 그의 내면은 얼마나 황량할까? 그런 내면으로써 여성에게 다가가서 여성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마 이권의 '거래'와 쎅스가 전부 아닐까? (이런 글을 쓰고 있노라면, 꼭 이렇게 되물을 남정네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는데?" ... OTL) 여성의 꿈을 읽고, 그것을 꽃 피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남성은 여성과 온전히 교류를 할 수 있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마찬가지로 여성은 남성의 꿈을 읽을 수 있어야겠고. 여성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없다면 내 삶은 불행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늘 상호작용하는 주변 사람들의 과반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교육적 기회'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건을 언급해보자. 이번 성희롱 사태에 대한 인터넷 기사에 수많은 네티즌들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것들 중의 일부는 해당 국회의원을 마광수 교수와 동일시하여 비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분개한 나, 문제의 국회의원과 마광수 교수는 질적인 차원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개진하고자 한다.

먼저 이 국회의원은 타인들을 빌어서 자신의 흑심을 표현했고, 이는 남자답지 못한 비겁한 행위다. 왜, 자기 자신이 여자를 그렇게 본다고 당당하게 선언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국회토론대회의 심사위원들과 방송국 남자 간부들과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죄다 늑대로 만들어버리는가? 이에 비해 마광수 교수는 이같이 비열한 방식으로 타인들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흑심을 품은 늑대임을―독특한 방식으로 세분화된 흑심을 품은 허약한 늑대임을― 당당하게 선언했을 따름이다. 또한 이 의원은 천박한 발언을 통해 여성을 희롱했고, 나아가 여성의 인격을 비하했다. 마광수가 한 일이 무언가? 자기 자신을 희롱하고, 자신을 비하했을 뿐이다. 나아가 그는 여성을 비하하기는커녕 여성과 여성성(∋ sexuality)을 숭배하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어떻게 두 인물이 같은 평가 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단 말인가. 이 국회의원은 성희롱자이고, 마광수는 성찬양자이다.

교육적 기회의 가장 깊은 측면은 이 모든 소동의 진원지인 국회의원 자신에게서 포착될 수 있겠다. 탐미주의자인 마광수 교수의 여성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진한 것과는 다르게, 이 의원은 깊은 무의식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불신과 증오심을 품고 있고, 이것이 그를 상습 성희롱자로 만들었을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그는 불굴의 의지와 타고난 지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룬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부친은 교도소에 수감됐고, 경제적으로 최저 수준인 불우한 가정 출신이었으나, 방송국 퀴즈대회의 장학금으로 서울대에 진학하여 학부 때 사법고시를 패스한 수재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선 자수성가형 수재들 중에 유년기와 아동기를 희생시켜야 했던 억압의 대가를 중년 이후에 치러야 하는 불행한 이들의 경우를 여러 번 목격한 바 있다. 지나치고도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끈질기게 여성을 외모로만 심판해온 그의 전력을 보건대, 이 의원은 잠재의식 속에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지니고 있으며, 그 원천은 아마도 가정 환경과 모친과의 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언행은 이해가 간다. 그는 그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 해야만 했던 것이고, 그것이 사회적 파멸을 가져다준다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억압된 무의식적 그림자의 위력은 필연코 한 인간의 중년기에 고개를 든다. 그래서 삼십 세 중반을 넘기는 성인은 반드시 내면을 돌아보는 수행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안됐지만 이 국회의원은 이 사회의 성인들을 위한 반면 교사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그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재기하기를 바라지만, 심각한 수행이나 전문적인 심리치료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내면의 흑심이, 마음속의 어두운 늑대가 자신 존재의 전부인 것으로 간주하고 살아왔을 그의 삶이 불쌍하다. 우리 안에서 어둡고 악한 늑대가 주도권을 장악할 때, 우리는 그 늑대의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그리하여 그 늑대가 보고자 하는 현실만을 보게 된다. 그 현실 속에서 남성인 자기 자신은 언제나 헐떡이는 개처럼 예쁜 여자만 쫓아 다니는 미발달된(incomplete) 인간일 뿐이고, 그래서 다른 모든 남자들도 그러할 뿐이고, 따라서 세상의 모든 여자들도 그런 남자들에 반응하여 남자들을 꼬시려고만 하는 여우일 뿐이다. 물론 나는 이런 남성들과 이런 여성들도 여러 번 봤다. 그러나 이런 시각으로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인류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들과 이런 시각으로만 교류하고 상호작용해야 하는 늑대의 삶이란 얼마나 빈곤하고 척박할까? 그의 현실이 모든 남성들의 현실이 돼야 하는 건 아니다. 현실은 결코 고정돼있지 않고, 현실은 우리들 각자의 노고에 의해 구성될 따름이다.

우리 사회의 불행한 반면 교사 역할을 떠맡게 된 한 국회의원을 이렇게 비판했으나, 모든 비판의 말미에는 언제나 찝찝한 이 질문이 남는다: '우리들 중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아래의 이미지는 그의 성희롱 사태 기사가 실린 인터넷 뉴스 페이지를 캡쳐한 것이다. 같은 페이지 우측의 '추천 포토'는 실로 우리 사회가 늑대의 시각으로 여성을 대하는 것을 일상적이고도 자연스럽게 인정해준다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추천 포토'에 눈동자가 홱 돌아가서 시선이 꽂히는 세상 남자들 전부가 돌을 맞을 것까진 없겠다―그럼 나도 맞아야 하므로. 단지, 저 자신 부끄러운 줄 알면서 비판할 것 비판하자는 제안을 하고자 할 따름이다.

거시적 사회과학에서는 세상이 다 그러하니 개인의 책임은 없다는 진술을 제시할 수는 있겠으나, 미시적인 일상의 수행에서는 그 진술이 성립할 수 없다. 수행에서는 이 세상이 내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추천 포토'도 내 탓이라는 말이다. 정치가의 천박한 여성 인식도 내 탓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오늘 또 이렇게 열받고 떠든 것을 부끄러워 하며.

'수행일상 2010'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