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어느 날 잠들기 전, 거실 바닥에 누워 공상을 하다가 베란다 창에 달라붙어 있는 매미 한 마리를 봤다. 창문 바로 위에 새들이 많이 날아오는 걸 알고 있는 터라, 그 매미가 곧 새 먹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새는 매미를 어떻게 먹을까? 이 의문이 든 이유는, 매미를 손으로 잡았을 때 제 발들을 휘두르는 그 격렬함이 폭력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전에 곤충 채집함에 매미와 함께 가둬둔 나비의 날개가 처참하게 뜯겨져 나간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발광하는 벌레를 새가 제 입속에 넣으면 연약한 속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저런 거친 놈을 새들은 어떻게 잡아 먹을까? 그런 유치한 공상을 하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뒷산에 올라가서 뛰고 내려오는 길, 차도 한 켠에서 직박구리 한 마리가 뭔가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파닥거리는 소리가 나서 조금 자세히 보니 입에 물려있는 것은 매미였다. 매미가 격렬하게 파닥거리자 새는 그놈을 길바닥에다 퉤 하듯이 패대기쳤다. 그러자 매미는 상처를 입은 듯 날아가지는 못하고 바닥에서 뱅뱅 돌며 파닥거리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새는 그 놈을 부리로 콕콕 쪼았다. 드디어 매미가 힘이 빠졌다. 또는 새 부리에 치명상을 입었던가. 그때 직박구리는 다시 벌레를 부리로 집어서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매미가 덩치가 컸던지 삼키다 말고 벌레를 반토막 내서 나머지를 땅에 던져두더니, 입에 있는 걸 다 삼키고 나서 그것마저 집어서 삼켜버렸다.

새는 이렇게 매미를 잡아먹는 것이로구나. 바로 간밤에 잠들기 전에 품었던 의문이 눈앞에 정확한 해답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가?

아니다. 수행을 시작한 이래로 이런 흥미로운―또는 신기한― 일이 내게 일어난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들을 다 열거하기는 귀찮을 뿐 아니라,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나치게 까발리는 것이라 공개적으로 쓸 수가 없다. 나는 '새가 어떻게 매미를 잡아먹는지 알고 싶다'는 류의 순진무구한 소망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내밀한 소망, 또는 욕구를 품고 있었다. 그것들 하나, 하나가 현실에서 이루어진 예들이 꽤 많다. 나는 이런 현상을 나만의 용어로 'instant realization of inner desire (내적 욕망의 즉각적 실현)'라고 부른다.

얼마 전에 이런 'inner desire' 하나가 발생했다. 온갖 욕망들이 수시로 나를 찾아온다. 수행은 그 욕망들의 타당성을 묻고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온 욕망은 타당성에서 내 이성으로부터 불합격점을 받았다. 그래서 선택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욕망은 그 자체로는 실제로 발생한 것이어서, 그 강도가 높을 경우에 타당치 않다는 이성적 판단만으로 쉽게 사라져주지는 않는다. 사실 자신도 모르게 마음 골짜기 한 켠에 독버섯처럼 피어난 탐욕 따위를 간단히 털어버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욕망을 다루는 수행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이번엔 작전을 좀 바꿔봤다. 내게 '자연스럽게' 일어난 욕망의 '즉각적 실현'을 소망하기보다는, 그 욕망의 무효화, 또는 자발적 소멸을 소망하기로 해봤다. 자연스럽게 발생한 욕망을 부정하고 없애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제2의 욕망(욕망을 없애려는 욕망)을 생성할 위험도 있으나, 탐욕의 기운이 저 스스로 빠져버리도록 돕는 수행 방식이 어쩐지 성공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얼마 전에 한 철학 강의에서 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 논리를 차용하여 다음과 같은 작전을 세웠다. 수행은 덕을 쌓는 작업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는데, 덕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의지가 필요하고, 둘째로 능력/기술(skill)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의지를 냈다. 탐욕을 소멸시키겠다는 의지를.

어쩌면 내가 이런 의지를 낼 수 있기까지 10년의 수행이 필요했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런 의지 자체가 일어나지를 않았었다. 피어오르는 탐욕과 그 충족 과정을 나는 즐겼었다. 물론 충족시키지 못한 탐욕에 대해서는 괴로워 했고.

탐욕 소멸의 의지를 낸 다음에는 탐욕을 소멸시킬 능력이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서 막혔다. 탐욕의 무시나 외면, 억압 등이 유용한 기술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다른 기술을 써먹어야 하겠거늘, 그게 뭔지 통 떠오르지가 않았다. 며칠을 틈날 때마다 골똘히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분명히 나는 탐욕을 소멸시키겠다는 의지를 굳혔고, 이에 대해 스스로 매우 자랑스럽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헌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멸시켜야 할지를 도통 모르겠는 것이다. 그래서 별 수없이, 내가 수없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에서 그래왔듯이 신께 빌었다: '쫌 알려주세요, 네?' 밤에 잠들기 전까지 계속 그렇게 빌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문득 깨어나 눈이 번쩍 떴을 때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 바로 곁에 있는 이를 사랑하라.' 이게 내가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의 교육자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이 '문제아'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떠올랐는데, 그건 가족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주라는 말이었다. 방금 떠오른 생각의 유의미성을 직감적으로 느낀 나는, 의식적으로 내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하며 그날 하루를 보냈다. 나의 가족과 그밖에 조우한 다른 이에게 진심과 애정을 마음속에서 '발사'해봤다. 어차피 평소에 다 사랑하는 이들이긴 하지만, 그날은 좀더 의식적으로 사랑했다. 그들 모두가 그걸 느꼈는지는 나는 알 수 없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봤다. 그때 알 수 있었다, 탐욕이 대부분 소진돼버렸음을.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이긴 했으나, 탐욕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밤도 신께 기술을 더 알려달라는 주술적 기복성 기도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튼 탐욕의 기운의 약화는 마음을 훨씬 평화롭게 해줬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런 답도 떠오르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그날 하룻 동안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 나는 도덕성에 관해 거의 '설교'를 했다. 이건 마음에 안 든다. 나는 남들에게 설교하는 사람을 아주 안좋아하는데 내가 그런 짓을 한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 지겹고도 고루한 '도덕성'이 웬 말! 늙으며 설교하는 경향이 늘어나지 않기만을 간구한다. 그런데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 그 전날보다도 탐욕이 약화됐으며, 따라서 마음도 더 평화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따져보니, 혹시 두 번째 '기술'이 '떠벌려라'였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사실 내가 8년 째 신앙수행 싸이트를 유지해온 첫째가는 이유가 나 자신의 수행에 관해 떠벌림으로써 그 수행으로부터 내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사회적으로 자승자박하려 함에 있었다는 점을 새삼 기억해낼 수 있었다―그러니까 중이 머리깎고 장삼 걸치듯이. 그래, 내가 지금 어떤 구체적 탐욕을 극복하기 위해 도덕성 증강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다고 떠벌리는 것도 탐욕을 소멸시키는 데 나름의 효험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탐욕은 약화됐으나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사흘 째 잠자리에 들기 전에 또 신을 졸라댔다. 기술을 더 주십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아주 일찍 눈이 떠졌다. 가족들은 다 잠들어 있는 새벽녘 어스름에 내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부정적인 먹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그 부정적 감정/기분은 간밤 꿈속의 정서에 의해 촉발된 것 같았다. 꿈속의 정서란 무의식이 조장한 것이리라. 왜 나의 무의식은 이날 아침 나의 기분을 암울하게 채색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일까? 나의 나쁜 기분은 애당초 이 탐욕 소멸 작전을 시작하게끔 한 탐욕의 원천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강력하게 촉발시켰다. 분석은 어두웠고, 음울했으며, 괴로웠다. 탐욕이 내 마음에 일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다 그럴 만 해서 그런 것 아닌가. 나는 불평에 빠졌다. 아침의 일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약 두 시간에 걸쳐 지속된 이 부정적인 분석은 내 의식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힘이 다 빠져버린 분석 과정의 끝무렵에 하나의 자각이 발생했다: '너는 빈약한 이성만을 가지고 어리석은 분석을 하고 있다.' 나의 이성적 사유작업의 단면성을 직감하고 나는, 애초에 나를 도덕적 고뇌로 내몰았던 탐욕의 원천을 완전히 다른 자세로 대하기로 했다. 이것이 세 번째 '기술'이 될 것이다.

세 번째 기술은 아직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탐욕의 원천을 이성이 아니라 사랑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탐욕의 원천은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것으로, 의식적인 시도에 의해 쉽사리 풀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세 번째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마할 것이다. 어찌됐든 첫째와 둘째 기술도 나름의 효험은 있었으므로, 이번 탐욕 소멸 작전은 일단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할 수 있다. 첫째와 둘째 기술을 달리 정의하자면, 행위와 말의 일치를 기하는 기술이라 하겠다. 사랑이 담긴 행위와 사랑의 효험을 증언하는 말을 일치시키는 기술이다. 내게 있어서 이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전제 조건은, 그러한 기술을 간구할 정도로 강렬한 도덕적 의지를 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융과 프로이드의 주장에 크게 동조하는 개인으로서, 의도적이고 의식적이며 억압을 수반하는 윤리 교화 방식에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마음의 향상을 기함에 있어서 의지의 발견과 발휘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에도 도달하게 됐다. 이는 일견 딜레마를 초래한 것도 같지만, 그러나 그 의지의 발견과 발휘가 자발적으로, 강렬한 내적 충동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면, 딜레마라기보다는 '무의식의 힘을 존중하는 신중한 의지를 키우는 방식'이라고 달리 표현하는 것도 부당하지 않다고 본다.

마음에 품었던 욕구가 현실에 펼쳐지는 신비를 나는 앞으로도 줄곳 경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단지 그 욕구가 보다 온전한 사랑에 점점 더 근접해가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십 년이 더 흐른 뒤에는 내 마음속에서 생성되는 욕구의 많은 부분이 나의 본질인 사랑을 실현하는 방향에 부합하기를 희망한다. 바꿔 말해서, 내가 참된 사랑이 아닌 탐욕의 충족을 바라지 않게 되기를 희망한다. 허나 이것이 만약에 지나친 소망이라면―인간에게서 탐욕을 배제한다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면, 그런 탐욕을 재빨리 소멸시킬 수 있게라도 되기를 희망한다.


* 또 다른 '우연의 일치'(8/16 오전): 8월 15일 밤, 집에서 이 글을 다 써서 웹에 올리고 난 뒤 '책의 지혜'도 한 건 업데이트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모든 자료가 연구실에 있어서 당장 볼 수 있는 건 '신과 나눈 이야기' 내용을 모아 둔 워드 파일 하나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그 파일을 열어 지난 번 올렸던 내용의 바로 다음 차례의 것을 보니, 거기에 바로 오늘 내가 쓴 수행일상 내용의 핵심이 설명돼있었습니다. 즉, '행위와 말의 일치'를 기하기 위해 먼저 행동을 저지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미있다는 느낌과 함께 감사의 마음도 들었습니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는 우주에 우연의 일치란 없다는 신의 말씀이 나오죠. 나는 우주가 선사하는 긍정적 피드백의 작용을 믿습니다. 그래서 나의 주특기인 아전인수격 해석을 스스로에 대해 내놓습니다: '난 지금 제 길을 잘 가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