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 (2010/5/2)
 

학생과 대화하던 중, 교재에 불교의 심우도(尋牛圖; 또는 十牛圖, 또는 牧牛圖)가 나오길래 그 그림을 소재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선생과 학생 양쪽에 주는 도움이 크다고 느끼게 됐다. 하여 그 그림을 이곳에 실어둔다. 그림의 출처는 '단청의 아름다움'이라는 아름다운 블로그이다. 내가 요즘 불교영어도서관의 메시지들도 매주 게재하다보니 처음 방문하는 분들이 이곳이 불교 싸이트인줄로 잘못 아실 수도 있겠다. 나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길'일 뿐이라는 달라이 라마의 주장에 동조하는, 소속된 곳 없는 수행자일 따름이다. 다만, 아마도 불교가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하고 있다.

 

 


 

 


 

1. 동자는 산속을 두리번거리며 다닌다. 삶에서 뭘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뭔가를 찾기는 찾아야 될 것이라고 느끼는 이 동자는 수행의 최초의 실마리는 잡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돈과 명예 말고는 삶에서 찾을 게 없다고 철썩같이 믿는 이들도 대단히 많으므로.
 

 

 

2. 산속에서 소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삶에서 찾아야 할 '그것'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내 경우에는 고등학생 때 처음 일어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는 데에만 십 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3. 드디어 소의 뒤꽁무니를 발견했다(우측 상단). 발견해내야 할 '나'의 일부분을 멀리서 보게 된 것이다. 내게 이것은 삼십 전후 해서 일어난 것 같다.






 

 

4. 소를 찾았다. '나'를 찾았다. 소를, 아니 '나'를 놓치기 싫어서 그것을 밧줄로 결박했고, 그리고 그것을 내 의도하는 방향으로 데려가보려 힘겹게, 억지로 밧줄을 잡아 당긴다. 나는 이 과정을 삼십대 끝물에 겪었다고 생각한다. 소를 끌고 가는 과정은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소를 얻은 것은 얼마나 엄청난 기쁨이었던가!
 

 


 

 


 

5. 내게 끌려오는 소가 점점 희게 변해간다. '참된 나'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과정이고, 분석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무의식의 의식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겠다. 나는 지금의 내가 이 과정의 초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여긴다. 이건 아마도 과대평가일 수 있으나, 아무렴 어떤가, 착각할 수 있는 자유는 나의 것이니.
 

 

 

6. 여기서부터는 내가 가본 적이 없는 경지다. 참된 나를 자유롭게 운행시킬 수 있는 경지, 이런 경지가 언제나 오게 될까? 지금까지의 단계를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볼 때 나는 환갑 쯤 돼야 이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나 할까.



 


 

 


 

7.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그곳으로 돌아온 동자는 소를 저 하늘 나라로 떠나 보낸다. 참된 나와 지금 여기의 나 사이의 구분이 사라졌는가 보다. 그냥 나로서 있어도 그것이 참인 경지이다.
 

 

 

8. 그래서 모든 것이 空임을 깨닫는다. 난 아직 이해가 잘 안 가는 경지.





 


 

 


 

9. 그리하여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10. 이치를 다 깨닫고 나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돌아가는 경지. 이게 불교의 가장 멋진 점인 것 같다. 백화만발한 저 아름다운 곳을 버리고, 저 번잡한 인간계로 돌아가야겠다는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

 

 

언젠가 한 학생이, 선생인 나는 자기실현 했냐고 묻기에 나는 아직 다 못했다고 답했더니, 저런 (늙은) 선생도 아직 못 다한 자기실현을 자신이 어찌 할 수 있겠냐고 낙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실현이란 평생토록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과정일 것이라고 말해줬으나, 아직 그 젊은 학생은 자기실현을, 그러니까 하얀 소와 평화로이 동거하는 그 경지를, 어떤 성취나 달성의 범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또 어떤 학생은 아주 머리가 좋았는데, 이십대 초반인 자신이 이미 자기실현된 존재라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명문대 입학하여서도 공부도 잘 하고, 사회적으로도 두각을 나타내는 활동을 하며 찬사를 받기 때문에 자기실현을 '성취'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지능과 자기실현 노정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내가 태어난 목적이 자기실현에 있다고 믿는다. 흰 소와 노는 경지(신이 내 안에 심어놓은 진리를 자유롭게 드러내는 경지), 또는 그것마저도 초월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그리 믿는 이유는 이 신앙수행 싸이트 전반에 제시돼있다. 자기실현 그 이상의 진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지만, 자고로 많은 선각들께서 자기실현은 모든 이에게 부과된 여정이며, 그것에 대해 생각도 못 해본 채 죽더라도, 그걸 하기 위해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니 얼른 그런 게 있음을 깨쳐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이런 자기실현관, 득도관, 또는 구원관을 대단히 유머러스하게 표현해준 한 길벗님의 글이 문득 떠올라 저 구석의 기록창고에서 끄집어내서 여기에 붙여놓는다. 이 길벗님께서는, 방명록에 어떤 이가 남긴 다소 무례한 글에 대한 대응으로써 이 글을 남겨주셨었다. (참고로, 나는 스스로를 위 십우도의 5번 경지의 입구에 다가가 있다고 여길 정도로 오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래의 글을 남겨준 길벗님께서는 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셨다고 생각하고는 있다.)



'도움말' (2002년 11월 14일)

참고로 전 홈페이지 관리자가 아닙니다. 방문객 중 한사람입니다. 혹시 밑에 분처럼 이 홈페이지의 내용이 전혀 이해가 안되시거나 반감이 있는 분들을 위한 도움말 또는 부탁의 글입니다. 해당되지 않는 분들은 시간낭비이니까 읽지 마십시요. 일종의 순서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사이트 소개를 먼저 읽는다.

▒2. 나머지 내용도 차분히 읽어본 후
2-1 이해가 안되는 경우 - 그냥 조용히 나간다. 그리고 다른 재미있는 사이트로 간다.
2-2 반감이 생기는 경우 - '언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서 별놈들이 다 있네 이런 놈들 다 상대하다가는 내 시간 낭비지'라고 생각하면서 역시 그냥 조용히 아무말 없이 나간다. 무슨말을 하는것 자체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피차 시간낭비니까.

▒3.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또는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산다. 그것이 남들이 얘기하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상관말고 가능하면 철처하게 자기 가치관 또는 추구에 충실할수록 좋다.

▒4. 그러다가 어떤 계기(허무감, 가치혼란, 공포감, 무력감, 고통, 신들림, 환청, 환상 등등)를 통해서 이사이트가 기억나면 다시 1번과정으로 되돌아 간다. 아니면 5번으로 간다.

▒5. 죽기 전에 할일 없으면 다시와서 그냥 한번 본다. 혹시나 하고... 이해가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냥 죽어 버린다.

▒6. 죽어서 (여기서 부터는 믿거나 말거나. 사실 본인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만 일반적인 생각을 뒤섞어서)
6-1 천당에 갔다(확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장님 문고리 잡게 해준 하느님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산다.
6-2 지옥에 갔다. 짜릿한 경험을 준 하느님께 감사하며 때를 기다린다. 감사가 안되면 팔자려니하고 체념하며 적응한다. 그러다 보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 안되면 영원히 거기서 눌러 앉는다.
6-3 떠돌이 귀신이 됬다. 이사이트 보는 사람찾가서 뒤에서 같이 읽어본다. 심심하면 말을 해보거나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그들 중에 가끔은 듣거나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단 가능하면 부드럽게 너무 무서워 놀라지 않게 한다. 애정어린 모습으로... 아니면 6-2로 가는 수가 있음. 그러면서 때를 기다린다. 다시태어날 때를.

▒7. 다시 태어났다. 1번으로 돌아간다. 홈페이지가 없어졌다? 영혼의 기억을 더듬어서 당신이 직접만들어라. 6-1에 고울인할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몇천번이고 몇만번이고. 이상 입니다.

운영자님 차분한 홈페이지에 좀 장난기가 있는 제 글이 맘에 안드시면 바로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맑지 않은 상태로 글을 써서 저도 좀 이상하긴 하네요. 오늘도 사소한 일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저를 용서하시길!

 

'수행일상 2010'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