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마지막 날의 감사 (2010/12/31)
©
Suk Hoon Han
2010년 마지막 날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는 광경을 연구실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적보라빛이 퍼지는 산 언저리에 한 해를 놓치기 아쉬워 하는 내 마음이 매달려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기어코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 드디어 완전히 산 너머로 숨어버렸군요.
이렇게 2010년을 마감합니다.
이 해의 마지막 한 주일 동안은 간신히 지난 학기 성적 처리 마치고
나서 이미 시작돼버린 계절학기 관리하느라 정신없이 지났으나, 짬짬이
시간내어 소중한 이들과 송년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 해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이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나의 신께서 자비로운 은총을 베푸시어, 나의 여러 과제들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중요한 일들이 아름답고 평화롭게 마무리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서산으로 넘어간 태양이 여전히 지평선 저 쪽에서 보내주고 있는 발그레한 빛이 나에게 이토록 많은 행복을 주시는 신의 따스한
손길처럼
느껴집니다. 나의 신께 감사드립니다. 어려울 때마다 많은 기도를 했고, 그 때마다 그 기도가 내 일신의 보위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되도록 마음을 단련시켰습니다. 신께서는 그 모든 기도에 다 답해주셨음을 믿습니다.
비록 내가 그것을 내 눈으로 다 알아볼 수는 없으나 필히 답해주셨음을 믿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에도 나는 나의 내적 한계를 재확인 했고,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몸과 마음을 채찍질했습니다.
그러면서 천 명에 이르는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가족을 부양했고, 벗들과 교류했습니다.
그 어느 한 부분에서도 크게 실패하거나 실수하지 않고 한 해를 마감하게 됐으니, 이는 신비스러운 신의 은총이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너무 욕심을 내선 안되지만, 학생들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만으로도 벅차다보니 벌여놓은 집필 원고들에 손을 못댄 것이
아쉽습니다. 내년에는 글을 좀 쓸 수 있기를 희망해보지만, 나에게 들어오는 강의 의뢰는 늘어만 가니, 이 또한 신께서 이 무렵에 나에게 배정해주신
일이겠거니 여기려 합니다. 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심신으로는 감내하기 힘든 과제를 주시고, 그것들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
거의 매일, 먼 곳, 가까운 곳에서 제자들의 인사나 상담 메일들이 내게 날아옵니다.
어떤 날은 제자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며 가이드해주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고요 속에 홀로 보낸 한 해의 오후 끝자락에 느닷없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이기적이고 나약하며 자그마한 이런 인간을 저 많은 귀한 젊은이들이 믿어주고 따라줬다는 사실이 너무도 황송해서입니다.
젊어서는 상상 못했던 큰 영광을 누리게 됐습니다. 참된 선생 상에 한참 못 미치는 인간으로서 이런 영광을 누림이 부끄럽지만, 그러나
결코 사양하고 싶지 않은 복락입니다.
나의 가족과 친지들과
제자들 모두, 그리고 나의 신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