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찾기

지금의 선택의 이유 (2011/10/7)

나는 학교 선생님들이, 또는 선생님이 될 사람들이 어떤 자기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고, 또 동시에 같은 주제에 대한 대학원 강의를 이끌어 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 인생은 신기하다. 나는 어쩌다 이런 일을 생의 주업으로 삼고 살아가게 됐을까? 나는 '선생은 자고로 이러해야 하느니라'는 식의 '훈육' 스타일에 대해 생리적인 반감을 갖고 있는 인간이다. 원체 권위와 명령 따위를 혐오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그런 이유가 성장과정의 심리적 억압에 있는지, 아니면 선천적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인간이 그러한 일견, '도덕주의적'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현재 맡고 있는 대학원 수업에서 제기한 논의를 여기에 풀어보려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질문만 던질 뿐,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뭐, 이런 질문이다: '선생이 되겠다는 지금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 요인이나 사건들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의 의도는 '왜 선생이 되려 했나?'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인데, 이 글의 독자가 선생질과는 관련이 없는 이라면, '지금 내가 왜 이런 길을 가게 됐나?'라는 질문으로 바꿔서 생각해봐도 무방하다.

내가 지금의 이 길(예컨대, 학교 선생 등)을 선택하게 된 원인은 내 인생 전반에 걸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원인은 현재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얼마 전의 과거에 있을 수 있다. 예컨대 2년 전에 친구가 언급해준 것 때문에 지금 내가 이 일에 투신하게 됐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는 그 원인이 훨씬 더 먼 과거에 있을 수도 있다. 즉, 내가 초등학교 학생이었을 때 겪었던 어떤 경험 때문에 지금 교사를 지원하게 됐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아니면 초, 중등 학생 시절에 부모가 지속적으로 교사가 되라 해서 지금 교사직을 택하게 됐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이 '기억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닌, 참으로 원초적이고도 머나먼 시절인, 기억할 수 없는 유아기, 또는 그 이전까지 소급해서 지금의 나의 선택의 원인을 찾아보는 것도 부당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비록 두세 살 때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굳이 그 시절에까지 현재의 선택의 원인 소지를 추정해보려 하는 건 물론 항문기, 구순기의 무의식적 형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가르침 때문이다. 태아 이전의 이른바 전생에까지 원인을 좇는 건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접기로 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인을 시간의 축에서 찾아보는 작업에는 여러가지 고려해볼 질문들이 있다. 아마도 그 원인이라는 게 다수이고 복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때, 그 여러 원인들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즉, 나의 형성은 선형(linear)이었을까, 아니면 비선형(non-linear), 즉 유기적(organic)이었을까? 그 연계는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원인의 연계는 명백한가, 희미한가? 또는 원인은 깊은 곳에 숨어있는가? 또, 원인은 나의 외부적 인격(페르조나)에서 찾을 수 있는가, 내적 인격(자기)에서 찾을 수 있는가? (명화 빠삐용이 생각난다. 천신만고 끝에 자유의 몸이 된 빠삐용은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우회로와 막다른 길과 험란한 경사길들이 필요했었다.)

나는 마지막 질문에 천착한다. 지금의 선택의 원인이 나의 페르조나에 있다함은, 단순하게 말해서, 나는 세상에 잘 보이기 위해 선생이 되기를 선택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나의 참된 자기(the Self)에 있다함은,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 싶어서 선생이 되고자 한다는 말이다. 전자는 선생직의 사회경제적 보상과 더 많이 관련돼있고, 후자는 선생직의 질적 차원에 대한 강한 지적 관심이나 심적 집착과 더 많이 관련돼있을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내가 왜 이 길로 가고자 하는지 보다 깊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페르조나의 측면에서만 나의 선택을 이해하는 것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아가, 지금의 선택이 나의 참된 자기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모색해보기 위해서이다.

물론 현재의 선택의 원인이 전적으로 페르조나에서 찾을 수 있거나, 전적으로 참된 자기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양자가 확연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외면과 내면의 분리 지점이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내가 대사회적으로 멋져보이고 싶은 그 소이연이 나의 진정한 고유성과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을 것이므로. 그러나 나의 선택이, 나의 삶의 길이 나의 참된 자기와 도무지 연결돼있지 않다면, 그건 큰 문제일 것이다. 그건 자기실현의 길에서 멀어지는 것일 수 있으니까.

나의 선택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답이 아마 평생 하나의 미스테리(신비)로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런 질문의 답이 궁극적으로는 찾아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할 어떤 것이라고 이해한다. 즉, 나는 이런 연유로 선생이 됐다는 답을 살아가면서 실천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는 말이다. 삶이란 인식의 확장 과정이라기보다는 ―그런 면도 크지만―, 살아내야 할 과정으로 끌어안아야 할 어떤 것이 아닐까? 그것이 어떤 형태로 주어지든지 간에. 내가 인식의 확장 과정으로 보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나의 삶의 한 단계, 한 단계가 의식적인 이해 과정을 통하여, 이성적인 선택에 의해서 진전됐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냥 벼락처럼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고, 나의 역할은 그걸 살아내면서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에 국한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왜 지금 이 길에 서있게 됐나? 여기에 멈춰서서 그 이유를 골똘히 생각해내려 애쓰기 보다는, 이 길로 나아가며 적절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왜 선생이 되려 했나? 선생으로 살아가며 그 선택을 온당하게 만들 이유들을 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닐까?.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자기 본성보다 실존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던데, 그런 시각은 나의 이 말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이런 질문하기 과정들을 통해 대학원 수업을 이끌어가고 있고, 두 번째 책의 원고를 쓰고 있다. 잘 돼야 할 텐데... 뭐, 잘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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