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2011/5/9)
 

© Suk Hoon Han                                                                                                                                                                     
 
 

요즘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새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고, 늘 바쁘게 강의하러 다니면서도 머릿속 한 켠으로는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새 일의 주제와 그 주제를 밀고 나가기 위한 논리의 힘, 그리고 논리를 떠받쳐 줄 구체적인 논거 등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간밤에 꾼 꿈이 나의 현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수행 일상'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꿈 해몽 이야기 또 한 편:

나는 강의 중이다. 학생들 수는 이십 명이 안돼 보인다. 대학원생들인 것 같다.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 강의실에 들어오게 됐다.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완전히 정리가 돼있으나, 내 강의 노트는 상당히 복잡하다. 수업에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어쨌든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강의를 한다. 학생들이 더러 웃기도 하고, 분위기는 부드럽다. 헌데 세 명의 남녀 학생들이 조금씩 자기들끼리 속삭이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그 이야기 소리가 커진다. 셋이서 함께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강의실 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점잖게 '잡담하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코멘트하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는다. 결국 나는 그들 앞까지 걸어가서 다시 지적한다. 그들은 미안해 하는 기색도 없이 나를 쳐다보며 '강의가 보이지 않아요'라고 답하는가 하면, 다른 수업 시험 때문에 컴퓨터를 봐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들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그래프와 도표가 나오는 일종의 방송 보도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다. 나는 내 수업 시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당장 그만 두라고 따끔하게 이르고 다시 수업을 재개한다. 내 강의 내용은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이다. 소수의 학생들은 내 강의 내용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18번' 중 하나라고 여기는, '유아의 성장에 빗대 루소의 '자연'을 설명하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강의실 안의 학생들 절반 가까이가 어수선해진 것 아닌가. 그들은 나에게 반항한다기보다는 뭔가 산만하고 딴 데 정신이 가 있는 듯 보였다. 강의실은 갈수록 소란해지고, 나는 목청을 돋궈서 조용히 하라, 자리에 얌전이 앉아 있으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다수 학생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다. 둘러보니 아예 내 수업의 수강생이 아닌 다른 학생들이 강의실 안에 들어와 앉아서 쓸데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들 다수는 외국인들이다. 서양인으로 보인다. 그들이 내 학생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하니 강의실은 더 혼란스러워 졌다. 드디어 내가 고함을 지른다―분노가 배어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모두 자리에 앉아 강의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국 학생들에게는 영어로 고함을 지른다: 'Everyone who doesn't belong to this class, please get out of this classroom now. This is still My class.' 그러자 외국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학생들도 제자리에 앉는다. 이렇게 힘든 강의는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해몽: 아마 나는 새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실질적 준비가 돼있는가보다. 그러니 내 강의 노트에 빼곡히 '콘텐트'가 들어 있는 것이겠지. 다만, 문제는 청중이 충분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상태로 앉아있고, 나 역시 그들에게 다가가 정신을 쏙 빼놓을 방도는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오직 소수만이 내 강의에 경청하는 것이겠고. 그리고 내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이들은 매스컴이라는 통념 재활용 센터에서 제시하는 기술적으로 세련된 방식의 계량적 프리젠테이션에 마음이 빼앗겨 있다. 내가 상대해야 할 경쟁자가 '현실'이라는 통념이라고 나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리라. 헌데 그 쪽으로 마음을 빼앗긴 학생들은 내게 좀체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세상은 루소 따위에는 영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나는 소리를 질러보지만 역부족, 내 수업은 흐지부지, 내 의지와 달리 아예 중간에 파탄나버릴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내 강의실에 들어와 앉아있는 서양인들은 무얼 뜻할까? 이방인 관찰자들? 나의 사상 안에 들어있는 서양적 요소들이 나 자신의 사상을 관찰하는 무심하고도 객관적인 도구가 돼가고 있다는 말일까? 서양 사상적 요소의 무관심함에 주의를 기울여 '有心'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일까? 내가 그들에게 외친 'class'란 어휘는 단지 내 수업만을 지칭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회적 계급을 중의적으로 의미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종합해보건대, 내가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제시하려는 주장을 작금의 현실적 통념과 대치하는 구조 속에서 축조해야 하고, 이를 무심해 보이는 서양 청중, 또는 객관적 국제 학계의 시각에서 보기에도 타당한 것으로 제시해야 하며, 또한 내 주장의 실천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성찰을 강하게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들이 이 꿈 안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로 나는 나의 새 프로젝트를 통해 '이상주의적' 교육 사상가들의 주장이 현실에서 '실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하고, 이것이 국제적 학문의 기준으로 봐도 보편 타당하도록 해야 하며, 나아가 사회 정의 차원에서 뚜렷한 판단 기준과 가치관을 품고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물론 언제나처럼 내 뜻대로 아전인수적으로 꿰어 맞춘 해몽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아무렴 어떤가, 내가 전념하고 하는 일을 꿈속에서까지 재검토하고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하는 편이 나의 성능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터이니.

꿈이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철저히 비선형(unlinear)이듯이, 우리네 삶도 그렇게 전개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을 것으로는 지난 주까지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꼼꼼하게 계획해둔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많아서 그것들을 하나, 둘씩 차근차근 전개해 나가야 할 시점인데, 난데없이 어디서 떨어진 새 프로젝트 때문에 다른 모든 장기적 계획들을 보류 시켜버리게 된 것이다. 그 모든 계획들이 참된 나를 지상에서 드러내는 실질적인 교육적 실천에 관한 것들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 시점에 저지를 것으로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아무튼 무슨 연유에서건 하늘이 새 일을 던져주셨으니, 온 몸과 마음으로 받잡고 나를 바칠 수밖에.

'수행일상 2011'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