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11/7/7)
©
Suk Hoon Han
지난
몇 주일 좀 힘들었다. 채점할 기말 페이퍼들과 처리할 잡무의 양이 아주
많았고, 몇몇 '진상' 학생들의 성적 올려달라는 집요한 요구에 대응하는
것도 짜증스러웠다. 수술한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서 간병하다가
귀가하여 기말고사 중인 딸들 밥차려주고 집안 일 처리한 후 쓰러져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엔 후다닥 아이들 아침 먹여서 보내고 이미 시작된
계절학기 수업하러 먼 캠퍼스로 달려나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난 지난 토요일, 수술 경과가 좋은 아내는 퇴원하여 집에서 쉬고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으며, 내 수업도 없는 모처럼의 휴식 가능한 시간이
주어졌는데, 긴장이 풀린 탓인지 나는 거실 소파에 누운 채로 두어 시간
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수백 명 학생을 상대하는 강의만으로도
매주일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난 한 주일 동안은 그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하다보니 내 몸도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내가 병원에
가있던 동안 집안 일을 도와준 친지들마저 없었다면 더 난감했었을 게다.
토요일
오전에 쓰러져 있다가 몸을 일으켜 점심 먹고 나니 다시 기운이
돌아온 것 같았다. 요즘은 '밥심'으로 사는 것 같다.
나는 현
시점을 시련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아파서 고생하는 건 아내일 뿐,
난 돼지같이 밥 많이 먹으며―실로 너무 많이 먹어서 뱃살도 찌고 있다―
힘차게 잘 움직이고 있으니까. 지금껏 알아낼 수 있었던 자료에 근거해
판단해볼 때, 아내의 병이 완치될 것을 통계적으로 명백하게 예상할
수 있기에 내 마음에는 근심도 없다. 모든 가능한 치료를 다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갖춰놓아야 하는 것이 다소 힘겹게 여겨지긴 하지만,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다보면 다 어떻게 되겠지 하며 낙관한다.
전에는
이런 말을 내뱉기가 가슴 아팠지만, 열심히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창작은 나의 인생의 중장년기의 자기실현을 위해서
계획해놓은 활동이자 평생의 꿈인데, 먹고 살기 위해 창작을 추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학생들 가르쳐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교직 성직론' 운운하는 인간이 학생들 가르쳐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 안되도 할 수 없다. 현실은 원래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가장 세속적인 돈벌이와 가장 숭고한 자기실현이
한데 뒤엉켜있다는 것을 관찰하는 삶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 아니한가.
어떤 '순수 예술' 한다는 가수가 상업주의적 무대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는데,
나도 생활비가 떨어져 강남 학원가를 전전할 때에는 매일 가슴속으로
눈물이 흘렀었다. 허나 그도 어리석은 자조감에 불과하다. 스스로 택한
길 걷다가 가족 부양이 힘들어지면 무슨 짓을 해서든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자기실현 구도의 순수함을
퇴색시키는 돈벌이가 끼어든다 하여 비애감에 빠지는 것은 벌어먹고
사느라 하루 하루를 겨우 넘기고 있는 온 세상의 서민들을 깔보는 오만일
따름이다.
어쨌거나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때우며 생활하다보니
'원래 하려던 일'인 창작의 불꽃을 또 잃어버렸다. 삶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을 때에는 심신의 기운을 다 짜내보려 해도 나오는 기운이 없고, 따라서
내 삶을 바쳐 이루어가려던 본질적 과업이 휴업상태로 들어가곤 한다.
일단 처자식 먹여살리고 돌보는 일이 내 실존을 압도하다보니 공부와
수행에 대해선 의식해볼 틈도 없다. 익히 예상했던 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가장 아쉽다. 수행이 제대로 돌아가야 창작도 제대로 되거늘.
먹고
살려고 글도 쓰고, 학생도 가르쳐야 한다고 지껄였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고 있음을 온전히 인정하지만, 그러나 나는 젊은 학생들이 믿고
의지하는 선생이라는 자긍심을 잊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고, 체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매번의 수업에 최선을 다 하지 않은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그래서 돈벌이와 자기실현을 한데
엉겨놓아도 불편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