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1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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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 Hoon Han
5월이
거의 다 갔습니다. 저에겐 대단히 바쁜 한 달이었고, 또 힘겨운 한 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싸이트 업데이트를 못했습니다. 오늘도 업데이트
할 겨를이 거의 없고, 이러다가 5월이 그냥 지나가 버릴 것 같아
그냥 간단히 근황이나 적어두기로 했습니다―단골 손님들께서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요.
제가 하는 일이 좀 많죠. 일단, 수백
명의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상대하여 제대로 수업하고, 관리하는 일
자체가 저의 힘을 다 바쳐야 가능한 일입니다. 작년부터는 매 학기 27~8
학점 씩 수업을 맡아오며 일주일 내내 서울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
여러 대학을 휘젓고 다닙니다. 맨날 강의실에서 떠드는 게 제 삶의 주된
양상이 됐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도 입만 동동 떠오를 인간이 돼버린
듯 합니다. 허나, 그래도 여전히 제 안에는 학생들에게 더 해줄 말이
잔뜩 남아있는 걸 보면, 어쩌면 약장사가 내 천직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달엔 모 출판사 직원분들을 위한 특강도 한 차례
했습니다. 그 출판사 건물의 고즈넉함과 소박한 아름다움도 매혹적이었습니다만,
사장님 휘하 만나본 모든 분들이 참 인상도 좋으시고 맑은 성정이 느껴지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출판사에서 제 책을 꼭 한 번 내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고, 내년 께 원고를 들이밀어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밖에도 스승님 같으신 학자 분께서 새로이
출간하실 책 원고를 검토하며 종교성에 대해 되짚어봤고, 그분과 그
후학들께서 펼치시는 존경스러운 활동에 기웃거릴 수 있었으며, 예측
못했던 인연으로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어 '스승觀'에 대한 원고의 구상을
시작했고, 재정적 안정을 위해 돈 주는 연구과제 공모전에 제출할 프로젝트의
준비도 시작했고, 그러는 와중에 가족 돌보고, 집안 어르신들 챙기고,
제자들 상담·지도도 하다보니 실로 눈코 뜰새가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바쁠 때 마음이라도 편했으면 좋았겠거늘, 인간관계 때문에 속 상하기도 했고, 내 힘으로는 어찌 도와줄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한 제자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으며, 누구나 그렇듯이 세상살이에서
겪게 되는 자질구레한 생채기들을 유독 이번 5월에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싸이트 업데이트도 못 하고 한 달이 휙 가버렸네요.
일이
너무 많아 고된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그러할 것으로 믿습니다.
결코 하늘에 불평하지 않습니다, 사실 나 자신이 만든 일들이니까요. 헌데 정부는
시간 강사 처우를 개선한다느니, 작년부터 시끄럽게 홍보나 해올 뿐,
실제로 제가 나가는 대부분 대학들의 강사료는 작년에 비해 한
푼도 오르지 않았습니다―그래도 일반 기업체들은 물가 상승률 고려하여
직원들 급여를 매년 올려주지 않나요? 대학 집단이란 곳이 기업들보다
더 인색하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저는 그러나 '귀족' 시간강사인 셈이죠.
노동량은 엄청나지만 먹고 살만큼 돈도 벌고, 또 강의 이외에도 이런
저런 수입들도 있으니까요. 몇 안되는 강의로 연명해야 하는 '동지'
시간 강사 분들의 처지는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고된 삶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내 일에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오만방자하게도, '나
하나라도 잘 하자'는 생각을 품고 삽니다. 매 학기, 나를 거쳐 나가는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선생의 성스러운 역할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 합니다. 허나 이런 노력이
무위(無爲)의 행위여서 마음에 아무런 바람을 품지 않을 수 있어야 하건만,
나약한 인간이라 그리 하지는 못하는군요. 내가 정성을 들여 바치는
행위가 학생들에게 무시될 때에는 속이 상하더군요.
힘겨운 5월에
받은 마음의 상처도 다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어 주어진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아픔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단한 삶과
속 상함,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 조금씩 주어지는 보람과 즐거움 등등,
이 모든 것이 죄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어 나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겠지요. 나의 삶은 적어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이
신나는 한 판의 인생을 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과제를 너끈히
받아들일 수 있는 튼튼한 몸뚱아리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