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키우는 일이란 (2011/11/13)
©
Suk Hoon Han
1.
예전엔
주로 번역으로 먹고 살았지만, 최근에는 번역 일은 거의 접고 대학 강의로
먹고 산다. 강의는 내 적성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꽤 멋진 말을 학생들에게
해주고, 어떤 경우엔 학생들에게 감명을 주기도 하는가 보다. 여러 대학에서
'우수 강사상'이란 것을 열댓 번은 받았다. 또, 꽤 많은 제자들이 꾸준히
연락하고 찾아준다. 이걸 보면, 나는 돈은 많이 못 벌지만 부자이고,
행복한 인간이다. 그런데, 자만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만하게 된다. 내가
꽤 잘한다고 여기는 바로 그 순간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때 어떤 어린
학생이 지적한다: 강의내용 중 이 부분은 잘못 된 것 같다고. 맞다, 스무 살 먹은
네 말이 맞다. 반성한다. 사람 키우는 일에 완성은 없다.
2.
선생질은
예술과 같다. 시간 위에 풀어놓는 퍼포먼스 예술. 예술가로서의 선생은
선생질의 아름다움을 좇는다. 나는 걸작은 못 만들어봤어도, 고만 고만하게
봐줄 만 한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왔다. 봐줄 만 했기에 좋은 평가도
받아왔을 게다. 그러나 실패도 있었다.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고픈 강한 열정이 있었건만, 불행하게도 처절히 실패해봤다.
내 뜻대로 세상 일이 돌아가는 건 아니니... 그런 실패로 인해 위축된
탓에, 이제는 학생들에게 잘 다가가지를 못한다. 누군가를 키워주고,
위해주기가 두렵다. 이런 한심함 속에서 나는 자꾸 잊어버리고
만다: 실은 학생들이 나의 구원자임을. 다시 기도하고 강의실로 들어간다.
난 세상을 구하고 싶었지만, 구원이 필요한 건 바로 나다.
3.
고대
의대생의 동기 성추행 사건은 우리 교육의 철저한 실패에 대한 끔찍한
확증이다. 고대 의대생이 누구인가? 이 나라의 공교육체제가 배출한
최고의 산출물 아닌가? 우리가 배출한 최고의 인재들 삼인이 합작하여
힘없는 한 동기생 여성을 강제로, 반복적으로 능욕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만행에 대한 부끄러움의 감정조차 전혀 느끼지를 못한다. 오히려
자신들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파렴치한 모략까지 서슴지
않았다. 우리가 배출한 최상의 인재가 최악의 인간 전형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교육이 철저히 망했다. 이 땅에 희망은 있는가?
그러나
우리의 교육이 현재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결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변인을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오만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교육이 나아질 변인을 아직 우리가 포착 못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겸허가 필요하다. 겸허를 배우고 희망을 봐야 한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변인의 존재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이
변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보잘 것 없는
'나'가 변할 가능성에 대한 희망도 볼 수 있어야 한다.
4.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키우겠는가. 다 신께서 알아서 키우시는 것이겠다. 선생은
신의 손길이 다가오시는 길이나 열심히 쓸고 닦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