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월 일상 (2012/10/21)

오후 9:55 2012-10-14
* 뇌과학 관련 시사잡지 기사:
"세상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들과 연결돼있다. 그래서 마치 뇌가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것―보는 것, 듣는 것, 온도를 느끼는 것, 과거의 경험 등―을 다 활용하려고 드는 것 같다. 뇌는 이 모든 것들을 활용하여 하나의 동물인 자신이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산출해내려 하는 것이다. 그 동물이 쥐가 됐든, 인간이 됐든 간에."

따라서 이 '동물'의 인식에 종교가 개입하게 될 경우, 종교가 '모든 것들을 활용'하려는 뇌의 인식에 추가적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이는 종교의 '특수 인식능력' 활성화 기능 때문에 그러하다. ('특수 인식능력'이란 오강남 교수님의 용어로, 현상계의 합리적, 인과율적 인식을 넘어서는 경험과 현상들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영적인 작용을 말한다.) 또는, 종교가 더 높은 인식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데, 종교적 체험이란 그 체험의 주체에게는 너무도 압도적이라 그 주체가 더 이상 새로운 체험을 겪거나 자신의 앎을 확장하는 것 자체를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겠다(자신이 궁극의 앎을 체험했다고 믿을(착각할) 경우, 더 배울 것을 거부할 수 있으므로).

오후 6:57 2012-10-16
예전에 미국에서 사온 사진집인 애서가(愛書家)들의 서재 풍경을 담은 책을 천천히 넘겨보고 있었다. 많은 서재들의 모습을 보던 중, 내가 20~30년 전에 바라던 거의 모든 것들을 이제는 다 성취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이 많은 나만의 연구실, 자유로운 프리랜서로서의 지위, 작가, 강의자, 존경과 칭송을 받는 선생, 화목한 가정의 '가장'. 게다가 난 가난하지 않기까지 하다! 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여기에 더하여 나는 자기실현의 길까지 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삶에서 뭘 더 바랄 수 있겠나? 그런 욕망이 바로 신성모독 아니겠나?

딸내미가 학습 효율을 위해 기능적으로 다니는 단 하나의 학원 수업이 끝난 금요일 저녁, 가족이 딸의 학원 앞에 한데 모여 저녁 외식을 한다. 나는 맥주도 한 잔 곁들인다. 딸은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1등만 한 성적을 자랑하고, 부모는 흐뭇한 미소를 띄며 예쁜 딸을 바라본다. 내가 삶에서 뭘 더 바랄 수 있겠나?

그런데도, 더 바란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쉬움이 있고, 욕망이 있다.

오후 11:24 2012-10-19
한 해 넘도록 물려뒀던 피아노를 다시 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과거와 달리 요즘 잘 쳐지는 곡들은 '세월이 가면'이나 '붉은 노을'이라는 가요들이다. 왜일까?

벗의 손길에 이끌려 나의 평촌 연구실 근처의 '피아노 바'라는 곳에 가서 한 잔 잘 얻어먹고는, 기분이 흥해 피아노를 한두 번 쳤다. 손님들의 환호와 함께 '감사주'도 받아먹었다. '허허, 아직 내 손가락이 완전히 녹슬진 않았구먼.' 헌데 정작 그 바의 주인공 피아니스트인 여사장님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술이 깨서 생각해보니, 그녀가 나를 싫어한 건 정당했다. 왜냐면 난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기계적이다'라고 느꼈으니까.

오전 9:06 2012-10-20
꿈에서 불특정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꿈속의 청중이 내게 질문했다.

"선생님, '공존'이 뭐죠?"

꿈속에서 내가 즉답했다.

"'공존'은 제가 잘 쓰고 좋아하는 말인데요, 공존에는 선생의 공존과 학생의 공존이 있습니다. 전자는 전교조가 재벌기업과 공존하는 걸 뜻하고, 후자는 학생이 타학생들과 공존하는 걸 뜻합니다. 공존을 위해서는 대극의 합일이 필요합니다."

내가 꿈속에서 뭔 소리를 한 거지? 온갖 강의를 하도 많이 하다보니 꿈도 이런 걸 꾸고 자빠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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