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자연스러움 (2012/3/18)
©
Suk Hoon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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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쓰고 있는 '선생론' 책의 원고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틀에
맞춘 사회화 과정 속에서 대학 진학이라는 단일 노선으로 모두를 밀어
넣는 지금의 교육 현실 속에서는 인간의, 학습자의 다양한 개성을 돌봐주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다양하다.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나는 이 당연한 진리를 자식을 낳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깨칠 수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첫 딸을 봤는데, 하루는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딸을 데리고 정기검진 차 병원에 갔더랬다. 소아과에 가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한쪽 벽에 커다란 그래프가 걸려있다. 바로 ‘정상’
성장 곡선이 그려진 그래프다.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며 다다르는 평균
체중과 신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그래프다. 그런데 내 아이의
신장과 체중을 재보고 그 그래프의 평균치와 대조해보니 내 아이는 ‘정상’이
아니었다. 너무 컸다. 첫 애를 얻고 아이 양육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우왕좌왕, 노심초사하던 나는 내 아이가 정상, 아니 평균치로부터
떨어져있다는 사실에 놀란 나머지, 잠시 후에 만난 의사에게 호들갑을
떨며 질문을 퍼부었다.
“선생님, 선생님 시키는 대로 접종 다해주고,
먹일 거 다 먹이고 키웠는데, 얜 왜 비정상이죠? 우리가 뭘 잘못한 거죠?”
한심한
나의 항의를 가만히 듣던 그분, 은퇴가 가까운 백인 여의사는 자애로운―그러나
다소 딱하다는 듯한― 눈빛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해줬다. 나는 그 말을
아직껏 생생히 기억한다.
“후후, 한 선생, 내가 병원에서 아이들
받고, 치료하고, 연구하며 40년 넘게 일해 왔는데 말예요, 아직까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하는 게 딱 한 가지 있답니다. 그건, 아이들 한
명, 한 명 안에는 그 아이만의 고유한 성장 프로그램이 내장돼있다는
사실이예요. 나는 그게 왜 다 다른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어요.”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정도의 머리라면 이 정도만 얘기해줘도 알아듣겠지
하는 식의 표정을 노의사는 보내주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루소의
교육 사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 맞아!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속의
개체는 그것이 어떤 생명체이던 간에 똑같은 것이 없다. 어떤 짐승도,
나무도, 풀도 다 제각각의 개인적 속도에 따라 성장한다. 왜 그렇게
프로그램 됐는지는, 의사 말대로 알 수가 없는 신비다. 어찌됐든 똑같은
성장이라는 건 자연에는 없다. 다 자기만의 페이스대로 자라는 거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교육제도는 그러하지 못함을 루소는 본 것이다. 동일
연령대 학생들을 모두 똑같은 페이스로 키우는 학교가 자연을 존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본 것이다. 세상에 ‘정상적인’ 성장이란 것은 없다.
‘평균치’는 실재가 아니라 관념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상치’에
맞춰 자기의 자식을 재본다. 그리고는 내 자식이 비정상적이라고 오인한다.
내
딸의 과다 성장을 두려워 한 나만큼이나 세상의 부모들은 어리석다.
모두가 동일한 속도로 자라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것이 몸이 됐건,
머리가 됐건, 아니면 마음이 됐건 간에. 그러나 자연은 개체의 고유성,
즉, 개성을 보장한다. 우리가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고 억지로 인위적으로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선생은, 자신
앞의 수십 명의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자연이 부여한 성장 프로그램에
따라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모범생도, 부진학생도 이해할 수가 있다. 똑같은 시각으로
선생인 자기 자신도 이해해야 한다. 나 자신은 제대로 나의 고유한 속도에
맞게 성장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