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적인정의

신통(神通)한 '나'의 행복 (2013/4/30~5/9)

칼 융의 말이다:

푸에블로 인디안들은 그들이 '아버지의 태양' Father Sun의 아들이라고 믿고, 이 믿음은 그들의 한정된 존재를 훨씬 넘어설 줄 아는 시야(그리고 목표)를 그들의 인생에 나누어준다. 그 믿음은 그들에게 인격의 발전을 꾀할 만한 넓은 공간을 제공하고, 전 생애를 완전한 인격으로서 살도록 허락한다. 그들의 처지란 인생에 아무런 내적 의미도 갖고 있지 않는 하위자에 불과하다는(그리고 그런 채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대를 사는 문명인의 처지와는 비길 수도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보다 넓은 의미를 느낄 때, 인간은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 이상으로 자신을 들어올린다. 만일 이런 느낌이 없다면, 그는 방황하며 불행하다. 성 바울 St. Paul이 그가 떠돌이 양탄자 직조공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확신했었다면, 그는 확실히 실제의 그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참되고 의미 깊은 인생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내적 확신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가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었다고 비난할지 모르나, 이 생각은 역사의 증언과 후세의 판단 앞에 설득력을 잃는다. 그를 사로잡은 신화는 그를 단순한 직공 이상의 어떤 것이 되게 만들었다.

- 칼 구스타브 융 편, 이부영 외역,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집문당 2008, p. 90.

"한정된 존재"라는 말이 다수 현대인들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될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목표는 명문대 입학, 이십대 청년의 목표는 취업, 삼사십대 성인기의 목표는 자식들 교육비 버는 것, 오십대 이후의 목표 역시 돈 벌어 노후 대비하는 것, 그 이후의 노년기의 목표는 병원에 갖다 바치는 돈 줄여서 연명하는 것. 이러다 보니 해결책은 오직 돈, 돈 뿐인 것이다. 삶에 그밖의 목적과 의미가 있을 것인가?

푸에블로 인디언들에게는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태양의 자식들이니까. 자연과 사회 속에서 태양의 후예로서 갖추고 실천해야 할 중대한 임무들이 무한대로 널려있는 것이 그들의 인생일 것이다. 사람은 손바닥 만 한 텃밭만 가꿔봐도 농사가 단순히 '먹고 사는' 일에 그치지 않고 하늘과 땅과 관계 맺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나는 사냥을 해본 일은 없지만 조셉 캠벨의 표현처럼, 사냥은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고난을 통해 자연 속의 자기에 눈뜨게 해줄 것이다. 가족과 공동체를 돌보고 키우는 삶의 일상이란 것이 대자연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되갚는 생산 활동과 밀착돼있는 그들의 생활 속에서 경제활동은 단순한 돈벌이―또는 잉여 가치의 축적―의 수준을 넘어 세상과 우주 속의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설정하는 위대한 모색이 되는 것이다.

인디언이 아닌 우리 사회의 일원들 중에도 이처럼 위대한 모색을 해온 이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의 삶의 여정은 산업자본의 홍보대사인 이 시대의 매스미디어가 규정하고 숱한 '자기개발' 구루들이 설파해온 '성공'이라는 것의 추구와 딱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한살림공동체의 시조 장일순 선생이나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한 박원순 시장처럼 권력과 재력의 관계망 밖으로 경제활동의 범위를 확장시켜온 이들, 그리고 세상의 철저한 무관심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자신 앞의 어린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수많은 이 땅의 교육자들 같은 이들의 '성공'에 대한 정의는 세상의 돈벌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들은 개인적인 이권 확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명분을 뛰어 넘어 타인들과의 공존과 공생이라는 목표의식을 확보한 이들이다. 에고 보다 큰 자기를 본 사람들이다. 거대한 자기를 본 사람들이다. 푸에블로 인디언처럼 신적인 자기를 목격한 이들이다. 신통(神通)한 이들이다. 그런 이들은 "한정된 존재"가 아니므로 삶의 목적과 의미가 풍부하고도 깊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다. 성공했건 말았건 간에.

꼭 아버지 태양이나 그 어떤 신이 내 밖에서 나를 굽어봐주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확장된 자아를 깨닫고 의미 깊은 삶을 펼치고 있는 이들 중에는 외재적 신 따위 없이 내적인 자기확신에 이른 이들도 많은 것 같다. 물론 기존 종교의 틀 안에서 그런 경지에 이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유신론이건 무신론이건, 이신론이건 범신론이건, 그런 인간의 언어적 표현에 얽매일 필요가 있겠는가. 신적인 존재로서, 또는 나 보다 더 큰 나로서 살면 그만이다.

어떻게 신적인 존재로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신통하는가? 그것이 우리 삶의 유일한 과제임을 눈치 챈 순간부터 길이 열릴 것이다. 문인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의 말처럼, "우리 자신이 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임을 깨닫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그 순간부터는 자신의 세속적 삶이 얼마나 "한정"됐던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순간부터 더 큰 자기에 대한 꿈이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뻗어나올 것이다. 그 순간이 진정한 변화로의 '계기'가 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계기'에 목말라 한단다. 당분간 내 사색의 화두는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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