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질문 (2013/11/23)
 

© Suk Hoon Han                                                                                                                                                                          
 
 

* 제가 새롭게 만든 강좌의 수업을 위해 20여 년만에 칸트를 다시 펼쳐 들고 읽다가 든 생각을 끄적거린 글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완벽한 정확도를 갖고 인식할 수 없으니, 타인의 눈과 입을 빌려 전해 듣는 정보의 정확도는 어련하겠는가? 오감이라는 인식의 센서들의 성능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그 센서들이 모아놓은 데이터를 조합하는 우리의 두뇌 속 인지작용은 기존의 사회적 선입견과, 더 심각하게는 에고의 아집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다. 게다가 그런 왜곡과 조작의 기저에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으니, 과연 우리는 무엇을 제대로 알 수 있는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고민이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 공부를 하도록 촉구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상대주의적 글로벌 시대, 신의 사망통지가 발부되고 거대담론이 스러진 포스트모던의 시절, 결국 모든 이가 재화의 축적과 소비의 미덕만을 숭앙하게 된 21세기의 지구에서 도대체 할 일이 무엇인가? 더 이상 도덕적 당위는 설 자리를 잃었고, 본래적 가치는 냉소의 대상일 뿐이며, 아는 것이 해야 할 것과 연결이 되지 않는 세상.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을 진정성 있게 설명해주는 선생이 필요하다. 그런 선생이 던져주는 희미한 등불에라도 의지하여 자신이 할 일을 주워섬겨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칸트의 3비판서 시리즈의 최종의 질문이다. 무엇을 '바라는가?'가 아니라, '바라야 하는가?'이다. 젠장, 내 소망에 대해서도 의무감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에고를 뒤흔드는 거대한 이 질문 앞에 당황스러워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면, 그런 자신에게 어울리는 질문부터 던져봐도 좋겠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나의 소망은 충분히 나를 담아내고 있는가? 만약에 자신의 소망이 지나치게 초라하다는 깨침이 일어나거든, 원래의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우리는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 보다 온전한 나를, 나의 전부를 담아낼 소망을, 진정한 나의 아름다움을 퍼뜨릴 소망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알 수 있던 것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자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바라야 할 것은 내가 만들어낸 이유의 합당함과 아름다움을 입증해보이는 것이었다.

'수행일상 2013'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