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됨 (2014/12/29)
©
Suk Hoon Han
'존재'가
'소유'에 앞서야 한다. 한 사람이 참된 존재로 살다 가는 것이 그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인류의 숱한 스승들이
남겨준 가르침이다.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임을 깨달아 나도 그
가르침을 받아들인지 십오년이 지났다. 그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돼보려고 제 딴에는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일견, '소유'의 위력의 전시장이다. 오늘날 우리 인류의 구성원 대다수의
열망은 소유와 소비이다보니, '존재'에 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망각돼버렸다.
나라고 그 망각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게 아니다. 나도 어느 정도는
벌어서 먹고 살지만, 오십 줄에 들어서서 비슷한 연령대의 몇몇 남정네들이
자신의 처자식에게 제공해주고 있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바라보게 되면
그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소유'라는 척도에서 낙오된 자신에
대한 열패감을 맛보게 된다. 비록 나 자신은 옷가지나 신발이 낡고 구멍날
때까지 사용해도 아무런 부끄러움도 안 느끼고, 평소에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병 안사마시며 생활하지만, 내 자식이 다른 집 자식들 누리는
'소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렇다
하여
스승들의 '존재'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소유'의 방향으로
몸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한 번 깨닫게 된 귀한 가르침을 어떻게
버릴 수 있는가.
'존재'와 '소유'는 분리됐거나 상호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적어도 내게는. 당장의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매즐로우의 이론마따나.
따라서 최소한의 '소유'는 충족돼야 한다.
동시에, 온전히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불행하다.
따라서 '존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채로 무분별하게 '소유'만
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소유'는 '존재'를 위한 현실적 필요조건이요, '존재'는 '소유'를 제어해주는
상위의 주인이다. 그의 사람됨에 따라 어느 정도의 '소유'로 만족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됨을 잊어버릴 때 '소유'의 광기는
삶 전체를 집어삼킨다. 인간의 생명이 돈보다 천대받고, 인간의 존엄성이
돈에 압살당하는, 가히 '천민 자본주의'라 함직 한 오늘날 이 사회의
세태가 그것을 입증한다.
사실 나도 웬만큼 먹고 살만 하니까
선생질도 하고 스승들의 '존재'의 가르침도 자꾸 기억해내려 노력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내가 '먹고 사는'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소유'에
만족하거나 못하거나 하는 건, 다분히 나의 '존재'의 수준에 달려있다.
내가 딸들에게 '브랜드' 옷이나 신발도 맘대로 못 사주고('명품' 따위는
아예
논외로 치고), 용돈도 풍족히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이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 작금의 나의 '존재'의 수준이다. 세상의 수많은 이웃들의
결핍과 곤궁을 떠올린다면 어찌 내 가정의 기껏해야 '소비생활'이 부르주아
계층의 예외적 호사스러움에 미치지 못함을 아쉬워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십오년 수행의 결과가 이런 수준의 '존재'에 불과하다니.....
나의
'소유'의 수준에 대해 스스로 만족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나의 '존재'가
성숙해야 한다. 나의 사람됨이 관건이란 말이다. 지난 십오년간의 수행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람됨의 발전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 스스로 만족할만
한 사람됨의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 또 다시 십오년의 수행을 작정한다.
'제2차 사람됨 개발 15개년 계획'이 종료한 뒤에도 여전히 스스로가
부끄러울 따름이라면, 그 때엔 그만 내 그릇에 만족하고 저승 갈 채비를
차릴 일이다.
내가 부실하다보니 나를 키울 프로젝트가 '15개년
계획' 따위로 원대해질 수밖에 없다. 헌데, 원대한 프로젝트가 있는 여생이란 얼마나 가슴
뛰는 삶인가? 그러고 보면, 늙어가면서도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는
복을 누리게 된 것이 나라는 존재의 부실함 덕택인 것도 같다.
어쩌면, 너무 일찍 깨달아서 완전해지신 붓다께서는 노년이 심심하지는 않으셨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