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의
억제 (2014/3/29)
©
Suk Hoon Han
나는
내 딸들이 우리 집을 좋아하는 것을 자녀 양육의 최고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고3인 시시와 중2인 나나, 둘 다 성장기의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 제 공부들도 잘
하고 학교 생활도 밝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생명력이 억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억지로 학원,
과외 같은 걸 시켜본 일이 없다. 아이가 원하고 동의할 경우에만 조금씩 그런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유시간을 많이 주려고 신경썼다.
주변 친구들보다 후진 폰 들고 다니고 용돈도 쥐꼬리만큼 받지만 조금도
주눅들지도, 불평하지도 않는다. 지들 하고 싶은 것 찾아다니며 건강하고
억제되지 않은 삶을 가꾼다. 나는 자식들에게 더 바랄 것이 없다.
꿈속에서
나는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쳤다. 그 꿈속 장면의 정황과 배경,
분위기, 기분 등을 세심히 따져보니, 나는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런
억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내면으로부터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열정을 나는 왜 억제해왔을까? 그리고 그런 억제는 왜 바람직하지
않을까? 글세, 젊은 나이에는 열정의 발산이 건강한 생명력의 표출이지만,
늙은 남자의 경우에는 좀 복잡한 함의를 갖는 것 같다.
나보다 더 늙은 남자들이 애독하는 보수 일간지를 한 식당에서 무심코
집어들고 봤더니, 촌평 코너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페이스북 CEO, 스물세 살 위 오바마에게 직접 전화해 不法 사찰 항의. 항의한 사람도, 받아준 사람도 대단'
(조선일보,
팔면봉, 2013.3.15).
주커버그와 오바마 사이의 정치경제적 갈등 상황을 "스물세
살 위"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고려 사항을 끼워넣고 볼 수밖에
없었던 나보다 더 늙은 언론인들의 세계관이 잘 드러난 글이다.
20여년 연상의 인물에게는 젊은 놈이 시건방지게 정치경제적 사안에
관해서도―심지어 그것이 "불법"이라 해도― 대들어선 안된다는
의미가 들어있고, 그런 젊은이의 행동을 연장자가 포용해주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라는 판단도 실려있는 글 같다. 예전에 한 국내 소장
정치인이 불미스러운 일과 연루되어 '부덕의 소치'라고 사과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이 신문은 그에 대해서 '사십대가 부덕의 소치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며 비난했었다. 바꿔 말하면 덕은 연로해야만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뭘 모르는 철없는 젊은이들은 덕 있는
늙은이들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이 신문의
도처에 깔려있다. 늙은이들이 청년들의 생명력을 억제한다. 내
보기에는, 부자연스럽다. 내 눈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추하다.
얼마
전에 대학에서 젊은이들 키우는 벗과 맥주를 마시다가 이런 말을
했다: '쥬라식팍의 메시지가 무언지 아느냐? 그건 'Life cannot be contained'(생명력은
억제될 수 없다)이다.' 인간이 아무리 정교한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를
고안해도 자연의 생명력은 그것을 뚫고 나올 방법을 창조해내고야 만다는
말이다. 내 말을 들은 벗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생명력을
contain(억제)하는 게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즉,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생명력을 억제하고 길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맥주 한 잔 또 들이키고 나서
벗에게 고집스럽게 내 주장을 덧붙였다. '아니다, 그건 아직 모른다,
우리나라의 젊은 생명들도 반드시 억제의 힘을 뚫고 삐져나올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 거다.'
이런 내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 한 충분한
근거라도 있는가? 별로 없다. 그냥 나의 믿음이다, 이건. 나는
신앙인 아닌가. ㅎㅎ
+
나는 원로 채현국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