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진짜 주인 (2014/7/10)
©
Suk Hoon Han
[원고발췌
1]
*
저의 세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수행일상 글을 쓰기가
어려워, 몇 해 전 첫째 책 작업하던 때처럼 당분간은 현재 집필
중인 원고의 일부를 여기에 게시하겠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1960~80년대에
TV에서 방영됐던 아동용 애니메이션 및 시중의 인기 만화책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한 중년 남성의 자기성찰의 과정을 심층심리학적으로
그려보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 영성을 건드릴 것이고, 또 성인용입니다.
이 싸이트에 게시되는 내용은 초고에 불과하므로 책이 나오기까지
십수 번은 수정될 것입니다.
S는 J가
40년 쯤 전에 텔레비전과 만화책으로 접하고 뇌리에 각인해두었던 일본산
만화 ‘마징가 젯트’의 마지막 회를 언급하고 있었다. S같은 젊은이가
그런 만화의 구체적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도 예외적이지만, J
자신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어린 마음’을 해부하는 심리학적
메스의 냉혹한 예리함은 당혹스럽기도 했다. 종장에서 마징가 젯트와
그 조종사 쇠돌이(일본 명 가부토 코지)는 새로이 등장한 미케네 제국의
강력한 로봇 군단의 파상 공격에 초토화되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 장면은 어린 J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흠, 내가 초등학생일
때 그 만화를 그렇게 좋아했던 게 그 로보트를 파괴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구요?
그럴 리가 있나요? 내 어린 마음으로 영웅시했던 로보트와 주인공이었는데,
숭배했던 영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게 너무 안타까웠던 것이겠지,
파괴하고 싶었다니!”
J의 진중한 항변에 대해 S는 오만한
선생의 태도로 답했다.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단순한 건가요,
어떤 행복한 아이는 그저 순진하게 마징가를 영웅시했을지 모르지만,
실장님은 마징가의 고투 속에서 실장님 자신의 삶의 고투를 보셨기 때문에
이야기가 좀 더 복잡해지죠. 매일 적들과 싸우며 부서지던 마징가와
집에서 또 학교에서 매일 바깥세상과 싸우며 상처 입던 자신이 비슷하다고
느끼셨겠죠.”
“아, 그 얘기로군. 하지만 세상에 어떤 아이가
자기를 파괴하고 싶어 하겠어요? 안 그래요?”
J는 마치 가르쳐
달라고 청하는 학생처럼 S에게 물었다.
“음..... 프로이트 이론에
‘타나토스’라는 ‘죽음 본능’의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제 생각에는요,
실장님의 열 살 먹은 자아가 부모님과 또래 집단과의 갈등으로 심하게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실장님 마음 깊은 곳의 진짜 주인이 그 상처
입은 표면의 자아를, 말하자면 컴퓨터게임처럼 ‘리셋’하려 한 것 같다는
말씀이었어요.”
“내 마음속에 내 ‘진짜 주인’이 있다?”
“물론이죠,
마징가가 마징가 자신의 주인인가요? 아니죠, 마징가를 타고 앉아있는
조종사 쇠돌이가 마징가의 주인이잖아요. 그처럼 실장님이 자신이라고
믿는 자아가 실장님의 주인이 아니라, 실장님 마음속에 실장님의 진짜
주인이 타고 있는 거죠.”
J는 S를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전문가로 간주하고 있지 않았다. S는 전문가의 조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J는 그녀의 ‘설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주
흥미로운 말씀이긴 한데요, 마징가의 주인인 쇠돌이는 결코 마징가를
파괴하고 싶어 하진 않았다구요.”
“글쎄요, 겉보기엔 그랬겠으나,
실은 쇠돌이건 시청자들이건 다 내심 낡고 고장난 마징가를 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번쩍거리는 최신형의 새로운 ‘그레이트
마징가’가 압도적인 위력을 보이며 등장한 장면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 아닌가요? 그들이 내심 애타게 고대했던
환상적인 새 자아가 도착했으니까요.”
‘마징가 젯트’의 텔레비전
시리즈의 방영이 한국에서는 도중에 중단됐기 때문에 1970년대 당시의
한국 어린이들은 만화책으로나 마지막 회를 접해야 했다. 시리즈 최종회에서
적들의 파상 공격에 반파된 마징가 젯트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레이트 마징가(또는,
한국 TV의 후속 시리즈의 ‘찡가’)는
마치 깨달음에 이르러 부활한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도 같이 적들을
손쉽게 제압해버렸다. J는 그 장면이 왜 그렇게도 감동적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니, J의 삶 속에는 그런 것들이 꽤
많았다. 왜 그렇게도 끌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계속 강하게 끌리는 그런 것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