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박쥐의
비밀 (2014/8/2)
©
Suk Hoon Han
[원고발췌
3]
*
저의 세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수행일상 글을 쓰기가
어려워, 당분간은 현재 집필
중인 원고의 일부를 여기에 게시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예전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한 중년 남성의 자기성찰의 과정을 심층심리학적으로
그려보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 영성을 건드릴 것이고, 또 성인용입니다.
1970년
무렵, 텔레비전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은 대개 저녁 6시에
시작했다. 6시만 되면 동네 골목이 조용해졌던 것을 J는 기억한다.
그 시절, 도시 주택가의 아이들은 요즘과 달리 학교에서 돌아온 뒤부터
저녁에 해질 녘까지 종일 골목에서 뛰어놀았다. 그러나 6시만 되면 그
악동들이 텔레비전을 보려고 죄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려 골목이 텅
비곤 했다. 대다수가 가난했고 문화 콘텐츠가 지극히 척박했던 당시에
저녁 6시의 TV만화는 아이들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소중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만화들은 아이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J는 언젠가 어머니에게
벌을 받아 6시 만화를 보지 못하고 숙제를 했어야만 했던 순간의 통분을
40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할 수 있다.
J에게는특히 TBC 동양방송에서
방영했던 ‘황금박쥐’의 도입부가 기억 창고에 깊이 각인됐다. 도입부는
“으흠하하하하!”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시작했다. 바로 황금박쥐의
웃음소리다. 황금박쥐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등장할 때에도 이 웃음소리를
동반했다. 흑백텔레비전의 비좁은 화면을 무한공간처럼 종횡무진하며,
예의 웃음소리와 함께 마치 상서로운 예감을 던져주기라도 하듯 황금빛
해골 영웅이 검은 망토를 걸치고 등장하면, 당대에 인기를 끌던 남성
사중창단인 ‘블루벨즈’의 주제곡이 울려퍼졌다. “황금바-악쥐,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오느냐, 황금바-악쥐.” 이 주제곡은 J뿐 아니라 수많은
당시의 아이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빛나는 해골은
정의의 용사다, 힘차게 나르는 실버배터.
우주의 괴물을 전멸시켜라.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느냐, 황금박쥐.
박쥐만이 알고 있다.
다소
비장함이 감돌지만 박력도 있는 단조의 이 노래는 앞으로 펼쳐질 황금박쥐의
영웅적 활약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다지도 이 도입부가 강렬한
인상을 J의 뇌리에 심어놨을까? 그건 ‘마징가 젯트’의 피날레 장면과는
또 다른 기분과 정서로 채색된 인상이었다. 상서로운 예감이 던져주는
기묘한 흥분감과 그 예감 속의 세계로 속절없이 빨려들어가게 되는 연약한
나의 자아! J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황금박쥐’ 주제가 동영상을
보게 되면 40여 년 전의 형언키 어려운 그 기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곤
한다. 과연 그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 안의
어떤 힘이 그로 하여금 그것을 알아내라고 부추기는 것만 같았다. 단순히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너무 모호하다. 반평생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음향과 그 장면에 똑같은 기분으로 반응하는 그
무언가가 자신의 내면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무엇인가?
.....
“그러니까.....
지금의 이 현실과는 아주 다른 어떤 사건? 또는 세상? 뭐 이런 것에
대한 기대감이 불안과 뒤섞여있는 그런 기분인가요? 네, 그렇다면.....
황금박쥐가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가 해가 질 무렵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건 밝은 낮으로부터 어두운 밤으로 가는 전환의 시점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는 심층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밝은
의식의 수준에서 어두운 무의식계로 들어가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구요.
그렇다면 황금박쥐는 실장님의 마음속에서는 무의식 층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수문장일지도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