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 고차원의
교과서 (2014/9/6)
©
Suk Hoon Han
[원고발췌
5]
*
저의 세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수행일상 글을 쓰기가
어려워, 당분간은 현재 집필
중인 원고의 일부를 여기에 게시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예전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한 중년 남성의 자기성찰의 과정을 심층심리학적으로
그려보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 영성을 건드릴 것이고, 또 성인용입니다.
['우주소년
아톰' 중]
삶의 모순을 다루는 이야기로 J가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에는,
지구인과 공존하게 된 초식성 외계인들이 처음으로 지구인에게 받은
구운 새고기를 먹고 나서 그 맛에 반한 나머지 갈등하면서도 새 구이를
계속 먹게 되고, 자신이 잡아먹은 새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죄하는 내용이 나온다. 육신의 유혹을 도저히 이기지 못해 죄를 저지르고,
그러고 나서 후회하며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모습, 그러한
인간사의 적나라한 모순을 테즈카 오사무는 만화다운 단순미로 그려냈던
것이다. 아톰 만화를 ‘안력(眼力)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는’ 태도로
정독하던 어린 J의 내면에서는 선과 악에 대한 복잡한 감응이 진동하고
있었다. 위대한 만화책은 어린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바른생활’ 교본
식의 표면적 ‘착함’을 맹종하도록 강요하기보다는, 자신 안의 종잡을
수 없는 ‘착함’과 ‘못됨’을 드러내보고, 그 귀결을 스스로 체험함으로써
그 의미를 깨닫도록 인도해주었다. 아동기에 J는 ‘바른생활’을
따르기보다는 내면의 욕구를 표출하는 쪽을 무의식적으로 택했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맞기도 했으나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의
추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아톰과 같은 만화작품의
영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만화책 아톰에는 아동용 서적답지 않게
단순한 이분법적 권선징악의 교훈을 넘어서서 세상의 모순과 악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J가 매우 슬프게
읽었던 에피소드로는 로봇의 평등한 대우를 주장하다 인간 군중에 의해
파괴되는 인권, 아니 로봇권(?) 운동가인 한 로봇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중략]
사회의 소외계층이 직면한 불의를 우회적으로 고발한 테즈카의 시대를
앞서가는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조금씩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조우하기
시작하던 어린 J에게 사회 정의라는 추상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을 심어줬다. J가 청년기에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활동가가
되지는 않았으나, 어른이 된 이후 줄곧 사회의 구조적 악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성숙하게 된 것이 만화책에서
받은 깊은 인상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톰 같은 책이 한 어린이의 일생에 지속적으로 끼치게 되는 영향은
상상 외로 클지도 몰라.”
J는 자신의 선악관, 정의관 같은 가치관
형성에 아톰과 같은 작품이 끼쳤을지 모를 영향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고,
이에 S도 맞장구를 쳤다.
“아동의 발달단계에서 가치관이 형성되는
민감한 시기에 한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 있다면, 그게 위대한
고전 명작이든, 아니면 싸구려 만화책이든 평생 지속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톰이 싸구려 만화책이란 말씀은
아니구요. 결국 실장님은 ‘착하고 올바르게’와 ‘정의의 승리’라는
순수한 메시지를 평생에 걸쳐 내면화하신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