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분석 (2014/10/5)
©
Suk Hoon Han
[원고발췌
7]
*
저의 세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수행일상 글을 쓰기가
어려워, 당분간은 현재 집필
중인 원고의 일부를 여기에 게시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예전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한 중년 남성의 자기성찰의 과정을 심층심리학적으로
그려보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 영성을 건드릴 것이고, 또 성인용입니다.
M박사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표정과 말투로 봐서는 인자하고 다정한 사람인
것 같지만, 그간의 분석 과정 중 J에게 공감해준다든지, 연민을 보인다든지,
또는 친근하게 대해주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정신의학자의
직업적 미덕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J에게 M박사는 온화한 겉모습과는
달리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인 정신분석가일 뿐이었다.
오늘의
분석 시간에 J가 꿈 이야기를 했다. 아들과 동물원에 놀러간 꿈이었는데,
원숭이와 사슴을 본 것이 기억나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는 어떤
짐승의 우리 앞에서 J가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장면도 있었다. 언제나처럼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J의 이야기를 경청한 M박사는 각 장면과 등장인물
등에 대해 J가 느꼈던 감정에 관해서 상세히 묻고, 동물과 인물들로부터
연상되는 단어나 이미지 등이 없는지도 물어봤다. 그는 한참 메모를
한 뒤, 평소와는 달리 다소 긴 설명을 풀어놓았다.
“실장님의
묘사에 따르면 꿈에 나온 아들은 아마도 실제 아드님이 아니라 실장님
자신의 어릴 적 자아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전에도 유아기 회상에서
옛날의 창경원 동물원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이 꿈은 실장님의
아동기 경험을 암시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중요한 건, 이런 꿈이
치유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눈을 크게 뜨고 몰입해
듣고 있는 J에게 M박사는 무표정하고도 단조로운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치유의
목적을 가진 꿈속에서는 우리 자신이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죠. 자신이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성향을 잘 볼 수 있게 되고, 드물게는 어떤 개인적
성향의 시초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게, 저......
내가 왜 이런 놈이 됐는가 하는 그 원초적 원인을 꿈이 보여준다는 말씀인가요?”
J의
질문을 들은 M박사는 평소에 잘 드러내지 않는 미소를 입가에 슬쩍 머금었다.
“그렇죠,
우리가 왜 이런 놈들이 됐는가 하는 그 원인을 꿈이 보여주죠.”
M박사가
자신의 자기비하적 표현에 대해 긍정적으로 동의해줬음을 J는 확인했고,
J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M박사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리고
벌거벗은 꿈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요, 우린 어릴 때 옷을 안 입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돌아다녔으니까.”
“네.....
저도 요즘 들어 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일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동기의 만화나 장난감을 사 모으는 것도 비슷한 심리겠죠?”
“그럴지도
모르지만요, 그런 게 어릴 때가 그리워 단순히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퇴행인지, 아니면 어릴 때의 자기를 직시해서 현재의 자아를
제대로 키워보려는 성장 욕구를 나타내는지는 단언할 수 없죠.”
이
말을 듣고 J는 이 냉정한 정신분석가가 미묘하게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음을 알려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M박사는 한 가지 더 의미심장한
설명을 보탰다.
“그리고 벌거벗은 꿈은 말이죠, 실장께서 어떤
이성 상대에게 자신의 벌거벗은 실체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구의 표출일
수도 있는데요......”
이 말을 듣는 순간 J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M박사는 그것을 감지했으나 아무 말도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
욕구는 말이죠, 아동기의 성적인 좌절 때문에 일어난 것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