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성

양면성 (2015/9/13)

꿈. 늘 타고 다니는 전철을 타고 가다가 환승하려 하는데 갈아탈 노선을 잃어버리고 지금 내가 어느 노선의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도무지 파악을 할 수가 없다. 별 수 없이 한 낯선 역에 내렸고, 거기서도 또 한참을 헤매고 살펴도 예가 어딘지 모르겠다. 마침내 물건 파는 중년의 상인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험상궂은 사내는 의외로 친절하게 이렇게 알려줬다: "여기는 개아역이구요, '개성'이라고 할 때의 '개' 자와 '나'라고 할 때의 '아' 자를 쓰고, 옆의 역은 '평부' 역입니다." '個我'역과 '平夫'역이라..... 개별적인 나와 일반적인 나. 또는 개성화의 길로 가는 나와 무리에 속한 평범한 나. 나는 개성화의 길로 흘러들어왔건만, 그 여정의 전모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인가?

같은 밤의 또 다른 꿈. 과거에 내쳤던 제자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찾아왔는데, 그의 어머니가 정성들여 죽을 끓여놓았다. 나는 그 죽을 잘 퍼서 제자가 먹도록 차려주었고, 그가 그것을 잘 떠먹는 모습을 보고 흐뭇했고 안심했다. 내가 제자에게 베풀었던 알량한 도움은 실은 내가 비판해마지 않는 '떠먹여주기 식(spoon-feeding)' 주입식 교화에 불과했던가, 아니면 나는 진심으로 제자를 위해서 가장 몸(과 마음)에 좋은 사랑이 담긴 죽을 먹여주고 싶었을 따름인가? 이분법적 판정이 불가능하다. 둘 다 맞다.

올해에 내가 떠맡게 된 인성교육이라는 영역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을 내가 하게 됐을까? 나 정도의 인간이 한 공동체의 '사람 됨'을 다듬는 일을 맡는다는 게 물론 말이 안된다. 그러나 누구인들 그런 일을 맡을 자격이 있겠는가? 이건 내게 주어진 잔이다. 내가 잔머리 계산으로 거부할 잔이 아니다.

나는 어려서는 인문학에 경도됐고, 좀 나이가 든 삼십대에는 사회과학 훈련을 받았다. 네오막시즘의 시각도 꽤 친숙하다. 이런 지적 배경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정부의 인성교육 정책 같은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적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진짜 필요한 '구조적' 개혁은 은폐한 채, 자본주들의 입맛에 맞도록 인력의 성향을 길들이려는 가증스러운 술책이 바로 인성교육정책이라며. 게다가 인성교육이라는 주제를 놓고 수많은 꾼들과 장사아치들이 꼬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정부가 뭘 시작하면 돈이 풀리니까. 나도 그들 틈에 끼여 한 건 올리려는 모리배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나는 타자들의 나에 대한 평에 신경을 끄고 사는 독불장군maverick 성향이 강해서 그냥 제 멋대로 제 갈 길을 가지만.

궁금한 건 이런 거다: 나는 왜 이런 일에 투입된 걸까? 이것이 나의 개성화의 여정에 들어맞는가? 나는 성급한 이분법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교묘하게 양면성을 고수해야만 하는, 전혀 실익없는 역할을 배정받은 걸까? 물론 궁극의 이해득실의 정산은 내 머리가 할 일이 아니다. 궁극의 이해득실의 정산에서는 利와 害가 사라질 게다. 어쩌면 숱한 모리배들 중에서 그나마 내가 이 일을 맡는 게 내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위하여 나은 선택이 될런지 모르겠다.

God always works in mysterious ways. 신의 의도를 혜량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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