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은 '방법'보다 교사 (2015/7/18)
 

© Suk Hoon Han                                                                                                                                                                            

 

* 아래의 글은 제가 7월23일의 한 포럼에서 발표하게 될 내용의 원고입니다. 제가 속한 기관이 주최하는 행사라 손님들의 말씀을 많이 듣기로 하다보니 실제로 저는 약 20분 밖에는 발언할 여유가 없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주세요~~.



인성교육: '방법'보다 교사

들어가는 말

인성의 정의에 대한 학계의 견해가 아무리 다양하고, 인성교육에 대한 교육계의 주장이 아무리 불일치한다 해도, 우리는 인성이라는 것을 ‘사람됨’이라는 모순될 정도로 포괄적인 용어로라도 풀어 쓰고, 그러한 사람됨을 공동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교육을 구상하고 실행하지 않을 수 없는 계제에 다다랐습니다. 문제는, 이렇게라도 인성교육을 구상하고 실행하려고 하지만 그 방법이 묘연하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실행된 여러 인성교육 방법들이 성공한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이 방법들은 성공하지 못했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성교육에 접근해야 할지 궁리해봐야 하겠습니다.

1. 인성교육, 왜 못했나?

- 기존 인성교육 방법의 실패

20세기 후반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학교폭력, 왕따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그리고 미국 등의 서구 산업국가에서는 약물, 중도탈락과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학교에서 수많은 유형의 인성교육을 시도해왔습니다. 한 때 ‘알면 곧 행한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믿음을 계승하여 가치관에 대한 지적인 토론 위주로 도덕교육이 성행한 적도 있고, 윤리적 덕목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함으로써 도덕적인 사회인을 만드는 것을 강조한 일도 있으며, 사회에서 타자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함에 있어 감정의 인식과 표현을 부각시킨 수업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각각의 방법에는 나름의 타당한 논리가 내재돼있고, 어느 한 방법이 교육효과 면에서 뚜렷한 비교 우위를 점하지는 못한 상태로 서구에서 점차 성숙과정을 거쳐 온 인성교육은 우리나라에 수입돼서는 이렇다 할 교육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봅니다.⑴

서구와의 단순비교는 부당하지만, 각각의 불완전한 인성교육방법이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충실히 실행이 됐었더라면 좋겠건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인성교육을 윤리적 덕목에 관해 공부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마치 영어를 품사론으로 배우는 것과도 같은 방식이 돼버려, 동사, 명사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실제로 영어를 사용할 줄은 모르는 것처럼, 정직과 배려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실제로 정직해지거나 배려심이 생기지는 않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정직과 배려를 생활 속의 실천을 통해 내면화하는 방법도 결국엔 입시문화 속에서 정직과 배려에 대한 주지적 이해를 묻는 지필고사로 변형되거나 ‘비자발적 자원봉사(involuntary volunteer service)’와 같은 형식적 활동으로 전락하기 일쑤였고, 서구에서는 나름의 성과를 보여 온 감정이해수업도 반짝 유행하고 지나가는 관(官)주도성 시범행사가 되어 흔한 ‘인성교육 사례집’ 한 권으로 남을 뿐, 학교교육 전반과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나름의 인성교육 ‘방법’들이 세상에 나와 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셈입니다.

- 학교교육의 제약

20여년 활동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인성교육 단체로 자리 잡은 character.org는 성공적인 인성교육을 위하여 단위 학교가 준수해야 할 11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학교 공동체가 진정성을 갖고 일관되고, 포괄적이며, 성실하게 모든 노력을 인성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이는 우리의 학교 실정에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요구사항이라 하겠습니다. 단적으로, 우리의 학교에서는 인성이 교육목표의 최우선순위를 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성 이외에도 학업성취도, 진학률, 행정적 요구사항, 교사집단의 지향점 등 우선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사안들이 산재해있으니까요.

사실, character.org의 조언처럼 한 학교가 철저히 인성교육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느 나라의 경우든 힘든 일이겠지만, 학교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아동 성장의 ‘기본’에만 충실히 임해줘도 우리 아이들의 인성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즉, 아이들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기본은 최신의 의학, 영양학, 체육학, 뇌과학 연구에 의하여 제시된 것들로,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은 오늘날 산업사회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이러한 기본 조건들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인지, 정신·심리, 신체 건강상 적지 않은 손상을 입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을 먹고, 친구들과 뛰어놀 시간도 없어 스마트폰 게임이나 하고, 학원 다니고 숙제하느라 잠도 잘 못자는 한국의 아이들의 경우, 그 손상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지’ 못하는 게 어디 학교만의 잘못일까요?

- 학교는 사회의 거울

사회학적 금언에 ‘학교는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학교가 아이들의 인성의 함양에 진정성과 적극성을 갖고 매진하지 못하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회적 상황에서 한 사람의 인성, 또는 ‘사람됨’이 가장 중시되는 기준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무엇보다 사람됨을 키우는 기본인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기’를 우리의 가정이 지지해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성적이나 진학에 앞서 아이가 잘 뛰어놀고 푹 잠잘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녀양육관이 변화해야 하고, 신체적 건강과 발육에 좋은 음식을 선별해 먹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경제적 형편과 더불어 인식의 전환을 지지해주는 문화적, 시간적 여유도 필요합니다. 장기 불황 속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맞벌이 학부모들에게는 사치스러운 전제조건일 수 있습니다.

경제적 단위이기도 한 가정생활의 ‘질’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리의 일터, 즉 근로현장은 워낙에 근면, 성실을 강조하여 초고속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기도 했었지만, 외환위기 사태 이후로는 갈수록 더 경쟁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환경이 돼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학교도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갈수록 더 경쟁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환경이 돼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근로현장이 이제는 인성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역설 역시 시험과 성적에 매진하도록 조련돼온 우리의 학생들에게 이제 와서 인성을 요구하는 교육적 역설과 닮아 있습니다. 닭장 속에 가두고는 서로 쪼며 경쟁하라고 내몰고 나서 인성이 나빠졌다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과연 경쟁이 극도로 치열한 한국 사회의 틀 안에서 진실로 인성을 중시하는 학교를 가꿀 수가 있는 것일까요?

2. 인성교육,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방법을 개발해야 하듯이, 인성교육을 위해서도 훌륭한 방법을 개발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인성이란 대단히 함의가 넓고, 깊고, 복잡한 그 무엇이고, 우리 사회의 가치란 여러 모로 제한됐으며 실상 늘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폭넓은 ‘인성’을 이토록 유한하며 유동적인 ‘가치’에 맞도록 효과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란, 생각해보면 어떤 일련의 ‘방법’으로 귀착되기에는 불가능한 과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⑵ 마치 우주여행이 어떤 항공우주기계적 방법의 고안만으로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어렵고, 사실은 도저히 완전히 예측할 수는 없는 미지의 상황 속에서 여행을 감행할 우주비행사의 역량과 더불어 그의 용기, 담대함, 침착함, 긍정성과 같은 사람됨, 즉 인성에 의하여 완수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의 인성교육 또한 미덥지 못한 이런, 저런 방법만 개발하기보다 인성교육을 실행하는 조종사, 즉 교사의 역량과 사람됨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요?⑶ 특히나, 사람됨을 구성하는 인간 내면이 우주공간처럼 광활한 미지의 영역이라는 심층심리학적 입장에 동감한다면 말이죠.

제가 아는 존경할 만한 선배 한 분이 자식농사에도 성공하여, 그분 자녀들의 훌륭한 성품과 뛰어난 역량이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더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습니까’라는 저의 어리석은 질문에 그 선배는 이렇게 답해줬습니다: “먼저 부모가 사람이 돼야지.” 저는 방법을 물었는데, 선배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모의 사람됨을 말했습니다. 존재(be)가 방법(do)에 우선한다는 말입니다. 인성교육에도 똑같은 이치가 적용되지 않을까요? 교사의 인성이 훌륭하면, 그의 인성교육도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학생을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교사가 존중과 배려의 미덕을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부지불식간에―즉, 교육학에서 대단히 중시하는 ‘숨겨진 커리큘럼’에 의해―, 그 교사의 인성에 유의미한 방식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반면, 학생을 함부로 대하는 교사가 존중과 배려에 관해 아무리 멋진 방법을 총동원하여 수업을 해도 학생들은 그 덕목의 중요성에 공감하지 못하겠지요. 민주시민교육을 권위주의적으로 실행한다거나, 창의성 교육을 규격화된 틀 속에서만 진행하는 것 등도 유사 사례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성교육의 주요 과제는 어떻게 하면 교사의 인성을 훌륭하게 만드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⑷ 그러고 보니 우리의 문제는 더더욱 난감해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 논의를 밀어붙이자면, 교사의 인성 함양을 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가 자신의 인성의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의 수준과 상황을 알지 않고서는 어디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논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교사의 자기인식이 선행돼야 하고, 이를 위해 교사의 자기성찰이 요청됩니다. 교사의 성찰을 통한 자기인식은 그가 맡은 인성교육의 실행 이전에 선행돼야 하고, 또한 인성교육의 진행 과정 내내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근육을 단련하여 육체적 힘을 키우는 데 시간이 걸리듯, 인성과 같은 정신적 힘의 강화도 시간을―기나긴―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성찰을 통해 자기인식을 구하는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실행할 때, 이 교육은 학생의 자기성찰과 인성 성숙이라는 한 과정과 교사의 성찰과 성숙이라는 또 한 과정, 즉 두 개의 과정을 병행시키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를 ‘교사와 학생이 동반자 관계를 맺는’, 또는 ‘교사-학생 동행의’ 인성교육과정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교사와 학생 양자의 성찰 및 자기이해의 과정은 지성과 감성을 모두 사용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이 비록 20세기를 풍미했던 북미 교육학에서 지적 영역과 정의적 영역을 분리하여 다뤘던 스타일과는 상이하겠으나, 성찰과 자기이해 양자는 지적인 사고와 통찰을 요청하며 자기이해는 감정과 무의식적 정동과의 대면을 요청하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지성과 감성의 결합은 자기성찰에서 지향해야 할 새로운 인식의 스타일이라 하겠습니다.⑸ 인성은 주정적 요소와 주지적 요소 양자의 결합에 의해 성숙하는 것이며, 전술한 character.org의 주된 원칙 중 한 가지도 사고, 감정, 실천의 통합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학술적 경계와 규칙은 또 다른 면에서 재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철학사적으로는 칸트의 현상계와 예지계 사이의 인식론적 분리까지 논해야 하는 거창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약술하자면, 과학과 종교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의 자기성찰과 감정 돌봄의 부인할 수 없는 유용성을 고려할 때, 과학과 종교성의 통합을 교사-학생 동행의 인성교육과정이 감행해야 합니다. 감정의 무의식적 원천을 논함에 있어 신화와 정신의학을 접목시킨 C.G. 융의 분석심리학적 인성론을 차용한다든가 선불교에서 뻗어 나온 마음 돌봄mindfulness 명상을 실천하는 등의 방식이 이런 경우에 속하겠습니다. 명상의 효용성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의 눈부신 성과는 이성과 영성(spirituality) 간의 경계의 재편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⑹

지성과 감성과 영성을 끌어안는 성찰과 자기이해를 실천하는 교사는 학생의 인성교육의 동반자가 됩니다. 그럼으로써 교사는 학생들의 자아의식의 작용과 그들의 혼란과 분노와 꿈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사고와 공감을 요청하는 인성교육과정의 실습을 통하여 교사는 자신과 학생에 대한 보다 총체적이고 심층적인(depth-psychological) 인식에 다가갑니다. 바로 이러한 교사의 동반자적 역할 때문에 학생들은 교사를 진지한 인격성숙의 가이드로 수용하게 되고, 나아가 양자 간의 인간적 진정성의 교환은 상호 이해를 넘어 존경심에 가닿을 수 있습니다. 이 교육과정이 성공적으로 실행될 경우, 학생과 교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 다양한 교과 내·외 활동을 통해 주요 인성 역량 함양
      ; 인성은 자긍심, 자기주도성, 공감, 연민, 정의감 및 그 밖의 내면화된 가치관 등 포함
      ; 역량(competency)은 자기성찰능력, 의사소통능력, 협동력, 사고력, 창의력 등 포함⑺

교사: 교과 내용과 자신의 인성을 연결시키는 교과 연구를 통해 자기이해 심화
      ; 학생의 인성교육과정을 지도하며 자신의 인성 역량 강화
      ; 학생의 인성에 대한 이해 심화

프로이트는 ‘호감을 갖지 않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지만―감정이 지성과 분리돼선 안 된다는 것이죠―, 교사가 동반자적 관계에서 학생의 깊은 호감을 사게 되면 무엇을 설명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즉, 교사와 학생이 인성 성숙의 동반자적 관계에 동승하여 상호 공감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면, 무슨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나름의 교육적 성과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이런 방법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논의는 본 발표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인성교육의 ‘방법’은 주지적이기보다 실천적이고, 명제적이기보다 서사적이며, 학교생활 전반과 통합돼있고, 잠재적 커리큘럼으로써 작용될 때 그 효과가 커짐을 지지하는 다수의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도덕을 가르치는 것’을 구분해야 하듯이 인성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인성을 가르치는 것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⑻ 우리는 전자를 택해야 합니다.

혹, ‘도덕적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은 표현에서 도학혁명을 꿈꾼 조선의 사대부라든가 신정국가 수립을 꿈꾼 제네바의 칼뱅을 떠올리며 부담스러운 윤리적 압박감을 느끼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은 저 자신이 그런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자신감이 약한 저와 같은 평범한 개인이 교사집단에도 많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보고, 그런 분들께도 ‘도덕적으로’, 아니 ‘인성적으로 가르치는’ 인성교육에 동참해보실 것을 권하겠습니다. 지천명을 훌쩍 넘기고 보니, 세상에 도덕적 완성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꿈을 꿀 수는 있습니다. 이십대에 갓 부임한 교사에게 도덕적 완성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그가 학생과 대면하는 매일, 매일을 조금씩이라도 자신을 키우는 과정으로 끌어안아주려는 마음을 먹을 것을 기대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교사의 모습이 인성교육의 교재입니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선생 자신을 가르칩니다. 교사는 자신의 완벽한 도덕성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간적 향상을 추구하는 인간적 진정성, 또는 진정한 인성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 매일 조금씩 자신의 향상을 추구하다보면 언젠가 훌쩍 커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하버드대의 사회심리학자 에이미 커디(Amy Cuddy)는 TED.com의 명 강연에서 “Fake it till make it!”라고 표현했습니다. 도덕적인 척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도덕적으로 돼있을 것이라는 말이죠. 이를 저의 은사이신 필립 잭슨 교수님께서는 “상향적 위선(upward hypocrisy)”이라고 부르셨습니다.⑼ 저는 조금 표현을 순화하여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비록 지금 완전하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삶만큼 귀한 것이 또 있을까요?

3. 교사와 학생을 위한 자기이해수업

이와 같은 교사-학생의 동행관계에 터한 인성교육과정은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발전될 잠재성이 높은데, 이는 기존에 국내외 교육계와 학계에 이미 제시된 학생 대상의 수많은 인성교육 방법, 프로그램 등을 교사-학생 동행 방식으로 재개발하여 교실환경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존의 수많은 방법들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critique) 과정 또한 교사연수 등을 위한 활용 가치가 높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방법을 선정하여 재개발/적용하게 되던 간에 교사와 학생 양자의 자기성찰에 터한 양자 간의 의사소통과정에는 교사와 학생 각각의 인성을 형성하게 된 다양한 내적, 외적 요인들에 대한 고려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교사-학생 동반 인성교육과정이 기존 교과 내에서나 비교과적 활동 속에서 실행될 경우, 교사의 자기성찰과 학생의 자기성찰, 또 학생의 인성에 대한 교사의 인식에 포함시킬 수 있는 논제들의 영역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림. <교사의 자기성찰이 핵심을 이루는 인성교육과정이 학생의 인성과 만나는 지점 및 교사와 학생의 인성에 끼쳐지는 다양한 내·외적 영향>

위의 그림에서 가장 바깥의 직사각형은 거시적 사회이고, 왼쪽의 사각형은 학교교육을 포함한 교육체제 전체를 나타냅니다. 그 체제 안의 교사는 학교와 학생의 외부, 즉 사회 환경의 다양한 영향의 주체들을 비판적으로(주체적으로) 인식하고 그 영향에 의해 형성된 자신을 인식하며, 궁극적으로 고유한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인식의 바탕 위에 교사의 역량(지성·감성을 아우르는)이 성숙하고, 이러한 역량을 통하여 (선정된 기존 방법을 재해석/적용한) 그만의 개성 있는 인성교육과정이 도출됩니다. 이 과정 안에는 학생의 성장과 인성 형성과정에 끼쳐진 다양한 내·외적 영향에 대해 축적하게 된 교사의 인식이 담겨있습니다.⑽

이와 같은 기본 틀은 다양한 교과와 비교과 인성 수업 및 프로그램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수학교사는 자신이 어떤 정치, 경제, 또는 문화적 영향에 의해 수학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성향을 형성하게 됐는지 성찰하여 이를 바탕으로 수학 교과 내 콘텐츠들이 자신의 인성과 교류하는 점들을 추출해내서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가 제시한 ‘수학적 인성’의 내용에 대해 학생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긍정적, 부정적 태도, 관점, 반응을 윗 그림 오른쪽의 구(球)에 해당하는 일종의 학생 인성형성모델에 터하여 해석해보는 토의를 통하여 교사와 학생 모두 주어진 수학적 콘텐츠가 각자의 인성과 교류하는 부분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삶의 경험에 대한 상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성과 감정을 수반하는 작업이 됩니다.

이런 과정은 교사가 자신의 전공인 수학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흥미를 갖고 있을 경우에 그 내용이 더 풍부해지겠고, 나아가 학생의 연령대에 어떤 내적 성장 기제가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식견을 교사가 소유하고 있을 경우에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기 때문에, 실행 이전에 사전 교육이 제공될 필요가 있습니다.⑾ 또한, 예컨대 수학의 한 부분을 통하여 특정 연령의 학생들의 인성에 접근한 교사들의 사례가 이를테면 경희대 인성교육센터의 웹 포털 등을 통해 축적되고 교류된다면 이 ‘방법’의 효용성은 차츰 증대될 것입니다.

4. 이렇게 한다고 될까?

전술한 ‘교사-학생 동행의 인성교육과정’은 교사에게 자기성찰을 감행하려는 내재적 동기유발이 발생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융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교사가 자기실현의 도정에 오르기로 자발적으로 마음먹는 것이고, 유교적으로 말하자면 교사가 성학(聖學)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고,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교사가 견성(見性)의 길의 도반이 되는 것이며, 기독교 교육적으로 말하자면 교사가 사회적 기능을 넘어 영적 성장의 길의 사도가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무리한(?) 요구를 전제로 삼는 교육방식이 현실성이 있을까요?

20세기의 공교육은 종교적 영성을 퇴출시켰고, 동시대의 교사관은 주지적 지식전수나 인지발달의 조력자 기능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정보처리작용 너머의 심층의 인성을 외면했습니다. 현대문명의 특이점이라 할 수 있을 이러한 20세기적 교육의 모습과 현대 공교육의 인성교육 실패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세계는 문명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우리가 우리의 후대를 교육하는 방식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지식 교육에 인성을 결합시킴에 있어 정신의 ‘심층’이나 영성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전근대로의 퇴행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오래된 미래’를 다시 꿈꾸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대한 시대적 변화를 우리 교육계가 수용할 수 있을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합니다.

- 교사의 지적 역량에 과도하게 치중한 한국의 교원양성 및 임용 과정에 대한 반성이 교육계 내외에서 증대하고 있다.

- 한국의 교사집단의 우수한 지적 역량은 그들의 자기실현 욕구(Maslow식)가 높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상당한 단서가 된다. 자기실현 욕구는 전인성에 대한 욕구이며 필연적으로 인성의 심화와 확장을 촉구한다.

- 기계화, 정보화가 만연되는 분위기 속에서 교사 집단의 주류를 이르는 중년연령대에 근접하는 교사들은 교직을 통한 내적 고유성의 실현과 삶의 의미 추구 등에 대해 갈수록 더 많은 심각한 의문을 품을 것이고, ‘힐링’을 넘어선 정신성숙의 길을 찾게 될 것이다.

- 교육수준이 높은 타직종 전문집단과 마찬가지로 교사들도 전지구적 위기(생태, 환경, 인구, 빈부격차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극복할 교육의 가능성에 대해 무심하지 않다.

- 학생의 인성 문제로 인하여 사기를 잃고 좌절한 교사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그들은 교사로서의 자신을 일으키고, 자신의 직업에 빛과 의미를 부여할 전기를 간구하고 있다.

- 특정 종교, 종파에 국한되지 않는 정신적, 영적 성숙에 대하여 교육수준이 높은 인구집단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데 교사집단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 바닥을 쳐야 튀어 오른다는 속설이 타당하다면, 신자유주의적 경쟁주의의 전횡이 교육풍토에 끼친 해악들의 막장을 접하고 나서야 우리 사회는 진정한 교육 변화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청년층의 결혼기피, 출산기피 등과 같은 한국인 공동체의 위기상황은 교육적 파탄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이 같은 위기의식이 진정한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⑿

공동체의 존망을 우려해야 할 지경에 이른 위기의식에 대한 우리의 공감이 결국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성교육진흥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죽 인성 문제가 급박했으면 법으로 강제해서 그것을 개선하고자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요. 그러나 인성교육진흥법은 그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짧은 시일 안에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학계의 회의적 시각이 부당하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법이 내세운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주요 덕목은 사람됨의 필수 영역인 자주성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습니다. 사람됨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타적이 돼야 하지만, 이타심의 뿌리에는 자주성과 자존감이 없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주요 덕목은 예컨대 유가의 인성 가치인 인, 의, 예, 지 중 인과 예에만 치중함으로써 의와 지, 혹은 그 단서인 수오지심과 시비지심을 홀대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오늘의 한국인이 규정하는 인성에서 민주시민의식을 제외시킬 수 없고, 민주시민의식의 함양에서 의와 지, 즉 정의감과 비판적 사고력이 빠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불완전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삼는 긍정적 정신이 더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구조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교육의 개선은 물론이요, 인성의 고양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이런 부정적 시각의 배경이 되는 사회과학적 인식을 존중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회적 틀이 짓누를 수 없는 생명력의 무한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겠습니다. 1930년대에 이 땅의 교육자들은 제국의 식민지 통치라는 철통같은 ‘구조’ 앞에서 좌절하고 탄식만 했을까요? 그때 희망을 품고 후대의 교육에 헌신했던 분들의 영혼을 상상해봅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직업인 교직을 occupation이 아닌 vocation으로 여겼을 것 같습니다. Vocation은 영혼이 담긴 일이겠습니다. 교육은 교사의 영혼을 담는 일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요? 그 일의 중심에 인성교육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주

(1) Davis, Michael(2003). "What's Wrong with Character Education?". American Journal of Education, 110: 32.

(2) 인간의 내적 성향을 규정하는 시도의 어려움과 도식적 ‘방법’의 문제에 대해서 융과 듀이의 견해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칼 구스타브 융(2008), 이부영 外譯.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서울: 집문당, 64-65; Dewey, John(1938). Experience & Education. New York, NY: Kappa Delta Pi.

(3) 이런 입장을 최근에 서울대 최의창 교수께서 잘 정리해주셨고, 미국의 Palmer의 저술 속에서도 일관되게 제시돼왔습니다: 최의창(2014). 기법과 심법: 교수방법의 잃어버린 차원을 찾아서. 교육철학연구, 36(3), 127-156; Palmer, P.J.(1998). The Courage to Teach. San Francisco, CA.: Jossey-Bass / P.J. 파머 지음, 이종인, 이은정 공역(2008).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서울: 한문화.

(4) Jackson, P., Boostrom, R. & Hansen, D.(1993). The Moral Life of Schools. San Francisco, CA: Jossey-Bass; 한석훈(2013). 선생이란 무엇인가. 서울: 한언.

(5) Mayes, Clifford(2005). Jung and Education: Elements of an Archetypal Pedagogy. Lanham, MD: Rowman & Littlefield Education.

(6) 저는 영성에 대한 접근을 기성 종교에 대한 신봉 여부와 무관하게 논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와 같은 입장은 20세기 후반 이래로 서구 교육계와 종교계에서 확장돼온 SQ(spiritual quotient), 또는 ‘영성 지수’ 등의 개념이라든가 명상 수행의 실천 등과 통하는 바가 많습니다.

(7) OECD DeSeCo (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ies) Executive Summary. (www.oecd.org/edu/statistics/deseco).

(8) 최의창(2014), 앞의 논문.

(9) Jackson 외, 앞의 책; 최의창 교수의 번역.

(10) 학생 개개인의 인성에 영향을 끼친 요인들을 파악한다고 할 때, 현실적으로 한 명의 교사가 과연 몇 명의 학생을 상대로 이런 깊이 있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최소한 1년 동안 담임을 맡은 삼십여 명에 대해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성찰 글쓰기를 통해 한 해에 천명에 가까운 학생을 상담하는 교사 한 분을 아는데, 그분의 경우가 일반화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신이 담당한 한 학급의 아이들을 위하여 이 정도의 정성을 외면하는 것을 변호하기는 어렵겠습니다.

(11) 경희대학교 인성교육센터가 이러한 사전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2) “근래 대한민국은 성장정체와 청년실업, 저출산 등의 문제로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보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나라가 됐다.” (서울공대백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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