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2015/3/14)
 

© Suk Hoon Han                                                                                                                                                                            

 

가끔 신내림을 받았다든가 무병을 앓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경우, 자신에게 오는 신을 절대로 거부할 수가 없고, 신을 필히 받아들여 샤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30대 후반에 내가 경험했던 접신 체험도 양상은 다르지만 일종의 무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흘간 현실에 눈 먼 채 신만을 숭배했고, 그리고 그 후의 내 삶의 길은 이전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으며, 그 신을 결코 거부하거나 잊거나 그 신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게 됐으니, 나도 신내림 받고 무당이 된 이들의 경우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할 만 하다. 물론 나는 점 치거나 예언을 하는 등의 능력은 없다. 나는 다른 은사를 받았겠거니 짐작해본다.

혹시 그 은사가 '내 뜻대로, 내 멋대로 사는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처럼?) 타인들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욕(재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요즘 이따금씩 세간에 보이는 '독립출판사'들의 활동 취지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제자가 선물로 준 '록셔리'라는 독립출판 잡지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대체로 궁상떨기를 삶의 여유로 승화시키는 유머러스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잡지였다. 그런 잡지를 만드는 세상의 비주류들이 아우르는 우리의 주변과 경계의 가치들을 우리 사회가 좀 더 수용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주류(mainstream)'의 독주는 폭력과 광기를 낳기 일쑤이기 때문이다―미셸 푸코의 사유 같은 걸로 미국 문화 등을 바라보면 그런 위험이 곧잘 눈에 띈다.

이 웹싸이트도 '독립출판'이므로 '시장'의 입맛과는 무관하게 내 멋대로 내 방식대로 삶을 위한 지혜와 지식을 연마해가는 걸 지껄일 따름이다. 나의 신비 체험을 무당의 신내림과 비교하는 식으로, 내 멋대로. 공부와 수행의 해가 거듭되면 될수록 내 '스탈~'은 도덕주의라든가 점잖은 인품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어떤 점잖은 모임에 참석했는데 내가 주최측도 아니고 하여 설치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더니만 어떤 이가 나를 지칭하여 '점잖은 분'이라고 하길래 처음엔 나를 비웃는 줄로 알았다. 내 본질은 푼수에 가깝거늘 사람들은 외양만 보고 나를 점잖은 이로 오해하는 일이 많다. (참고로, 심리의 위장 기능을 잘 아는 이는 자신의 푼수性을 떠벌리는 것이 역으로 내면의 非푼수성―예컨대 치밀한 계산성 등―을 감추려는 무의식적 꼼수일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고 실제로 내가 그런 경우일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나는 중년에 접어든 이후 나의 푼수성을 깨닫고 그것을 감추기보다 밖으로 살려내려 해온 이래로 많은 위선적 겉치레로부터 자유로워졌고, 그래서 세상을 대면하기가 더 편해졌음을 밝힌다.)

암튼 나는 줄곳 심층심리학 공부를 독립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런 이야기를 이번에도 독립출판물들처럼 써보겠다.

우리는 무엇에 발끈하는가? 그걸 보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헐리우드 영화 '버드맨'의 냄새나는 김치에 대한 대사에 발끈한다. 발끈함의 강도가 세다는 건 바로 한국인 내면의 콤플렉스가 그만큼 크고 딴딴하다는 말이다. 나아가 한국인이 얼마나 김치를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지도 알 수 있다. 김치를 비하하는 게 바로 한국인을 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돼버린다. 우리 한국인은 김치보다 훨씬 크고, 다양하고, 크고, 넓고, 깊은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김치로 환원시켜버린다. 헌데, 김치가 맛은 있지만 한국인인 우리도 그 냄새를 달고 다니고 싶어하지는 않지 않은가?

콤플렉스가 크고 딴딴한 이들은 상대하기 피곤하다. 무심코 농담으로 건넨 말에도 불같이 화를 내니까. 반대로 콤플렉스가 별로 없는 이들은 여유롭고 온화하여 함께 있기에 편하다. 사람은 다들 스스로 후자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을까? 콤플렉스에 사로 잡히지 않은 여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콤플렉스들을 명확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무의식 영역의 심리적 원리 중 하나는,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은 약해지는 반면에, 외면하고 회피하고 감추는 것은 강해진다는 것. 다음의 리스트를 훑어보며 자신은 어떤 면에서 콤플렉스를 품고 있을지 추측해보는 것은 정신건강에 유익할 것이다.

위의 예상 '반응'에 동조하거나 말거나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나는 그것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페이지는 내 멋대로의 '독립출판' 웹싸이트의 출판물이니까. 어쨌든, '발끈'을 많이 할수록 우리의 심신은 피폐해지므로 내 안의 콤플렉스를 직시하여 그것을 약화시키는 '의식화'(융의 용어) 작업을 강력 추천한다. 물론 내 안의 콤플렉스들 중에는 분석심리학에서 중시하는 '그림자'와 더불어 더 강력하고 심대한 것들도 있고, 어쩌면 그런 것들은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 하는 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가 되겠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삶의 목표인가?

3월 내내 '인성교육'의 사상과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궁리하고 있는 중. 아무래도 콤플렉스의 의식화를 교육과정에 넣어야 할 것 같다. 성인 대상으로는 그런 과정을 뽑아내기가 어렵지 않지만, 청소년과 아동을 대상으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세심한 궁리가 필요하다. 할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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