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2015/3/3)
©
Suk Hoon Han
일본의
전래 설화 중에 '늑대의 눈썹'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에 아무리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비관하여 깊은
산으로 들어가 늑대 신에게 목숨을 바치려던 한 사내가 있었는데, 달밤에
그 앞에 나타난 늑대 신은 자신의 눈썹을 건네주며 그 눈썹을 눈에 대고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있다고 알려줬단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나가 눈썹을 대고 사람들을 보니 그들 모두의 정체가 닭,
원숭이, 너구리 등등의 짐승이었고, 참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여 인간세에 대한 실망감에 홀로 길을 떠나 오랜 방랑 끝에 겨우
만나게 된 유일한 참된 사람인 한 할머니를 도우며 조용하고 소박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에 읽었을
그 이야기가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다 이 이야기가 또 떠올랐다.
과연 참다운 인성은 무엇인가? 내가 늑대의 눈썹을 빌려다가 그걸 내
마음의 눈에 갖다 대고 사람들을 본다면 그들의 야수성, 본능, 생존을
위한 공격성 등만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참된 인간성까지도 볼 수 있을까?
참된 인간성이란 본능 등과는 분리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심층심리학적 연구서들을 읽으며 계속 던지고 있다. 이를테면 융이 인간성의
요체로 보는 '자기'는 본능이라는 영역까지 포용한 전체 의식의 중심이다.
요즘 아이들의 인성이
위험하다고들 걱정이다. 애들을 닭장 같은 학교(담장, 규제, 권위주의,
관료주의, 입시조련.....)에 가두고 지들끼리 서로 쪼으며 경쟁하라고
요구해놓고선, 이제 와서 그들의 인성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기성
사회의 꼴이 한심하다. 나 역시 바로 그 기성 사회의 일원으로서 아이들
인성의 악화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헌데 정작 내 인성은 무사한가?
'인성'이란 그저 도덕적이고
선한 것만을 의미한다고 짐작하지 않는다. 나는 인성이 야수성과 분리되기보다는
야수성을 포용하고 소화하여 그것보다 더 고양된 경지일 것으로 추정한다.
무엇보다, 나는 그간의 수행을 통하여 내 안의 야수성, 또는 본능을 품는 법을 지금껏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인성교육에 대한 고민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2월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었다. 한 25년
만에 다시 읽으니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이것도 좀 늙어서 읽어야 마땅한
책이었던가 보다. 조르바는 일종의 '전인성'을 획득한 인간상인데, 그는
야수성을 보듬어 안고 그것을 인간성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조르바'는 많은 페미니스트의 비난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고, 카잔차키스는
기독교 세계와도 심한 갈등을 빚었다. 나는 책으로는 읽지 못한 그의
문제작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영화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예수의 인간성을 그린
이 영화도 기독교계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기독교계에서 반대하는 인간상의 인성을 옹호하는 셈인데.... 글쎄,
오강남 교수님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기독교계의 '심층'은 조르바를
이해하고 포용해줄 것이라고 추측하건만, 기독교의 '표층'을 고수하는
측은 그렇게 해주려는 의향이 없음을 지금까지 보여줘온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는 '인성'의 개념을 가지고 보통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무색무취한
보편성으로 아우를 법한 가치관들에 터하여 인성교육을 진행하게 되겠고,
그것은 또 그 한계를 드러내지 않겠나―유네스코의 학교보다 페스탈로찌의
학교가 더 훌륭할 것인데.... 언젠가는 조르바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방도를 구해야 하겠으나, 그건 쉽지 않은 일이겠다.
내 '인성'도
형편없는데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한다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원래
세상은 웃기는 곳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