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꼴대로 살기 (2015/8/2)
©
Suk Hoon Han
나
자신으로 있기란 가장 편안한 것임에도 가장 이루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그 누군가로 스스로를 포장하려 애쓴다. 초라하고
평범한 자신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그 누군가로. 그래서 고결하고 숭고한
인생관을 드러내 강조하거나, 값나가고 화려한 물건들로 치장하기도
하고, 허세 섞인 호탕함이나 저음의 목소리로 카리스마를 조성해보려
하기도 한다. 그 치장 효과에 넘어가는 이들도 꽤 있겠으나, 날이 갈수록
내적 공허함을 지속적으로 숨기기는 어려워지고, 결국 남들도 다 그의
궁핍한 내면을 눈치 채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대체로 내면이
궁핍하고 공허하기 마련이거늘, 그것을 솔직히 내보이고 타인들에게
쑥스럽게 손을 내밀기를 거부한 채 다양한 위장과 치장으로 자신을 방어하고자
애쓴다. 방어기제의 정교화가 인간의 성숙 과정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자기 방어에 매달려 살아야 할만큼 세상은 두려운 대상일 뿐인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점 세상을 보는 시선의 결이 세밀해지는 동시에 자신의
시선의 기운에 작용하는 변수의 종류가 늘어남을 알아가는 것이기도
하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 사람들의 부자연스러운 허세에 연민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나에게는 그런 허세와 치장과 부자연스러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그런 것들도 다 바라보고 있지만, 단 나를 연민하지는
않을 뿐이다.
(원래의) 자기 자신으로서 있는다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또한 그것이 가장 편안한 경지임도 알기에
나의 원래 생겨먹은 꼴을 살리려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모순된 말이다, 매우 힘든 것이 가장 편안한 것이라니..... 그러나 세상만사가
모순되지 않은가? 사랑하기는 매우 힘든 것이지만 가장 편안한 것이기도
하듯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감정적으로 가장 편안한 것이지만 실제로
매우 힘든 것이기도 하듯이, 가장 나다운 나로서 오늘 하루를 끌어안는
것은 타성에 젖은 피상의 나에게는 매우 힘든 것이지만 나의 전부의
주인인 참된 자기에게는 가장 편안한 것이기도 하듯이.....
모처럼
맞은 휴가의 끝날. 내일부턴 또 열심히 일을 재개할 것이므로 오늘은
푹 쉬어주는 게 좋겠다. 그래서 32도를 넘나드는 뙤약볕 아래에서 산자락을
기어올라갈 것이다. 모순되게 들릴 수 있지만, 내게는 육체적으로 고된
산행이 푹 쉬는 것이다. 녹음이 우거진 산속에서 땀을 흘리다보면 원래의
나와 아주 가까워지기도 한다.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욕망, 즉
존재론적 욕망이 계속 꿈틀거리고 있는 한,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욕망이 명백하고도 강렬하며, 어떤 이는 그런 욕망을 완전히
땅속에 묻어둔 채 살아가며 애써 외면한다. 나는 전자가 나의 존재 방식이어야
함을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