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페르조나 (2015/3/26)
©
Suk Hoon Han
꿈:
지하철 환승역을 포함한 길고도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 우측 끝 쯤에 있는 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정의감을 중시하는 한 지인이 나를 맞는다. 그의
부모가 별세하여 화장한 유골 가루가 담긴 어떤 용기(묘하게 미국의
가루 세제를 담은 깡통 같음)가 그곳에 있었는데, 그 윗 부분을 내가
실수로 약간 손상시켰다. 이것은 아마도 망자에 대한 무례한 실책이었겠으나,
상주인 그 아들은 나를 매우 존경하는 이인지라(실제로 현실에서 나는
그의 그러한 존경이 합당치 않다고 여겨 부끄러움을 품고
있다) 조금도 불쾌한 내색 없이 미소 띈 얼굴로 주변 사람에게
그 용기의 손상된 부분을 고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그가 밖으로 나간
뒤에 나는 그 용기의 윗 부분을 열어서 마치 가루 세제를 세탁기에 뿌리듯이
유골 가루를 허공에 조금씩 흩뿌렸고, 가루가 공기 중에 떠다니게 되자 나는
떠있는 가루들에 내 몸을 맡긴다. 그러자 내 몸이 공기 중에 붕 뜨는데,
이런 공중부양이 유골 가루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상하게도
나의 지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공중부양을
허허로이 즐기던 도중 전철역의 구내 방송에서 잠시 후 열차가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는 내 구두를 전철 전동차 안에 벗어두고 온 것이 기억나서
화들짝 놀라 그곳에서 나와 전철 승강장 쪽으로 맹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내 구두를 벗어둔 열차와는 상당한 거리라 도저히 출발 직전에 다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두를 잃어
버릴 경우에 겪게 될 현실적 고초가 너무도 싫어 비이성적으로 무조건
달려간다. 에스컬레이터 오르막 길에서 아줌마들을 밀치고 오르고, 에스컬레이터
내리막 길에서는 길 안내를 하는 역무원의 안내를 무시하고 필사적으로
점프하며 승강장으로 내려가서는, 이미 문이 닫히고 있는 열차로 몸을
던져서 간신히 손을 문틈에 끼워넣음으로써 출발하려던 차를 억지로
멈춰세우고, 다시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을 헤치며 열차의
여러 칸을 움직이면서 나는 큰 소리로 남자 구두를 못 봤냐고
묻고, 어떤 이는 저 쪽 칸에서 봤다든지, 비슷한 게 여기에 있다든지
하면서 나에게 협조해준다. 그러나 한 칸에서 발견한 구두는 빨간 소녀용
구두. 좌절하며 계속 열차 앞쪽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내가 발견한 건
내 구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진 낡은 빈 비닐 포장지 하나 뿐이었다.
해몽:
사회적 도덕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영성의 어떤 부분(유골 가루로
공중부양하는 것)을 나는 중시하고 또 향유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나의
의식은 현실의 페르조나(구두)의 상실을 지극히 두려워 하는가
보다. 싸구려 세제 깡통은 영성을 담아두려하는 세상의 의례와 관습에
대한 나의 경멸을 나타내고, 그 깡통 안의 유골 가루를 공중에 뿌리고
거기다 내 몸을 던지는 것은 영혼의 본질을 사장시키지 말고 끄집어내서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내 태도와 맞닿아 있겠다. 구두를 찾기 위해 내가 보인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은 현실에서
내 페르조나를 방어하기 위해 내가 취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동에
대한 보상인 것 같다. 나의 무의식은, 페르조나적 현실성을 상징하는
신발을 신고는 들어갈 수 없었던 성소(聖所)에서 내가 실행할 수 있었던 초현실적
행위 또는 영성의 작동이 현실적 도덕성과 마찰을 빚는 것은 용인해주지만,
동시에
그러한 영성이 페르조나와 조화롭게 연결되지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해
성찰해볼 것을 내 의식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찰:
나는 '절대자'와 같은 대상을 의지를 일으켜 믿는 류보다 더 골수 종교인일
수 있다. 나는 믿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에 속세보다 영성을
좇으려 해왔으므로. 이런 나의 종교성을 은폐한 채, 학생들에게는 이성과
지성을 강조하며 성찰과 사고를 주문하고, 신학을 폄하하고 철학을
중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진리는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힘을 내서 스스로 자신을 바쳐야만
터득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은 이의 설교가 아니라
깨닫고자 하는 이의 이성과 지성을 포함한 자발적 노력이 필수적이므로.
그렇다면 나의 사회적 자아인 페르조나의 어떤 면이 나의 종교성과 통합이
못되고 있을까? 혹, 인간관계의 폐쇄성? 종교성의 핵심인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이들과 친분을 나눠야 하는 걸까? 나는 이미 유지하고
있는 좁지 않은 인간관계 망을 관리하는 데만도 크나큰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의 영역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부름을 받아도
그쪽에 나를 여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들이 싫은 게 전혀 아니라,
내가 홀로 있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워낙에 히키코모리족이다.
혹 이런 폐쇄성이 영혼과 재조율돼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꿈에 담겨있는
걸까? 빨간 구두가 사회적 자아의 여성적인 면모라면 나는 인간관계에서
수동적으로만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걸까? 보다 남성적으로 내 페르조나를
매만져야 한다는 걸까?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