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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을 즈음하여 (2016/4/17)

1.

일본 큐슈에서 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한다. 동일본 대지진의 위기를 도쿄에서 겪었던 길벗님의 이야기가 생생히 떠오른다.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그마한 존재일 따름인가. 내 첫 딸이 태어나는 전 과정을 겪으며 나는 생명을 창조하는 어마어마한 자연의 위력을 감지했더랬다. 결국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인간 너머 더 높은 존재 앞에 무릎 꿇도록 이끌어주었었고. 일본의 대지진을 겪은 길벗님도 곧 새 생명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미약한 새 생명이야 말로 엄청난 자연의 힘의 역설적 증거다. 지진은 악마처럼 두렵지만, 생명은 축복이다. 삶과 죽음의 공존이 자연이다.

2.

총선 이전의 정치판은 막장 드라마였거늘, 이후의 모습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극적이다. 국정교과서 뒤집고, 세월호 의혹 파헤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재추진하겠다 한다. 우리는 실로 매우 역동족인 종족 아닐까? 이런 인간들이 신나게 재주를 부릴 판을 만들어주지는 않은 채, 엄하고 무서운 권위주의로 꽁꽁 묶어두려고만 했던 시도가 애초에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 아니었나 싶다.

3.

세월호 참사 2주기다. 뉴스에서 당시 침몰 직전 배 안의 아이들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아직도 괴로워 못보겠다. 같은 동족 중에 '교통사고'에 대해 그만 하면 되지 않았냐며 노골적으로 핀잔을 주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먼 타국의 일개 상업적 축구 클럽은 참사 2주기를 기리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념의 광기에 비하면 비즈니스 쪽이 훨씬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4.

나 삼십대 초반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고 가족이 둘러앉아 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 "어머니 육십 넘으시고, 남은 여생에 뭘 딱히 바랄 게 있으셨을까? 아마 자식들 잘 되기만을 바라시지 않았을까?" 비슷한 내용의 대화를 젊은이들이 나누는 것을 모 인터넷 게시판에서 보게 됐다.

오십도 한참 넘어 슬슬 육십대로 접근해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니, 참으로 젊어서는 인생을 모르긴 모른다. 융 선생께서 한 번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 지나간 해는 없었다고 말씀하셨지. 지난 이십여 년 간, 나는 상상도 못했던 나를 계속 발견해왔다. 분명히 앞으로도 그러 할 것이다. 아마 나의 어머니도 '자식들 잘되기' 바라는 것 이외에도 삶에서 찾던 다른 것이 있으셨을 게다.

5.

젊은이들끼리 서로 찢어져서 싸우면 좋아하는 자들은 따로 있건만, 사회가 극심하게 경쟁주의적이 되다보니 젊은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끼리 서로 흉보고 싸우고들 있다. 젊은 남자들의 사회경제적 기회가 얼마나 쪼그라들었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다만, 그러나 여성에 대한 혐오는 모성에 대한 혐오에 맞닿는다. 모성을 존귀하게 보살피지 않는 사회는 이미 막장이다. 남자들이 동족을 지키려고 군대 가서 2년 이상 고생은 하지만, 여자들은 후손을 낳아 기르느라 20년 이상 고생한다. 어쩌면 '여혐(女嫌)'을 외치는 젊은 남자들의 '모혐(母嫌)' 밑에는 전인적 존재로 아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진학을 위한 공부기계로 몰아대기만 한 그들의 어머니들의 업보가 깔려있는지도...

6.

어린 시절 부모-자식 관계에서 일어난 뒤틀림은 평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명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마녀가 애지중지하는 버릇 없고 난폭한 거인 아기가 등장한다. 이 아기의 분노는 거대하지만 유치하기 그지없다. 요즘 재벌3세들의 이른바 '갑질' 횡포가 그 아기의 거대하고 유치한 분노와 똑같아 보인다. 제 손 끝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남에게 해내라고 떼를 쓴다는 점에서 유아의 투정과 다름없다. 4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유아적 욕구불만의 단계를 졸업하지 못하여 투정을 일삼는 이 불쌍한 사람들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 할 만 하다. 나도 예닐곱 살 때 외할머니께 난폭하게 투정을 부리다 아버지에게 들켜 죽도록 혼난 적이 있는데, 이따금씩 나 자신을 돌아보면 누군가에게 여전히 그런 유치한 투정을 부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불쌍한 재벌3세들을 쬐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유치한 것에 가장 강하게 분노한다던 어떤 이의 통찰이 떠오른다. 유치한 것들이야 말로 프로이트가 말한 구순기와 항문기의 욕구와 연결돼있지 않은가.

7.

20년 가까이 산 집이 재건축을 하게 되어 이사를 가게 됐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20년동안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며 버리고 처분하는 일이 끝도 없다. 정말 쓸데없는 물건들을 많이도 소유하고 있었다. 과감하게 버려버리니 속이 다 후련하다. 가볍게 살고 싶다. 머릿 속 구석구석에 잡스런 생각도 너무 많이 쌓아놨다. 이 싸이트가 그 증거다. 그러나 때론 여러 해 전에 구석에 쟁겨둔 그 잡생각이 지금의 나를 살아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는 걸 보면, 무작정 다 버릴 수만도 없다. 삶은 언제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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