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201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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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 Hoon Han
꿈에
어린이가 등장한다. 융의 해설은 이러하다.
어린이
주제의 본질적 측면은 그 미래적 특성이다. 어린이는 잠재력을 지닌
미래이다. 따라서 개인의 심리학에서 어린이 주제의 등장은 얼른 보기에
회고적인 현상처럼 보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미래의 발전의 앞당김을
의미한다 ....
어린이 상은 대극을 융합하는 상징, 하나의 중재자,
구제자 즉 전체성의 실현자다 ....
개성화 과정의 목표는 자기의
합성이다. 다른 관점에서 고찰하면, '합성 Synthese'이라는 용어 대신
'엔텔레키'(Enthelechie,
잠재적 상태를 현재적 상태로 시현한다는 의미, 목적을 자체 내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발전과 완성을 성취시키는 유기체 내부에 있는 힘―역주)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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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융, <원형과 무의식>, 솔, 2002, p. 253.
글이
어려워보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도토리 씨 한 알(어린이) 안에 거목(엔텔레키)으로
성장할 모든 잠재성이 다 들어있다고 비유한 것과 같은 말인 듯 싶다.
휴일
아침에 커피를 마시다 부엌의 싱크대를 무심코 바라보니 빈 꽁치
통조림 깡통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보고 있노라니 어린 시절의 감정
한 줄기가 기억났다. 그건 커다란 기쁨, 즐거움의 감정이었는데, 나 어린
시절, 꽁치 통조림은 일상의 식생활에서 별식에 속했다. 저녁 식탁에
꽁치 통조림을 김치와 지져낸 찌개가 오르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내가 꽁치 통조림이 들었던 빈 깡통을 바라보며 기억해낸 기쁨은 그
음식이 내게 준 쾌락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몰래 그 통조림에서 살점
한 조각을 떼어내 집에서 키우던 개나 고양이에게 줬을 때의 기쁨이었다.
내가 예뻐하던 개나 고양이가 그것을 걸신 들린듯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기뻤던지! 나는 그 비싼 음식을 짐승에게 주느라 몇 차례
야단을 맞았다. 그러나 중학생이 될 무렵에는 국가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우리 집 살림도 풀려서였던지 고양이에게 정기적으로 정어리 통조림을
덜어줄 수 있게 됐다-아주 조금씩이긴 했지만.
어린 시절 기억이
또 떠올랐다. 개와 고양이에게 맛있는 밥을 주는 것은 큰 기쁨이었지만,
걔네들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보는 것이 나로선 큰 갈등요인이었다.
특히 혹한의 겨울에 마당 개집에서 웅크리고 잠자야 하는 개 생각에
늘 속이 상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주 추운 날에만 개를 거실이나 현관에라도
들여놓자고 부모님을 조르다가 야단맞기 일쑤였다.
내가 기억해낸
어린 시절의 감정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어른이 돼서는 오랫동안
그런 감정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무정한
인간이 돼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체 인격의 합성, 또는 전인적 인격의
실현을 위하여 결핍된 사랑의 감정들이 필요한가 보다, 그래서 꿈속에
나온 어린 아이의 모습이 인상깊게 의식에 각인돼있는가 보다. 늘상
내 안에 숨어있는 사랑을 보는 'mindfulness' 수행을 떠들고 다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냉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변명하자면,
누구에게도 과도한 애정을 주지 않는 '냉정함'이 분별심을 뛰어넘는
불심(佛心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물론, 대자대비의 불심에는
만물과 중생 모두에 대한 애정이 전제돼있는데, 나는 그게 매우 척박하니
별 변명의 여지가 없겠다. 아무래도 어린이 원형의 등장을 가슴으로
품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