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2016/7/31)
©
Suk Hoon Han
기억력
감퇴가 점증한다.일상에서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들이 불편할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 노화 때문이렸다.
주변의 노인들 중 치매에 걸리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치매 진단 받은 분들은 단기 기억의 상실이 잦다.
나의 아버지도 치매 검진을 받으셨고, 장인 어른도 진단을 받으셨다.
팔십이 넘은 친척 어른들 중에 치매 안 걸린 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고교 동창생도 심혈관 문제로 쓰러졌다가 기억을 부분적으로
상실했다. 기억을 잃는 것이 더 이상 비현실적인 드라마 속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에 이사를 하며 이전 집과 구조가 매우 다른 새 집에 네 식구 각각의
공간을 재구성하여 짐을 풀어놓다보니, 도대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쳐박혀버렸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하곤 했다. 그때문에 작은
소동이 일어난 적도 있고, 아직도 못 찾은 물건들이 적지 않다. 난 아직
'창창한' 오십대이거늘, 이젠 더 이상 삼, 사십대 후배들보다는 육,
칠십대 선배들과 기능과 성향 면에서 가까워지고 있는 것만 같다.
무언가에
관한 기억의 단서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경우는 자신이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인데 반해, 무언가를 완전히 망각해버린 경우는
그것을 망각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로, 당연히 답답함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최근 들어 전자의 경우들을 자주 접해 자주 답답해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후자의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하고 살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내가 내 안에 그런 기억이 있었는지조차 떠올릴
수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까먹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굳이 억압된
무의식 심층의 서랍속까지 뒤질 것도 없이, 단지 인식하지 않고 있는
전의식 수준에 묻어둔 것들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이것을 깨달은 것은
일기 덕택이다.
묵은 일기장이 이사의 경황 속에서 어디로 잠적해버렸는지
찾아내기는 매우 귀찮은 일이어서, 이 싸이트의 수행일상의 가장 최초
기록을 새삼 열어봤다. 제일 처음 클릭한 2002년의 수행일상에 임금체불
당했을
때의 괴로움에 관해 적어놓은 것이 있었다. 그런 것,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던 시절의 이야기.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른다더니,
이젠 전에 비해 좀 먹고 살만해졌다고 흥청거리고 돈 쓰며 십수년 전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해선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초심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공부와 일과 수행의 길을 이끌어갈 마음가짐의 핵심이 내가
종종 접하는 술병에 새겨져있다: '처음처럼'이라고. 신영복 선생님,
고맙습니다.
십여년 전의 내가 그리도 멀리 했던 대학의 비즈니스,
관료체계의 관행, 시장의 계산기 안으로 다시 들어와있는 이즈음의 생활
그 자체는 나의 초심에 대한 배반이 아니라 내가 성숙해졌기에 가능한
통합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즈음의 생활 속에서 하루, 하루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초심과 멀어져 있었다. 어려웠지만 날선 기상 품고
살던 젊은 시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본다. 자꾸, 자꾸 기억해내야
한다. 처음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