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2016/12/31)
©
Suk Hoon Han
1.
12월의 광장. 촛불 든 손이 시려와 장갑을 꺼내 끼워본다. 올해 서울의 시위에는 유난히 참여자가 많아 백만, 이백만 시민이 모였다고들 한다.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한 목소리로 대통령 퇴진을 외친다. 시위 행사 도중에는 집단적인 촛불 소등이 있고, 촛불 파도타기도 진행된다. 이것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마치 북한의 매스게임과 비슷하다며, 군중 속에 북한의 첩자들이 끼어서 부추기는 것이 틀림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그와 같은 불신을
심히 가슴아파 하는 나로서는,
부디 광장에 직접 나와서 보라는 말을 해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시민들의 의식 수준을 지독한 독재집단인 북한 주민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지독한 자기부정 아닌가? 그것이 바로 종북 아닌가? 의심 많은 이들의 중상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시민들은 대가없이 수고를 바쳐 민의를 당당히 세계에 펼치고 있고, 민주의식의 성장을 목격하며 나는 다시금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다질 수 있게 됐다. ‘돈도 안 되는데’, 그들은 왜 이 추운 겨울밤에 촛불 하나 들고 광장에 모여서 구호를 외치는가? 비록 사람은 혜량할 수 없을 만치 복잡하고도 모순된 존재이지만, 분명 사람 안에는 공자가 믿었던 인, 의, 예, 지라는 선한 본성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기에 이럴 수 있는 것이리라.
당신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거대한 바다입니다. 그 바다의 물 몇 방울이 더럽다고 해서 그 바다가 더러워지지는 않습니다. - 간디
2.
우리는 왜 유능하고 독한 부자가 아니라 루저, 빈자인가? 왜냐면 우린 다른 이들에게 손해나 피해를 입히며 내 득을 취할 유능함을 도저히 결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우린 다른 이들과 미소를 나누고 좋은 기분으로 공존하려는 깊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이 5리를 함께 가달라면 10리를 가줘야 맘이 편하고, 구걸하는 이가 나를 속이는 것처럼 보여도
바로 그게 딱해 한 푼이나마 집어줄 수밖에 없는, 그런 바보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바보인 우리들은 천국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이다. 자신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 인정(사랑)을 감지하고, 그래서
그 정을 끄집어낼 수 있을 때, 그는 바로 천국에 임한 것이다.
3.
지독하게
유능하고 독해서 승자, 부자가 됐던 자들이 이른바 국정을 농단하고
그 사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위세를 부렸겠으나 그들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잃은 것이다. 오십대를
거치며 알게 된 것은 이것이다: '부귀영화와 권력을 멀리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인정 많은 바보들은 천국의 비밀을 깨치리라.' 이런 이치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빈약한 언어 능력을 아쉬워 하며 어떻게든
이러한 신의 뜻을 표현할 방도를 구해본다.
